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린 동생의 그리움

학생들의 작품 중에는 눈물 글썽이게 하는 작품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돌아가심으로 인한 헤어짐도 있지만 더러는 형제간의 가슴 아픈 일도 나타난다. 지금이야 엄마의 뱃속부터 건강에 각별한 관심으로 병원을 찾고 진찰을 하면서 태아 건강에 좋다는 음식은 물론 음악 등 태교에 게으름을 부리는 산모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아기를 낳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분만이 아니라 제왕절개로 분만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기를 낳으면 각종 예방접종이 차근차근 이뤄진다.

그러나 5·60년대는 말할 것도 못되지만 7·80년대만 하여도 인명은 재천이라는 생각으로 태어나서 돌이나 지나야 인간구실을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생년월일이 제대로 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귀한 자식일수록 저승사자가 시샘하여 잡아간다는 속설로 `개똥이`, `소똥이`이라 불리는가하면 아들은 붙들어야 하겠다는 마음에서 `부뜰이`, 딸은 다시 태어나지 말라는 뜻에서 `말난이`, `후불이`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도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고비를 넘겼다 싶을 나이 초등학교를 다니다가도 예기치 못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파서 누어있으면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아프다 났겠지 하는 미련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불러오기까지 하는 것이다. 하늘나라로 가버린 동생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학교를 오가는 길이 허전하고 가난하지만 웃음 넘치던 집안에 웃음마져 가져가버렸다. 식사 시간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고 어쩌다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다시 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혼자서 집을 지키는 날이면 금방이라도 대문을 열고 뛰어올 것만 같고 숙제하는 옆에서 자기 숙제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모른다고 칭얼거릴 것만 같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동생이 보고 싶다. 그리고 원망스럽다. 그런데 지난밤에는 꿈에 나타났다. 그것도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 바라보기까지 하였다.하늘나라로 간지 몇 달 지나 이제는 좀 잊을만한 때에 나타나 더욱 생각나게 하였다.

솔직하게 표현한 글을 보고 소년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을 하였다.

`어른스러운 표현은 될수록 피해야`

아동시에 있어서 어른스런 표현은 극력피해야 한다. 이것은 아동시 자체의 설 땅을 애당초 허물어뜨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동심의 눈과 어른의 눈이 보는 각도가 다르다는 걸 안다면 이것을 구별할 줄도 알아야 될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설명적인 표현도 시에서는 애써 피해야 된다. 여러 번 지적한 터이지만 시는 설명문이 아니라 암시이어야 되기 때문이다.

동 생

경북 봉화 법전중앙 6 이**

꿈속에서

동생 얼굴을 보았다.

이 세상에 사는 게

싫어졌을까?

하늘나라가

좋아서 갔을까?

집안 식구들의

웃음마저 가져간 동생

무엇이 좋아서

꿈속에 웃으며 나타났나?

안타까운 마음이

가실만한 때에.

< 소년조선일보 1980. 10 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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