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뚝에 새긴 뱀 문신마저 벌겋게 부풀어오른 전과7범의 만신창이 生이, 감히 사제관 유리문을 불쑥 열고 들어와, 다짜고짜 충혈된 도끼눈을 치켜뜨고 묻는다… 당신이 목사야… 목사는 뭐 죄 안 짓남!… 간난한 신도들이 바친 헌금이나 야곰야곰 갉아먹고 똥이나 싸고 또 갉아먹고 똥이나…어, 허, 어, 허…그런가…어, 허, 그래, 그러고 보니, 시골 고등학교 시절 양잠(養?) 실습 시간에, 누에섶에 얹어준 파아란 뽕잎을 사각사각사각 갉아먹던, 내가 바로, 그 누에로구나, 누에야…하, 하지만, 이 사이비누에, 사이비목사야, 넌 네가 먹은 걸 어느 날 문득 비단실로 몽땅 토해놓을 수 있겠느냐, 있겠느냐…

고진하 시집 `얼음수도원` (민음사, 2001)

목사 시인 고진하의 시는 언제나 재미있고 그 의미도 크게 다가온다. 전과7범 만신창이 生이 목사 시인 고진하의 스승이 되고 있는 시`누에`는 통쾌하고 재미가 있다. 위 시는 내용상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어색한 감탄사 “어, 허, 어, 허…그런가…어, 허”를 기점으로 두 분으로 나뉘어 진다. 목사에게 전과7범이 모멸 찬 야유를 퍼붓는 시의 전반부와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신에게 다그쳐 묻는 후반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마지막 구문인 “사이비목사야, 넌 네가 먹은 걸 어느 날 문득 비단실로 몽땅 토해낼 수 있겠느냐, 있겠느냐…”는 말은 화자인 목사가 자신에게 내지르는 시퍼런 비수와도 같은 말이다. 목사여, 시인이여, 고진하여! 이 `누에`라는 시를 잊지 말기를. 우리 사회에 비단실 부디 토해놓으시길. 고진하 시인의 초기작인 이 작품은 시인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편의 진지한 구도(求道)의 시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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