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의 기억, 영일만의 격랑 -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 3
최인수 ②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포항살이

옛 대동고 교정모습. /대동고 제공

최인수 선생은 1975년에 포항 대동고등학교에 부임하게 된다. 대구 효성여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20여 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대구를 떠나 객지로 오기까지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오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었을 터이다.

 

대동고 개교 2년이 지난 시점이었지. 신생 학교여서 학생 유치에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이야. 교장은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당시 교사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정구대회 개최를 생각한 거야. 그 대회에 중학교 교사들을 초청해 우수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홍보할 구상을 한 거지. 그뿐 아니라 대동고에도 정구부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러던 차에 나를 보고는 이 계획을 실행할 적임자로 생각했나 봐. 그렇지 않아도 여고 근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자고 했지.

김 : 대구에서 포항으로 온 이유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최 : 효성여고에서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덧 겨울이 되었지. 방학인 데다 테니스부 운동도 잠시 쉬는 기간이라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집에 찾아왔어. 고등학교 때 같이 운동한 친구인데 포항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 예전에 복잡한 일 때문에 생각을 정리할 겸 포항에 바람 쐬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송도 근처에서 우연히 이 친구를 만나 크게 대접받은 적이 있었어. 친구가 술 한잔하자기에 그때 진 신세를 갚을 겸 따라나섰지. 당시에 일명 ‘나라시’라고 부르는 장거리 합승 택시가 있었거든. 대구역에서 그걸 잡아타고는 경주에 가자고 하더니 가는 도중에 포항으로 행선지를 바꾸지 뭔가. 제대로 얻어먹으려나 보다 생각하고 아무 말 없이 포항까지 갔어. 술자리가 파한 후(선생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어릴 적 부친이 술로 건강과 재산을 잃는 과정을 본 까닭이다.) 다음 날 오전 10시에 포항전화국 옆 다방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보냈지. 다음 날 아침, 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어. 대신 다른 사람이 다가오더군.

김 : 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최 : 김현호 대동고등학교 교장이었어. 김현호 교장은 포항정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리며 여기는 어떻게 오셨는지 물었어. 나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서 사실은 여름에 대구 효성여고에서 열린 전국사립고등학교 교장 회의에 참석했다가 선수를 지도하는 나를 보고 대동고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친분이 있던 내 친구에게 자리를 마련해달라 부탁해서 나를 포항에 데리고 온 거라고 하더군. 내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친구도 나타났어.

김 : 김현호 교장이 선생님을 데리고 오려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요?

최 : 1973년에 대동고등학교가 개교했으니 2년이 지난 시점이었지. 신생 학교여서 학생 유치에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이야. 교장은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당시 교사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정구대회 개최를 생각한 거야. 무슨 말이냐면 그 대회에 중학교 교사들을 초청해서 우수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홍보할 구상을 한 거지. 그뿐 아니라 대동고등학교에도 정구부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러던 차에 효성여고에서 나를 보고는 이 계획을 실행할 적임자로 생각했나 봐. 이런 얘기를 하면서 대동고로 오면 안 되겠냐고 간곡히 부탁했어. 친구도 자기와 운동을 같이하며 포항에서 살자고 설득했고. 그렇지 않아도 여고 근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자고 했지.

김 : 효성여고에서도 선생님이 필요했을 텐데 전근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최 : 왜 없었겠나? 사립학교 교사가 다른 사립학교로 옮기려면 전(前) 학교 교장의 허가가 있어야 하거든. 대동고로 가겠으니 허락해달라고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펄쩍 뛰었지. 아주 난리가 났어. 몇 번을 찾아가서 사정하고 온 가족이 포항으로 이사했다고 거짓말도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어. 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하고 승낙해주더군. 허가서를 주면서 “최 선생, 거기 가면 분명히 후회하고 돌아오고 싶을 거다. 앞으로 3년 동안 최 선생 후임자는 뽑지 않을 테니 그 안에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하셨어. 정말 죄송하고 또 고맙더군. 우여곡절 끝에 대동고등학교에 부임했을 때는 이미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 있었지.

김 : 대동고등학교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최 : 포항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대동고등학교로 가자고 하니까 대동고등학교를 모르는 거야. 동료 기사에게 묻고 물어 학교에 도착하니 입구가 비포장이라 시커먼 진창길이야. 건물 두 개 중 하나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어. 지나가는 학생에게 고등학교 건물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짓고 있는 건물을 가리키더군. 그 순간 효성여고 교장이 한 얘기가 떠올랐어.

