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냄비의 뚜껑을 열자

다 익어 날개를 단 메기 한 마리 날아올랐다

고마워요 당신. 나 물고기였을 때 날아보려고 그렇게 파닥대고 솟구친 것 아시지요. 이렇게 날 수 있으리라고는 훨훨 승천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어요. 그저 저 날렵한 꼬마물떼새처럼 날아올랐으면 날아올랐으면 좋겠다고 시늉이나 하며 자꾸 물 박차고 훌쩍 훌쩍 위로 솟구쳤지요. 그런데 이거였군요. 이렇게 익어 흐물흐물해져서야 끓어 넘쳐서야 날 수 있는 거군요. 몸 속 모든 기운 우려내 보내 버리고 나서야 날개가 돋는 거군요. 그래야 한없이 부드럽고 가벼워지는 거군요. 여기 떨구고 가는 살점들을 드세요. 큰 입 긴 꼬리지느러미 두고 갈께요. 고마워요 당신

이거였군요 이래야 날 수 있는 거군요

여기 남기고 가는 아린 가시가

제 발목을 붙든 것이었군요

최영철 시집 `그림자 호수`

(창작과비평사, 2003)

최영철 시인이 뜬끔없이 메기가 하늘을 날아간다고 한다. 끓는 매운탕 냄비 속에 살점을 흐물흐물 떨궈 우리 사람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며 그 생명을 다한 메기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시집이 나올 때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하늘 위에도 불을 담은 미사일과 포탄이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그러나 그 둘은 차원이 서로 다르다. 전자가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새로운 생명을 기르는 `살림`이라면, 후자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약자를 강탈하는 `죽임`의 그것이다. 위 시의 화자는 죽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메기다. 메기의 말씀을 들으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왜 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말도 안 되는 이 죽임의 난장판이 걷어치워지는 때는 그 언제일까.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 살아도 턱없이 부족한 수유(須臾)의 시간이 우리의 삶일진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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