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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길 막아선 일 없으니 가려야 할 곳 더욱 없겠다 맨살로 떨고 있는 하늘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듯 정직한 심장 하나로 밀고 가는 저 나무의 겨울 제자리 떠난 적 없는 그 갔던 길 되돌아오며 눈물 훔치는 일도 없다 두껍게 몸 가린 사람들 춥겠다 하며 건너다보고는 갈 길 재촉하는데, 뜨거운 열손가락 어제처럼 움켜쥐는 겨울나무 변덕 심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나무는 꿋꿋이 제 길을 간다. 더 가지려 남의 것을 탐하거나 남의 길을 막아선 적이 없는 나무, 정직한 심장 하나로 하늘을 향해 경건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나무, 후회할 일을 하지 않았으니 눈물 훔치며 참회하지 않는 나무, 겨울 추위에 옷을 겹겹 두르는 사람들 곁에서 당당히 나목으로 서서 속으로 뜨거운 생명의 정념을 불태우는 겨울나무처럼 살
시
등록일 2015.01.15
게재일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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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차부에서였다. 책상 위의 잉크병을 엎질러 머리를 짧게 올려친 젊은 매표원한테 거친 큰소리로 야단을 맞고 있었는데 누가 곰 같은 큰손으로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짚었다,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겪은 조그만 일 하나를 소개하면서 시인은 이 땅의 모든 아버지를 우리들 가슴에 그려주고 있다. 세상살이 힘들고 어려워서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고 주저앉고 싶을 때 어디선가 손 내밀어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다. 살면서 받은 아픔과 상처를 말없이 고이 싸매주시고 소리없이 눈물 훔치며 어둠 속으로 물러나시는 분이 이 땅의 아버지인 것이다.
시
등록일 2015.01.14
게재일 201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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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에서만 꽃을 피우는 난초가 있다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기 때문에 본 사람이 드물다 한다 (….) 현상되지 않은 필름처럼 끝내 지상으로 떠오르지 않는 온몸이 뿌리로만 이루어진 꽃조차 숨은 뿌리인 땅 속은 어둡고 빛으로부터 단절된 곳이다. 거기에 꽃 피우는 난초가 있다고 말하는 이 시에는 빛과 어둠을 다 감싸 안으려는 시인의 인식이 묻어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내재돼 있는지 모른다. 인간 세상의 이러 저러한 일들이나 현상이나 관계들 속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지한 아름다움은 현상되지 않는 필름처럼 끝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시
등록일 2015.01.13
게재일 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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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신들이 버리고 간 별자리나 돌보려는 자는 이 도시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유리벽 안쪽 거인들 어깨에도 먼지와 소음이 주점 불빛이 취기처럼 덧쌓이고 환영의 거리를 빠져나온 나는 표정 없는 동시대의 엘비스와 헤라클레스와 아인슈타인을 지나쳐 걸어간다 헤라클레스는 여전히 엘비스의 기타 선율과 아인슈타인의 미소 가운데 놓여 있다 헤라클레스는 여전히 여름 하늘 거문고좌와 목동좌 사이에, 엉거주춤 거꾸로 매달려 있다 인간의 운명을 넘어 신화가 됐던 헤라클레스, 술집의 장식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숭고하고 존엄한 신화적 가치는 이제 더 이상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현상을 간파하는 예리한 시선을 지닌 시인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무심하지 않다. 엘비스와 아인슈타인의 시대에 어색하게 끼여있는 헤라클
시
등록일 2015.01.12
