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 때 바다서 아홉 마리의 용 날아오른 포구 구룡포
예천 내성천 마을 ‘육지 속의 섬’ 회룡포, 관광객 발길 줄이어
안동 용상동엔 황룡 물리친 청룡 승천시킨 ‘마도령’ 이야기가
경산 용성 구룡마을엔 용이 살았다는 샘인 ‘무지터’ 남아 있어
구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밑 ‘용샘’은 이무기설화 전해져와

9마리 용이 승천한 전설이 전해지는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용 조각.  /이용선기자
9마리 용이 승천한 전설이 전해지는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용 조각. /이용선기자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신년을 맞아 경북지역의 용과 관련된 지명이나 설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용에 해당하는 진(辰)은 방향으로는 동남동(東南東) 시간으로는 오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 달로는 음력 3월을 의미한다.

‘용의 해’ 중에서도 갑진년은 청룡 즉 푸른 용의 기운이 가득한 해를 일컫는다. 용은 예로부터 봄을 상징하고 비를 관장해 부귀와 풍요를 뜻하는 길조의 수호신으로 여겨져 왔다.

가뭄이 들면 비를 다스리는 용신 혹은 용왕에게 제를 올렸다.

용과 관련해 여러가지 상징적인 의미들이 전해져 오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강이나 바다 등 물속에서 비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점에 주목해 ‘수신(水神)으로 여겨왔다.

이처럼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은 마치 실존 동물처럼, 예로부터 우리 전통 문화 속 곳곳에 자리매김 해 왔다. 조상들은 가뭄이 들면 수신으로 불리던 ‘용(龍)’자가 들어간 지형지물에서 기우제를 지내거나 다양한 주술적인 방법으로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는 지형적 형태와 마을 설화에서 유래된 용 관련 지명들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 조상들은 용이 하늘로 서서히 승천하는 것을 통해 평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풍요를 상징하는 용은 전통 설화를 통해, 그러한 사람들의 소망을 표출해 왔는데 대표적인 것인 마을 지명이라는 것.

전국의 마을 지명 가운데 ‘용’자가 들어간 곳은 무려 1천261곳에 달한다.

경북에도 지형적 형태와 마을 지명의 유래에서 용과 관련된 설화들이 여럿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아홉마리 용이 승천한 포항시 구룡포(九龍浦)

포항 ‘구룡포(九龍浦)’는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포구(浦口)라고 전해진다.

‘구룡’은 포항 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명칭인데 경산의 구룡마을, 강원도 삼척의 구룡골, 구룡계곡, 구룡폭포, 구룡산, 구룡동, 구룡도 등 한반도에는 구룡 천지다.

구룡포의 지명 유래는 신라 진흥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룡포는 ‘사라리’라고 불렸는데, 진흥왕은 장기 현감에게 동쪽 바다가 노하여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백성들을 살피라는 명을 내렸다. 장기현감이 사라리 마을을 지날 때 별안간 천둥 번개가 치고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때 소용돌이 치는 바다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자, 이곳 포구를 구룡포라고 불렀다는 것.

마을의 유래처럼 현재 구룡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구룡포공원에는 아홉 마리 용의 청동 조각상이 설치돼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오고 있다.

△ 용이 누워있는 형세인 포항시 흥해읍 용한리(龍汗里)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용한리는 본래 용덕리와 소한리가 1914년 통합된 이래로 용한리라 칭해지고 있다.

이중 ‘용덕’의 유래를 살펴보면 마을 지형이 큰 용이 엎드려 있는 것 같아, 용의 덕(德)을 입어 살아가는 곳이라고 ‘용덕(龍德)’으로 불리게 됐다.

마을 지형이 용의 머리, 용두(龍頭)에 해당하는데, 마치 용이 포효하는 모양과 비슷해 용이 마을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라는 뜻으로 용덕이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예천 용궁면 회룡포  /예천군 제공
예천 용궁면 회룡포 /예천군 제공

△ 용이 마을을 휘감고 있는 예천 회룡포(回龍浦)

예천군 용궁면도 지명에 ‘용’이 들어간 명소 중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에 있는 회룡포(명승)는 내성천이 산에 가로막혀 마을을 350도 휘감고 나가는 형상이 마치 용틀임과 같아 회룡(回龍)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회룡포는 비가 많이 오면 섬으로 변해 ‘육지 속의 섬’이라고 한다.

인근 비룡산에 위치한 전망대인 회룡대에서는 회룡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도 용왕각과 용바위가 있다.

