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난에 시달려온 늙은 아내가

겨울 청명한 날

유리창에 어리는 冠岳山을 보다가

소리내어 웃으며

“허허 오늘은 관악산이 다 웃는군!” 한다.

그래 나는

“시인은 당신이 나보다 더 시인이군!

나는 그저 그런 당신의 代書쟁이구…….” 하며

덩달아 웃어본다.

서정주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詩`

(시와시학사, 2001)

미당 서정주 선생은 지난 2000년 12월24일 이 세상을 버리고 아내 방옥숙 여사가 두 달 앞서 가 있는 저 세상으로 건너가셨다. 내년이면 선생이 가신지 10주기가 된다. 10주기에 맞춰 선생의 후학들이 세상에 발표된 선생의 시집들을 새로 정리하여 정본의 전집을 펴내려고 한다. 이는 한국문학의 귀중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 시는 그가 남긴 15권의 시집 가운데 마지막 시집`80 소년 떠돌이의 詩` 맨 마지막에 실려있다. 문학지`시와 시학`2000년 봄호 창간 9주년 축시로 발표된 작품인데, 선생의 사후에 증보판으로 새로 묶여질 때 추가된 작품이다. `겨울 어느날의 늙은 아내와 나`라는 시의 제목도 내용도 그저 범상한 것만 같다. 그러나 다시 꼼꼼히 시를 읽어보면 범상치 않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바람처럼 언어를 수월하게 풀어놓는 노 시인의 대가적 풍모를 우리는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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