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의 기억, 영일만의 격랑 -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 3
한경식 ⑤ 인생을 회고하며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경식 선생.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경식 선생.

곧 아흔을 맞이하지만 한경식 선생의 기억력은 스무 살 청년 못지않았다. 포항제철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던 때를 정확하게 이야기해줬고, 당시 급박했거나 감동적이던 상황까지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반세기 전에 관계 맺었던 사람들 이름도 잊지 않고 있었다. 전남드래곤즈 사장을 끝으로 일흔 살이 가까워서야 조직 생활을 끝내고 자유로운 생활인으로 살아가게 된 한경식 선생. 그의 노년을 즐겁게 해준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다. 주위에서는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는 솜씨”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 선생의 70대 이후 삶은 어떠했을까? 그 궁금증과 더불어 포항제철 후배들, 나아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격려와 당부를 전하고 싶은지 물었다.

 

 

광양으로 온 후에 ‘순천 미술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덕기 화백을 만났어. 휴일이면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렸지. 내 그림의 주된 소재는 세상 풍경이야. 삶의 체험을 풍경 속에 녹여내고 싶어.

지난해 태풍 힌남노가 포항제철을 덮쳤을 때 회사 구성원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 ‘아직 포항제철의 전통은 살아 있구나’라고 칭찬해주고 싶었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어?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나는 그들에게 “자기 앞만 보며 달려가지 말고, 소중한 걸 놓치는 게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

홍성식(이하 홍) : 사장을 맡았던 축구단 전남드래곤즈가 만들어진 과정이 궁금합니다.

한경식(이하 한) : 먼저 자문단을 구성해 광양에 있는 포항제철 협력업체들의 도움을 받았어. 협력업체가 직원들에게 경기 입장 티켓을 사주면, 그 회사 직원들이 축구장에 가서 응원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며 여가를 보낼 수 있지 않겠어. 게다가 전남드래곤즈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축구팀이니, 지역민들에게 ‘나도 우리 지역의 축구팀과 함께한다’는 자부심이 생겼지.

1994년에 창단된 전남드래곤즈는 전라남도를 연고로 하는 K리그 소속의 프로축구단이다. 김태영, 김도근, 마시엘, 김남일 등 빼어난 수비수들을 배출한 구단이며,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이 구축된 구단이다. 같은 모기업을 가진 포항 스틸러스와 함께 선진 축구 시스템을 일찌감치 도입한 구단으로 평가받는다.

홍 : 축구단 운영 역시 마냥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 : 전남드래곤즈가 너무 잘해서 곤란하기도 했어.(웃음) 창단 초기에는 축구계 관계자 대부분이 신생 팀이니 하면 얼마나 잘하겠냐고 생각했는데, 예상 밖의 뛰어난 성적을 거둔 거야. 게다가 포항제철의 최초 출발지이자 근거지인 포항의 축구팀(스틸러스)에게도 이길 때가 적지 않았으니 “한 회사가 축구팀 두 개를 운영하며 승부조작을 한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까지 떠돌았지. 그것 때문에 나와 허정무 감독이 마음고생을 했어.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 웃을 수 있는 추억이지.

홍 : 30대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온 포항제철을 떠난 건 언제인지요?

한 : 일흔 살이 가까워서였지. 1994년에 이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두 번째로 전남드래곤즈 사장을 한 이후야. 그때 든 생각은 ‘이제 후배들에게 모든 걸 물려주고 나는 남은 인생에서 해보지 못한 다른 걸 시도해야겠다’는 것이었지.

 

한경식作 ‘고로 출선 첨공작업’
한경식作 ‘고로 출선 첨공작업’

홍 : 그렇다면 그림은 은퇴 후에 그리기 시작했나요?

한 : 그림을 그리는 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어. 당시는 “그림을 그려서는 밥을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던 시절이잖아. 예술가 대접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지. 사실은 포항에서 광양으로 오면서부터 조금씩 시간을 내 붓을 잡기 시작했어. 젊은 시절엔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지. 포항제철 역사에 관련된 사진을 많이 찍었어. 사진대회에 출품해서 입상한 경력도 있고.

홍 : 주로 무엇을 그리십니까?

한 : 광양으로 온 후에 ‘순천 미술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덕기 화백을 만났어.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줘 지도를 받게 되었지. 휴일이면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 머리도 식히면서 화우(畫友)들과 그림을 그렸어. 수채화를 그리다가 본격적으로 유화를 시작하게 되었지. 그러면서 화가들이 참여한 단체에도 가입하고 전시회도 열게 되었어. 내 그림의 주된 소재는 세상 풍경이야. 삶의 체험을 풍경 속에 녹여내고 싶어. 그러고 보니 벌써 유화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네.

