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의 기억, 영일만의 격랑 -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 3
황 인 ⑥ 지역 곳곳의 문화유산과 못다 한 이야기

유강 관찰사 탁본을 하고 있는 황인 선생.

다섯 번째 인터뷰하던 날에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선생과 동해면 신정리 선돌과 금광리 고인돌군을 둘러보고 금광저수지를 산책했다. 함께하는 네 시간 내내 선생은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했다. 선생의 눈에는 지역의 거의 모든 것이 역사의 흔적이었고 이야기보따리였다. 신정리 선돌을 보러 가던 중에 선생이 승용차의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천 문충리에 가면 포은 정몽주 생가터가 있는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승마석뿐이지. 그래도 거기가 정몽주 생가가 아닌가. 이육사 시인도 일제강점기 때 도구에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포도 농장에서 그 유명한 ‘청포도’를 구상했지. 또 호미곶에 있는 등대에는 조선 왕실의 배꽃 문양이 남아 있어.

우리 지역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와 유물이 많아. 다행스럽게 지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조금 늘어났어. 하지만 짧은 지식으로 역사를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건 위험해. 사료에 대한 고증이 우선이지.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지 미화해서도 폄훼해서도 안 돼.

황인(이하 황) : 저기가 ‘학삼서원’인데 현판을 김구 선생이 썼어. 그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는지? 김구 선생의 글 원판은 잃어버리고 말았어. 그걸 수소문해보니 어떤 고문서 수집가 손에 들어가 있었어. 그 중요한 걸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 싶어 포항문화원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수집가를 만나게 되었지. 그런데 그 수집가가 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결국 못 사고 말았어. 그뿐 아니라 포항에는 많은 역사와 문화의 이야깃거리가 있어.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고 기록이 잘못되어 있기도 해서 안타까워.

여국현(이하 여) : 선생님이 보실 때 아쉬운 일이 많겠습니다.

황 : 연오랑세오녀만 해도 그래. 동해면에 있는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이 처음 개장했을 때 연오랑세오녀가 거북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되어 있었어.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거북이 아니라 바위를 타고 건너갔다고 기록되어 있지. 그래서 내가 바위를 타고 건너갔다고 했더니 고쳐놓더군. 이런 내용은 관련 문헌을 충분히 검토해야 해. 우리가 보존해야 할 역사와 문화유산이 잊히고 없어진 게 많아. 오천 문충리에 가면 포은 정몽주 생가터가 있는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승마석뿐이지. 그래도 거기가 정몽주 생가가 아닌가. 정몽주 무덤이 있는 용인에서는 축제도 한다는데, 생가를 복원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텐데…. 이육사 시인도 고향은 안동이지만 일제강점기 때 도구에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포도 농장에서 그 유명한 ‘청포도’를 구상했지. 또 호미곶에 있는 등대에는 조선 왕실의 배꽃 문양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런 게 사소한 것 같지만 잘 보존해서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전해야겠지.

여 : 저도 몰랐던 이야기가 곳곳에 있군요.

황 : 어디 그뿐인가. 장기는 예부터 명망 높은 선비들이 귀양을 많이 왔지. 장기에 유배 온 대학자들이 장기는 물론 경북 일대의 학문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어. 우암 송시열이 장기에 4년 있다가 떠난 뒤 우암의 공덕을 기린 죽림서원이 세워졌고, 다산 정약용도 장기에 220일 머무는 동안 150여 수의 시를 지었지. 장기초등학교에 있는 우암과 다산의 사적비에는 두 분으로 인해 장기가 최고 수준의 학문을 전수받은 것은 행운이었다고 적혀 있어. 이런 걸 역사 시간에 가르치고, 학생들이 보고 듣고 체험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지. 우리 향토사부터 제대로 알고 기억하고 후대로 이어주는 게 참 중요해. 그런 점에서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 포스코 문화재돌봄 봉사단이 진각국사 사당과 남파 대사 무덤에 가는 길 앞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등 애를 많이 썼어. 정말 고마운 일이지.

 

장기읍성 척화비 탁본.
장기읍성 척화비 탁본.