게재일 201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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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 계단에 벌겋게 토해놓았다 출렁이던 고통이 할복(割腹)했다 코를 풀면서 치를 떨면서 쏟아진 내장을 수습한 그가 어둠 속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쥐도 새도 모르게 밤이 가고 한낮의 태양이 흑점을 키울 때 들끓는 파리떼여 사방으로 튄 얼룩이여 먼지가 될 때까지 밟히고 지워지면서 머리 처박은 주검 하나 오래오래 눈 안에 있다 모든 고통이나 주검은 결국 먼지가 될 때까지 소멸의 과정을 밟게 된다. 먼지가 될 때까지 서서히 자신을 지우는 죽음의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인은 죽음을 잊혀짐과 지워짐이라 인식하고 모든 죽음의 뒤에 남겨진 망각, 서서히 잊혀져 감은 또한 얼마나 허무하고 허망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시
등록일 2015.01.11
게재일 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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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아내와 딸이 웃는 얼굴로 밤하늘 별자리에 높이 떠 있다 두 팔로 껴안다 내리고 싶지만 그냥 바라본다 뇌경색을 앓은 시인이 겪은 가족의 보살핌과 사랑에 대한 느낌을 참참하게 그려내고 있다. 병상에 누워서 위로 올려다보니 병약한 아내와 눈빛 초롱한 딸아이의 얼굴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다가와 사랑스럽게 빛나고 있다. 가만히 침묵하며 바라볼 뿐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람에 대한 진한 애정이 번져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
등록일 2015.01.08
게재일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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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를 보다 진실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요즘 들어 진실이란 말이 진실로 좋다 정이 든다는 말이 좋은 것처럼 좋다 진실을 안다는 말보다 진실하게 산다는 말이 좋고 절망해봐야 진실한 삶을 안다는 말이 산에 든다는 말이 좋은 것처럼 좋다 나무그늘에 든 것처럼 좋다 이 시에는 진실, 좋다, 들다라는 말이 반복되면서 각각의 시어들이 품는 말의 품이 넉넉하고 푸근하기 짝이 없다. 흔히 쓰는 말들이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면 우련하게 녹아나는 맛스러움이 있다. 이러한 화법은 천양희 시인만의 개성적 화법이기도 한데 당연함에서 풍겨나는 설득력이랄까 그윽한 향기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거느린다.
시
등록일 2015.01.07
게재일 201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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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더 높이 날았다간 지옥행이다 여름밤 공원의 작은 나무 사이사이 아가리를 쩍 벌린 해충퇴치감전등이 긴 목을 쭉 빼고 서 있다 목숨을 움켜쥐고 줄줄이 날아든 날벌레들 통제도 없는 접경을 날아오른 익명들의 단 한 번 저항도 없는 죽음 차라리 공원에 여름이 찾아오지 말았어야 해 오늘도 저 고압 전류에 찌직찌직 난사당한 목숨의 파편들 총성만 들리고 총알 박힌 흔적은 없다 이 날벌레들의 참극 이후에 오는 인간의 무절제한 평화 어떤 정치성도 이 참사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전기에 감전돼 벌레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과 삶이 교차되는 생의 단층을 투시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한 풍경이지만 시인의 눈은 예리하게 그곳에 머물고 하루살이 같은 우리네 한 생을 대입시켜본다. 벌레들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는
시
등록일 2015.01.06
게재일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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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에 올랐어요 산꼭대기에는 티 없는 벽공이 하늘 궁전이 펼쳐 있어요 알 수 없는 문장들이 제단 위에 쓰러져 있어요 저 희생된 언어들 지워버린 온갖 상념들 피 묻은 칼이 있어요 굽어보는 발 아래는 강물이 흐르고 강물 위에는 주먹별이 떠오르고 있어요 희끗희끗 진눈깨비 흩날리면 하늘 길도 질척일까요 헛다리 발자국도 감미로워 별빛 궁전이라도 가까이 찾아 들겠어요 하늘 궁전이 목메게 그리워요 어쩌면 여기에서도 하늘 궁전에 닿을 것만 같은 마음 안의 꽃향기 향그러워요 힘들고 상처투성이의 현실을 피해 이데아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마음이 읽혀지는 작품이다. 지상의 속된 가치를 떠나 산에 오르고 일상의 곤고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세계는 시인이 말하는 하늘궁전인지 모른다.
