하재영시인
“유월 하루를 버스 흔들리며/동해로 갔다//선을 보러 가는 길에/날리는 머리카락//청하라는 마을에 천희/물에 오른 인어는 아직도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왜,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을까/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이 인간사.//지금도 청하라는 마을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칠빛 머리카락이 설레는 밤바다에는 피리 소리가 들리곤 했다.//지금도 유월 바람에 날리는 나의 백발에 천희가 헤엄친다./인연의 수심 속에 흔들리는 해초 잎사귀”

참으로 아름다운 시다.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박목월의 `청하`란 시는 세상의 끄트머리쯤에 도착한 노년의 시인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경주 출신인 목월이 터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동해의 청하로 선보러 가는 풍경. 거기까지 가면서 시인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을까? 만나게 될 여자의 얼굴 모습은? 키는? 마음씨는? 결혼하게 되면?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된 노시인 마음에 청하라는 마을은 맞선 때 만났던 천희란 여자가 늘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인연의 깊은 수심에 해초처럼 흔들리는 그 여자. 생전에 청하라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시인은 천희란 여자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까? 아니 이따금 그 여자와 맺어지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다가 그것이 인간사(人間事)라고 스스로 해답을 얻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시인의 시 속에서 천희라는 여자는 청하면 바닷가 해당화 피고, 메꽃 핀 곳에서 지금도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월의 바닷가에서 칠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말이다.

또 한 편의 시 `청포도`. 이 시(詩) 역시 7월의 동해 바다를 시(詩) 속에 풍덩 담고 있는 시다. 본명 원록(源祿)보다 육사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이육사의 시는 영일만 푸른 바다와 시인의 고향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를 미묘하게 연결해 준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시인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았을 때 `청포도`란 시는 `해방(解放)`이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시의 배경은 7월의 영일만 푸른 바다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여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마련해 두렴”

1930년대 후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육사는 요양생활차 포항을 찾았었단다. 친구 따라 삼륜포도농장(지금의 포항공항)에 머물게 된 육사 시인은 그곳에서 한가하게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픈 몸을 추스렸단다.(1973년 2월호 `시문학` 수필가 한흑구의 글 참조) 영일만 바다를 바라보는 육사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가 바라보는 바다 위로 흰 돛단배가 밀려오는 풍경을 쉬이 상상될 것이다.

푸른 파도 남실거리는 7월의 바다.

7월의 영일만에는 이육사의 `청포도`란 시가 푸른 파도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있다.

7월의 달력 속에서 시정(詩情) 넘치는 바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름휴가로 동해를 찾을 것이다. 생명의 젖줄인 바다는 한 편의 시이며 그림이고 음악이다.

답답한 가슴을 확 트이게 해 주는 넓은 바다를 보라.

너른 바다를 만나는 일은 바쁜 우리 일상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일이다. 더욱이 찾는 바다와 관련된 시 한두 편을 그 바다에서 만나는 일은 우리의 순수성을 발견하는 일이며 우리 스스로를 아름답게 하는 일이다. 막힘없는 7월의 푸른 바다를 보라. 초록 불 켜진 횡단보도를 걷는 것과 같이 힘찬 에너지를 바다에서 충전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막혔던 것들을 시원시원하게 소통하게 하는 즉 정치, 경제, 그리고 우리네 이웃 간의 사랑도 화통하게 통하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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