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후 변해가는 민성 역…“이병헌에게도 새로운 얼굴 느껴”

“보고 나와서 ‘재미있었다’는 감상을 남기는 영화도 좋지만,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남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저는 이 영화가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면 좋겠어요.”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주연 배우 박서준은 “단순히 관람하는 것을 떠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9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는 ‘황궁아파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엄태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재난 이후 살아남기 위해 각기 다른 선택을 하는 인간군상을 그렸다.

박서준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 재난이 닥치면서 점차 변해가는 젊은 공무원 ‘민성’을 연기했다.새 입주민 대표 ‘영탁’(이병헌 분)과 함께 아파트로 몰려든 외부인을 쫓아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다면적인 인물이다.

그는 “과해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해도 안 되는, 적당한 선을 찾아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촬영 당시를 돌아봤다.

“특히 극 후반부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면서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끼는장면이 그랬어요.그 외에도 한 장면 한 장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호한 부분이 많았죠.차라리 한쪽으로 확 치우치는 캐릭터라면 오히려 쉬울 수 있는데, 중간 지점을 찾아야 했으니까요.”민성이 재난 이후 극한의 상황에 부딪힌 인물인 만큼 육체적인 고생도 따랐다.

아파트로 밀고 들어오려는 외부인 수십명과 충돌하고,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를 비집고 기어가는 등 강도 높은 연기를 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점은 무시무시한 더위였다고 한다.‘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영하 20도 안팎의 혹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촬영은 영상 30도가 넘는 여름에이뤄졌다.

박서준은 “촬영이 끝나고 패딩 점퍼를 벗어 던진 순간 굉장한 해방감을 느꼈다”며 웃었다.

“(축구선수 역할을 맡은) 영화 ‘드림’을 끝낸 직후 ‘콘크리트 유토피아’ 촬영에들어간 상황이었어요.민성을 생각했을 때 근육질일 거라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7㎏ 정도 감량을 했죠.폭염 속에서 두꺼운 옷까지 입으니 컨디션이 오락가락했어요.촬영이 끝난 뒤에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 고마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박서준은 말했다.그 역시 ‘내가 민성이었다면’ 하는 상상을 하면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기 때문이다.

“황궁아파트 주민들 면면을 보면 방식은 달라도 목표는 같아요.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죠.저 역시도 그런 상황이 닥치면 가족을 1순위로 생각할 것 같아요.가족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하지만 전 민성과는 달리 외부인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볼 것 같아요.하하.”박서준은 함께 호흡을 맞춘 이병헌을 보면서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 대해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그는 이병헌의 출연 소식을 듣고 엄 감독에게 먼저 연락해 자신도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만큼 이병헌의 오랜 팬이다.

“선배님은 역시나 촬영장에서 대본을 보지 않으시더라고요.이미 생각을 다 하고 오시는 거니까요.그 모습과 저를 비교하면서 저도 나쁘지 않게 하고 있다고 자신감이 생겼어요.촬영하면서는 ‘아, 경력이 이렇게 긴 배우에게도 새로운 얼굴이 있구나’ 느꼈습니다.저도 앞으로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