시
등록일 2015.01.05
게재일 201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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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이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동안 벽 여기저기에 작은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염소 똥처럼 툭툭 자갈들이 떨어져 내렸다 시궁쥐 떼가 구멍을 헤집고 다녔다 쥐를 쫓아 고양이들이 드나들었다 구멍은 점점 커지며 수많은 선을 치기 시작했다 가랑이의 가랑이를 벌리며 선은 벽 전체로 뻗어나갔다 또다른 구멍들을 쑥쑥 낳았다 얼마 후 사내들이 손을 대자 벽은 폭삭 내려앉았다 벽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을 든든히 지탱해주는 벽은 웬만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이 시에서처럼 벽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구멍과 틈과 균열이 원인이 되어 와해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을 원시적 야만과 경계 짓는 문명이라는 단단한 벽 또한 예외일수는 없다는 것이다. 끝내는 문명 내부의 여러 요소들 때문에 파괴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5.01.04
게재일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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떄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세세한 체험의 결을 만지며 시인은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이 땅 어느 소읍에도 있을 법한 동네 이발소를 풍경의 중심에 두면서 편안
시
등록일 2015.01.01
게재일 201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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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른 달이 북채 잡은 고수되어 소쩍새 소리꾼 가락에 큰 굿판 펼쳐 놓는데 곁엔 옷고름 풀린 삼지닥나무꽃과 산수유꽃 참꽃 산벚꽃에 앵두나무꽃이 도래 도래 둘러 앉아 장단 맞추고 있네 아름다운 봄밤은 여러 구성요소들로 그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다. 그 매혹적인 소통회로에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얽히고 설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달, 고수, 소쩍새, 굿판, 꽃들이 그들이다.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동일한 생명체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이 시는 그들의 소통을 통해 그들만의 견고한 벽을 허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
등록일 2014.12.30
게재일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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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실제의 영역이면서도 그 인식의 범주를 넘어선 어떤 세계 혹은 영역이 따로 있을 수 있다는 전제가 이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벽에 박힌 못 하나도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존재의 방식이 달라지고 다양한 모양과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이 짧은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우주의 모든 것이 그렇다면 하물며 우리 인간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나름대로 다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
시
등록일 2014.12.29
게재일 201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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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하며 살아도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네 적막을 지키는 산 겨울 어둠에 덮인 들녘 저녁상 물려 놓고 혼자서 세상 타령해 보지만 역시 허탈한 겨울밤 밤늦게 눈이라도 오려나 산과 들녘이 자꾸만 창밖에 어른거린다 친구여 필자의 고등학교 적 은사이셨던 시인은 평생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다 이제는 퇴임을 했다. 선생님은 평생을 무욕의 깨끗한 선비로 한 생을 건너고 있다. 깊어진 인생의 후반 겨울 어둠이 덮인 산을 바라보면서 분탕스러웠던 청춘의 시간과 힘겹고 어려웠던 생의 노정을 뒤돌아보면서, 그 모든 것들이 부질 없고 허탈한 것이라는 성찰에 이르고 있다. 착잡하고 허탈한 심정을 평생동안 가슴 속에 품고 가는 친구에게 가만히 건네고 있다.
시
등록일 2014.12.28
게재일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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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고구마를 삶아놓고 나갔다 젓가락으로 여러번 찔러본 흔적이 있다 나도 너를 저렇게 찔러본 적이 있지 잘 익었나, 몇 번이고 깊숙이 찔러본 적이 있지 뜨거워 손을 바꿔 잡다가 괜한 내 귓불을 잡은 적이 있지 후후, 베어물고 입속에서 여러 번 굴려본 적이 있지 벗겨 먹은 적이 있지 목이 메어 가슴을 두드리고 벌컥벌컥, 찬물을 들이켜고는 망연자실 내려다본 적이 있지 지난 가을 지역출신의 김왕노 시인의 모친상에서 고영민시인과 한 시간 여 정담을 나누다 왔다. 고영민은 충남 서산 사람이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착하고 순한, 천상 촌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맑은 사람의 향기를 소매가득 묻히고 돌아왔다. 이 시에서도 마흔을 넘기면서 삶을 뒤돌아보는 순정한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거침없이 달려온
시
등록일 2014.12.25
게재일 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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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 굵은 소금에 절여 볼까 컴컴한 광 속에서 한 오백 년 푹 삭아 볼까 (중략) 그대 혀 끝에 올려진다면 그게 나인 줄도 모르고 삼켜진다면 그리운 그대 속내 알아보는 거야 살다보면 밀려오는 슬픔의 떼가 있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꾹꾹 삼킬 때가 많다. 그야말로 가슴 속 깊이 쌓아둔다. 시인의 말처럼 한 오백년 푹 삭아내리도록 소금에 절여 컴컴한 가슴의 광 속에 처박아둔다. 언젠가 그 슬픔이 사랑하는 그대의 혀 끝에서 녹아나는 소금 알갱이로 세상에 나오더라도, 그 님이 나의 슬픔의 정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깊이 깊이 소금에 절여진 슬픔을 보듬고 살아가겠다는 순정한 마음을 본다.