여 : 동해면에 목장성(牧場城)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황 : 동해면 흥환리 일대에 제주도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큰 말 목장이 있었어. 과거에 북벌 정책의 하나로 군마를 기르고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하거나 중국에 조공으로 바치는 말들을 사육하려고 만든 곳이지. 이곳이 특이한 건 말을 방목해 길렀다는 것이야. 말들이 있던 목장 둘레에 성을 쌓았는데 그게 목장성이야. 원래 둘레가 8킬로미터가 넘었는데 지금은 5킬로미터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어. ‘감목관(監牧官)의 공덕비’라고, 목장을 관리하는 관리의 공덕비가 있고, ‘울목김부찰노연영세비(蔚牧金副察魯延永世碑)’ 같은 역사적 자료가 될 비도 남아 있지.

여 : 포항에 봉수대 터도 꽤 있지요.

황 : 모두 열세 개가 있어. 장곡, 대곶, 복길, 사화랑, 도리산, 오봉산 등등. 내가 그걸 두고 몇 번인가 포항시 정신문화자문위원회에서 이야기했지. 포항에서 불빛축제를 할 때 봉수대 터를 복원해서 봉홧불을 올리고, 등댓불도 이어서 밝혀보자고 말이야. 우리 지역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살려내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 그게 진짜 역사고 사람들한테 관심을 끌 수 있는 일인데, 좀 아쉽지.

금광저수지를 돌면서 선생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동안 역사와 연관된 이야기만 해왔던 터라 교사로서 선생이 기억하는 일화도 궁금해졌다.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머뭇거리던 선생은 세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하나는 김규호 학생 이야기, 다른 두 이야기는 학생들과 했던 활동이었다.

여 : 동해중학교 김규호 학생 이야기는 당시 지역방송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학생이 골수암 판정을 받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더군요.

황 : 1998년에 이 사실이 지역 언론을 통해 알려져 당시로서는 거금인 5천만 원이 모금되었고 김규호 학생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 그때 참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었어. 어느 날 한 포스코 직원이 출근하면서 봉투 하나를 주고 가더군. 이름이라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그냥 가버렸어. 당시에 그런 일이 참 많았지. 당시 나는 우리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하다고 생각했어.

여 :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에 계실 때 동해안에서 전승되던 민속놀이 ‘월월이청청’을 복원해 2001년 전국청소년민속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더군요.

황 : 학생 1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공연이었지. 전통 민속놀이를 발굴하고 복원한 것이라 참여한 교사와 학생들 모두 보람을 느꼈어. 이런 활동이 학생들에게 우리 지역과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기회지.

 

제37회 경북도민체전에서 월월이청청 공연을 하는 포항정보여고 학생들.
제37회 경북도민체전에서 월월이청청 공연을 하는 포항정보여고 학생들.

선생은 학생들을 문화재 현장에 데리고 가서 역사를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1980년대부터 6월이 되면 보이·걸스카웃 학생들을 데리고 이 지역의 의병 장헌문(蔣憲文) 대장과 임창규(林唱圭) 의사의 묘소를 참배하는 일을 20년 넘게 계속했다. 선생의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둬 장헌문 대장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여 : 요즘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떻다고 보십니까?

황 : 우리 지역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와 유물이 많아. 다행스럽게 지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조금 늘어났어. 하지만 짧은 지식으로 역사를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건 위험해. 사료에 대한 고증이 우선이지. 그렇지 않으면 역사가 다음 세대로 제대로 전달될 수 없어.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지 미화해서도 폄훼해서도 안 돼.

여 :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황 : 지금이라도 우리 정신문화의 풍성함을 찾아야 해. 그게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우리 선조가 살아왔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기록과 흔적 속에 남아 있지. 우리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잘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중요한 소명이라고 생각해.

<끝>

황 인

1950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대구로 이주해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영남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동해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포항과 인연이 닿았으며, 포항정보여고와 동성고에서 2008년까지 재직한 후 정년 퇴임했다. 포항 지역의 고인돌을 처음으로 조사·발굴해 ‘영일군사’에 소개했고, 지역 민속놀이인 ‘월월이청청’을 조사·발굴한 후 포항정보여고 학생들과 공연해 제7회 청소년 민속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흥인군의 비석과 남파 대사의 비석을 발견해 비각을 세우도록 했고, 석곡 이규준 선생의 목판을 경북 문화재 자료로 지정하게 했다. 또한 석곡의 사상과 학문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알려 석곡기념관 건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포항시사’ 집필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포항문화원 향토조사 연구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22년 제12회 애린문화상을 수상했다.

대담·정리 : 여국현(시인) / 사진 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 제공 : 황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