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펴낸 두번째 `산 연작시집`
절터골~왕정골 80개 골짜기 순례

윤석홍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경주 남산에 가면 신라가 보인다`(도서출판 산악문화 펴냄)가 나왔다.

1987년 `분단시대`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1998년 산을 주제로 쓴 연작 첫 시집 `저무는 산은 아름답다`에 이어 12년 만에 경주 남산에 있는 80개 골짜기를 시제로 두 번째 산 연작시집을 펴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처럼 신라의 신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경주 남산에 들고 나면서 봄이면 신열처럼 산벚꽃 와르르 살아나는 꽃다지 그늘에서 가슴앓이를 했고 여름이면 모감주 열매에서 염불소리 들리는 불국(佛國)의 경주 남산 마애불 앞에서 천 년전 돌에 새긴 옛사람들의 기호를 읽어 냈다. 동남산 절터골에서 서남산 왕정골에 이르는 80개의 골짜기를 차례로 순례하다 보면 신라가 보인다고 했다. 시집에 실린 경주 남산 골짜기 이름이 소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천 년의 시간에도 살아남아 홀로 있어 영원을 지향하는 돌부처처럼 영원토록 이 땅의 사람들에게 사유와 정서를 전해주고 있다.

“처음부터 완성된 길은 아니었다/ 한 걸음 내딛으면 일어나는 바람이/바람을 불러 만들어진 길이다/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고/이 길의 시작도 끝도 모른다/발자국을 남기는 의미는/너와 함께였다는 이유 말고는 없다/바람의 길엔 이제 바람은 없다/그저 바람이 만들어간 길이라는 것/길 위에 피어난 아름다운 경계/오늘도 바람골엔 바람이 분다”(`바람골-경주 남산 25`전문)

시집은 한마디로 경주 남산을 지탱하는 골들의 풍경과 그 풍경을 접하는 삶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선명한 전달력을 갖고 있다. `너와 함께 만들어간 발자국`과 `그 길 위의 아름다운 경계`가 형성하는 `바람`같은 삶의 흔적을 보듬어 주기도 하고 바람의 운동을 통해 아름다운 경계를 이룬 존재들을 노래한 `바람골`이나 정서적 대응의 양상을 보여주는 `절터골`,`탑골`,`어두봉골`,`삼릉골`에서 영원성에 대한 강렬한 지향이 묻어나는 것은 그가 남산을 관조하며 얻어낸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일 것이다.

`생명과 마음의 적막`이라는 주제가 형상화된 `산문 밖으로 스님이 적멸처럼 사라졌다/돌부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절터골-경주 남산 1`)

소멸의 존재와 영원의 불법을 의미하는데 전자는 변화를, 후자는 불변을 뜻하며 스님과 적멸이라는 소재는 사실은 속세의 삶과 대비되는 영역을 거의 절대적인 의미로 상징화하는 것들이다. `정우골`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의 운동방식을 형상화했다면 `웃밭골`은 한 개인적 삶의 경험이 세계 전체의 운동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살아갈수록 허깨비같은 나의 삶”을 떠올리며 울어버리는 시심을 노래하는`대마골`, 함께 산행하던 동료를 잃고 상념에 젖는 `봉화골`,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부처골`,`비어가는 세상` 앞에서 울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그린`보리골`에서 득의의 시적 발견을 하게 된다.

시인은 경주 남산에 일생을 걸었던 사학자 고(故) 윤경렬 옹의`남산은 떠가는 한 척의 배`라는 것을 슬그머니 상기 시키기도 하고, 덧없는 삶에서 서방정토로 항해하는 남산이란 배에 승선한 선객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경주 남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있는 것들에 대하여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보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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