시
등록일 2014.12.23
게재일 20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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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벚꽃 한 그루 어두워지고 있다 칠 벗겨진 창틀 너머 우두커니 파놓은 우물을 들여다보며 제 몸 지우는 꽃나무 한나절 벌떼도 잉잉대다 돌아가고 한줄기 거센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 꽃잎들 저 살점, 살점들 세상 흐린 물소리는 뿌리 밑으로 고여들어 고름이 되고 그 샘물에 다시 머리를 감는다 어머니, 어두워지는 당신 몸속으로 이 봄날 겹벚꽃이 지고 있어요 세상 흐린 물소리는 뿌리 밑으로 고여들어 고름이 된다는 말이 가슴을 치는 아침이다. 어머니, 그 위대한 모성을 시인은 참참한 어조로 읽어내리고 있다. 어찌 어머니에게도 청춘의 시간, 꿀벌 잉잉대던 시간이 없었으랴만 그것마저 다 자식들과 가정을 위해 내려놓고 이제 늙고 병들어 가만히 어두워져 가는 어머니,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이렇게 헌신적으로 당신의 것을 다
시
등록일 2014.12.22
게재일 201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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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산길 섶 하늘 지붕 덮고 누운 산바람 우거진 풀숲에 세상 부귀공명도 그리움, 사랑, 미움도 죄다 버린 지 오래된 묘비 석 하나 쓸쓸하다 작은 하늘 집 허물어진 채로 잔술도 없이 알몸으로 누워서 이 세상 살면서 다 하지 못한 말 하 많이도 있으려만 아무 말 없이 쓸쓸히 이 땅 어느 산자락 모룽지마다 이러한 묵묘가 없겠는가. 가난하고 쓸쓸하게 살다가 하늘로 돌아간 민초들이 말없이 조그만 돌 비석 하나 앞세우고 누워있는 것이다. 세월 많이 흘러 봉긋하던 봉분도 거의 지워지고 우거진 잡풀 속에 누워 무상히도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인생이던 모두 그곳으로 가서 누울 것이다. 부자도 빈자도 권력자도 민초도 모두들 자연으로 돌아가 누울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시
등록일 2014.12.21
게재일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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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줄을 걸 때까지도 개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그러지 마라 곧 너를 잡아 삶아 먹을 텐데 그러면 네 고기 맛이 어찌 좋겠냐 가만히 있어라 꼭 그렇게 살갑게 다가오려면 아예 내게 덤벼들어라 그래서 줄을 놓게 하여 저 산속 깊이 들어가서 살아라 그래도 개는 둥글게 만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그런다고 너를 살려두진 않을 테니 이제 그만 해라 그리고 잘 가라 그래도 개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오랫동안 산속 생활을 해오는 시인이 곧 잡아먹을 개에게 말을 걸고 있다. 곧 잡아 먹을 개가 살갑게 꼬리를 흔들며 웃는 현실, 이런 현실은 시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일이지만 시인은 애써 차갑게 말하고 있다. 우리네 삶의 여러 모습들 속에서도 이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연민
시
등록일 2014.12.18
게재일 201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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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안주로 먹으려고 사온 조개를 수돗물에 담그자 그것들 일제히 입을 다문다 몸 밖은 죽음 제 안의 어둠을 파먹으며 이승의 삶을 잠시 버티는 그 불에 닿자 퍽 소리를 내며 다 놓아 버리는 온몸을 환히 열어 보이는 악착같이 잡고 있던 것이 生이라는 암흑이었구나 조개는 다가오는 죽음을 예견하고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 입을 다무는지 모른다. 그 죽음의 암흑에 저항하기 위해서 취는 것이 빛이 아니라 도리어 암흑이라는 것이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불에 온몸이 닿으면 조개는 자기를 열고 자기를 놓아버리는데 그것은 삶의 순간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이다. 이런 상황을 예리하게 발견하고 표현하는 시인은 우리들 삶과 죽음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깊은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시
등록일 2014.12.17
게재일 201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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