현재 회룡포는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에 산책하기 좋고, 회룡포와 내성천을 미로로 표현한 회룡포미르미로공원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안동시 용상동(龍上洞)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안동에서는 11개의 지명이 용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용과 관련된 지명으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곳은 용상동이다.

이곳에는 ‘황룡을 물리친 청룡을 승천 시켰다’는 마도령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승천한 청룡은 지금의 용상동 일대 들판을 마씨에게 주었고, 사람들은 용이 승천한 곳이라고 해서 이곳을 ‘용상(龍上)’으로 불러 왔다.

또 ‘마도령이 땅을 개척한 곳’이라는 의미로 ‘마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안동은 최근까지 여러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냈던 지역으로, 용과 관련된 설화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옹천리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용바위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철도공사로 용바위를 훼손했기 때문에 현재 깎여나간 바위산의 흔적만이 중앙선 철길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외에도 안동에는 길안면 용계리의 도연폭포, 서후면 성곡동의 용우물, 서후면 태장리의 천등산 꼭대기, 남선면 신석1동 납뜰의 뒷산 꼭대기 등 비를 관장하는 용에게 기우제를 지낸 마을이 여럿 있다.

 

△ 안동의 와룡산, 용점산, 용정산 … 삼룡산(三龍山)

안동의 와룡산은 용과 관련된 직접적인 설화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와룡산(臥龍山)은 퇴계 이황의 큰 제자인 백담 구봉령이 “산 모습이 마치 용이 누워 있는 형국과 같다”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2015년 가뭄이 들자 와룡산에서 기우제가 치러지기도 했다. 와룡산 인근의 용점산(龍点山)도 산의 형세가 용과 같고 점의 형태로 생겼다고 해 이름이 붙여졌고, 이 산의 우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용정산(龍井山)으로 불리어졌다. 이곳에는 용과 관련된 산 3개가 자리 잡고 있다.

△ 아홉마리의 용이 살던 경산시 용성면 구룡(九龍)마을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는 구룡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산촌 마을이다.

‘구룡’이라는 마을 이름은 구룡산 밑에 위치한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룡산’은 ‘동해용왕의 딸이 낳은 아홉마리 용이 살던 마을’이어서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도 구룡산 꼭대기에는 용이 살았다는 샘인 ‘무지터’가 남아 있다.

△용이 솟아오른 밭 김천시 용전리(龍田里)

김천시 옥산면 소재지로부터 3㎞ 떨어진 용전 또는 용밭은, 마을 개척 당시 마을 뒷산의 밭에서 ‘용이 솟아 오르는 꿈을 꿨다’고 해 ‘용 용(龍)’자에 ‘밭 전(田)’자를 써서 용전 또는 용밭이라 불린다.

용전에서 ‘용이 따라 올라 왔다’는 종상(從上), ‘용이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운남산(雲南山) 등 마을 인근에도 용과 관련한 장소들도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

 

구미시 용샘  /구미시 제공
구미시 용샘 /구미시 제공

△용이 머리를 들고 있는 형상을 한 김천시 용두동 (龍頭洞, 용우머리)

현재 김천시 용두동 김천모래밭은 옛 김천장의 중심이었다.

‘용두동’이라는 지명은 고성산에서 시작해 남산공원, 석천중, 황금동교회를 거쳐 한신아파트 앞으로 흘렀던 남산천이 한신아파트 앞에 모래를 쌓아 높은 언덕을 이뤘다. 그 형세가 용이 머리를 들고 있는 형상 같다고 해 ‘용우머리’ 라 불리우고 한자로는‘용(龍)’자에 머리 ‘두(頭)’자를 써서 용두동(龍頭洞)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경부선 철교가 시작되는 부분이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해, 지금도 ‘용머리길’로 불린다.

△ 이무기 꿈이 서린 용(龍)샘

구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옆 절벽 밑에 위치한 옹달샘을 ‘용샘’이라고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이 샘에는 용이 되려는 이무기 ‘강철이’가 살았다고 한다.

모진 천년의 세월을 지낸 이무기는 마침내 바라던 등천(登天)의 날, 천지를 진동하는 큰 소리를 지르면서 바위를 타고 서서히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때 공교롭게도 언덕 아래서 산나물을 캐던 아낙이 이무기의 등천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저 이무기 봐라”며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 소리에 이무기는 원통하게도 등천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곳의 이무기의 비늘자국이 남아 있는 낭떠러지 암벽 바위를 ‘용회암’, 이무기가 떨어질 때 생긴 홈에서 샘물이 솟아났다고 해 그 절벽밑의 옹달샘을 ‘용샘’이라 부른다. /구경모기자 gk0906@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