홍 : 적지 않은 연세인데도 새로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시는군요.

한 : 곧 아흔이지만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여전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어?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나는 그들에게 “자기 앞만 보며 달려가지 말고, 소중한 걸 놓치는 게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

홍 : 말이 나온 김에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습니까?

한 : 어떤 분야에서 일하건 자신의 몫으로 맡겨진 건 건성으로 넘기지 말고 끈질기게 파고들어 끝을 봐야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면 하고자 하는 일을 연구하고 집중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나 역시 아흔이 가까우니 그걸 알게 되었어.

홍 : 포항제철 후배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텐데요.

한 : 신문과 방송을 통해 포항제철의 상황을 보고 있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나와는 여러 면에서 생각하는 게 다를 거야. 다만 무언가를 이루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건 시대를 뛰어넘는 진리 아니겠어. 2022년 태풍 힌남노가 포항제철을 덮쳤을 때 걱정을 많이 했지. 그런데 회사 구성원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 이후에 모두의 노력으로 재난을 잘 극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지. ‘아직 포항제철의 전통은 살아 있구나’라고 칭찬해주고 싶었어.

2022년 9월 6일 포항 일대를 덮친 태풍 힌남노는 여의도 면적의 세 배에 달하는 포항제철소 생산 라인을 완전히 침수시켰다. 하지만 포항제철은 135일 만에 공장을 복구했고, 그 과정을 ‘함께 만든 기적,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는 책에 담았다.

홍 : 포항제철의 전통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합니까?

한 : 그게 어떤 일이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남들이 말해도 포항제철 직원들은 해내곤 했어. 밤을 새우더라도 공사 기간을 맞추고, 기존의 해결 방식이 없다면 어떻게든 새로운 해결 방법을 기어코 찾아냈지. 그게 포항제철의 전통이 아닐까. 어떤 큰 고난도 이겨낼 힘이 바로 거기서 나오지.

홍 : 포항제철이 다른 기업과 비교해 가진 장점은 뭘까요?

한 : 어떤 사람들은 포항제철을 ‘주인 없는 회사’라고 말하는데, 실상 포항제철은 국민이 주인인 기업이라고 봐야 해. 그러니까 구성원들이 책임감 있는 자세로 일해야지. 내가 임원으로 있을 때도 후배들에게 항상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어.

홍 :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요?

한 : 젊은 시절에 국가 기간산업의 기틀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거야. 어떤 어려운 일을 맡아도 절망하지 않았지. 고생이 클수록 고생 이후의 보람 또한 커진다는 걸 포항제철에서 일하면서 깨달았어. 돌아보면 그때가 내 삶의 황금기였지. 나와 동료들이 허허벌판에 세계에서 손꼽는 철강공장을 만드는 초석을 놓았어. 국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건 큰 보람이 아니겠어? 그렇기에 부끄럽거나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홍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습니까?

한 : 포항제철 성공의 핵심은 공사 기간 단축이었어. 공기 단축은 건설 원가를 줄이는 것은 물론, 불황일 때 제품을 만들어 호황일 때 판매할 수 있게 해주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부실공사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지. 21세기인 지금도 다를 게 없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부실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확인하고 감독해야겠지. 이는 개별 회사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 아닐까 싶어.

한경식

1935년 전남 나주 영산포읍 오량리에서 태어났다. 광주농업학교를 거쳐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으나 4학년 때 중퇴했다. 이후 전남대 전기공학과에서 공부했다.

대학을 마친 후 1961년 대한석탄공사에 입사해 장성광업소 전기계장으로 일하다가 1968년 포항제철로 회사를 옮긴다. 제2고로 건설과장, 제1고로 개수추진부장, 제선공사부장, 건설본부장(상무이사) 등을 거치며 포항제철의 초기 역사를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1990년대엔 포스코 계열사라고 할 수 있는 승주골프장 대표이사를 지냈고, 축구팀 전남드래곤즈의 창단 작업을 주도해 사장을 맡았다.

수준급의 솜씨를 지닌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하다. 홍익대 미술대학원 현대미술 최고위과정을 수료했으며, 여러 차례 개인전과 회원전 등을 열었다. 한국 제철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1981)과 산업포장(1988)을 받았고, 프로축구대상 특별상(1995)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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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정리 : 홍성식(본지 기자) / 사진 촬영 : 김훈(사진작가) / 사진·그림 제공 : 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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