김 : 다시 대구로 돌아가고 싶었겠습니다.

최 : 김현호 교장을 만나 인사를 드리는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어. 김 교장도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았는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3년만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하더군. 나도 그 난리를 치고 왔는데 자존심 때문에 바로 돌아가기는 싫었어. 그래서 3년은 하고 돌아가자고 생각했지. 그렇게 대동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차츰 학교에 정이 들었어. 얼마 뒤에는 대구로 돌아갈 생각을 아예 안 하게 되었고 말이야.

 

1998년 포항시 체육교사협의회 회장 취임식. 이태준(왼쪽부터) 포항시 체육회 부회장, 박기환 포항시장, 최인수(본인), 김현호 대동고 교장.
1998년 포항시 체육교사협의회 회장 취임식. 이태준(왼쪽부터) 포항시 체육회 부회장, 박기환 포항시장, 최인수(본인), 김현호 대동고 교장.

김 : 당시 학교의 체육 교육은 어땠습니까?

최 : 신생 학교라 시설이 완공되지 않았지만 운동부는 꽤 활성화되어 있었어. 육상부와 조정부가 있었지. 이듬해에 검도부가 창단되는 등 당시에는 체육 교사가 흔치 않았는데도 운동부 육성에 열성적이었어. 그 당시 대동고 외에 동지상고(현 동지고)에도 검도부가 있었고 포항수고와 동지여상(현 동지여고), 포항실업전문대(현 포항대학)에 조정부가 있었지. 1978년에는 포항고에 사격부가 생겼고.

김 : 하지만 3년 뒤에는 대동고등학교를 떠나게 되는군요.

최 :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포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혼했어. 학교 앞 주택에 신혼집을 차렸는데 집주인이 교장 선생님의 동생이었어. 동생도 교사였는데 울진 매화중학교로 발령을 받아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지. 그런데 집주인이 갑자기 포항으로 다시 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당장 집을 비워주고 다른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야. 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무렵에 포항제철에서 공립이었던 포항공고를 인수했어. 포항제철이 필요한 인력을 직접 양성하겠다는 조치였지. 그게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야. 그런데 포항공고에서 근무하던 교사 중 다른 공립학교로 전근한 이들이 많아서 교사가 부족했지. 그때 포철공고에서 교사로 오면 13평 아파트를 제공해준다는 거야. 그런 이유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지.

김 :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습니다.

최 : 그게 아니었다면 대동고에 남았을 거야. 김현호 교장은 내가 학교를 옮긴다고 하니 엄청 화를 냈지. 내가 학교에 남아 학생 유치에 도움을 주고 정구대회에도 같이 나가주길 바랐으니까. 얼마나 화가 났는지 나한테 아예 포항을 떠나라고 하더군.

김 : 전후 사정을 얘기해보지 그랬습니까?

최 : 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옮긴다는 것을 사실대로 말했으면 오해가 풀렸을 텐데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어. 그 후 몇 년 동안은 우연히 만나 인사를 드려도 아는 체도 하지 않더군. 참 마음이 아팠어. 그러다가 어느 해, 크리스마스카드에 용서를 비는 말과 함께 대동고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자세하게 적어 보냈어. 그제야 관계가 회복되었지. 그 후로는 교직원 국가대표로 일본에 같이 다녀오고 내가 포항사립중·고등학교 체육교사협의회 회장에 취임할 때 축사도 해주셨어.

최인수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가족과 대구로 피난했다. 대구상고 시절 정구 선수로 활동했고 경북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재학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대학 졸업 후 대구 효성여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1975년 포항 대동고등학교로 부임하면서 포항과 인연이 되었다. 1979년 포철공고로 옮겨 야구부와 축구부 창단을 주도했다. 포항시 사립중·고등학교 체육교사협의회 회장, 포항시체육회 부회장, 포항시 생활체육협의회 상임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문체부장관 표창, 경상북도교육상, 포항시 최고체육 공로상 등을 수상했고 2007년 정년 퇴임했다. 2014년 종목별 원로들로 구성된 ‘포항 체육을 사랑하는 모임’(체사모)을 결성해 회장을 맡고 있다.

대담·정리 : 김도일(소설가) / 사진 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 제공 : 최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