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의사 유재훈 포항의료원 호스피스센터장

포항의료원 호스피스센터 의료진.
포항의료원 호스피스센터 의료진.

말기 암 환자나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호스피스이다. 호스피스는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여생을 잘 마무리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이며,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본 호스피스 의사에게 좋은 죽음은 어떤 것일까. 포항의료원 호스피스센터에서 내과 전문의이자 호스피스 의사인 유재훈 센터장을 만났다. 호스피스 병동은 임종의 이미지와 달리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공간은 쾌적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환자 신체 고통 줄이고 심리적 안정 지원 받는 곳
연명 의료 중단 본인 결정 등 남은 삶의 질에 우선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팀워크로 움직여
관계 정서 중요 의료진과 환자들 가족처럼 지내
이번 월드컵도 함께 TV보며 대표팀 응원

특정요건 엄격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의
적극적인 안락사 법적 허용은 문제점 있어
존엄한 임종 위해 호스피스 지원 확대 우선돼야

경북, 입원형 기관 12곳 196병상 불과 ‘전국 최저’
포항은 포항성모병원·포항의료원 두곳 뿐
모든 이의 마지막 위한 법적·행정적 뒷받침 필요
궁극적으로 모든 말기 질환자들 이용할 수 있어야

-호스피스 병동은 어떤 곳인가.

△치료를 해도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신체 고통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을 지원받는 곳이다. 죽음은 치료의 실패가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호스피스의 주된 역할 중 하나이다.

-호스피스 서비스는 병원에서만 받을 수 있나.

△호스피스 서비스는 입원형, 자문형, 가정형이 있다. 포항의료원 호스피스센터는 현재 입원형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중단되었던 자문형 호스피스를 재개할 계획이다. 자문형은 일반 병동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다. 호스피스 팀이 집으로 방문하는 가정형은 수요는 많지만 활성화가 덜 되어 있다.

-일반 병동과의 차이점은.

△지금까지 병원은 의료진과 환자 중심이다. 호스피스는 의료진과 환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확대된 개념이다. 일반 병동은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심장이 뛰지 않을 시 연명치료를 하게 된다. 호스피스는 주로 통증조절에 초점을 맞추고 연명의료 중단을 환자 본인이 결정할 수 있어 여생의 삶의 질을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링거나 주사, 투약 시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며, 외출이나 여행도 환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다녀올 수 있다.

-담당의로서 증상이 나빠질까 봐 우려되지 않나.

△미리 걱정해서 환자들의 마지막 소망을 막을 수는 없다. 호스피스 환자들의 버킷리스트를 보면 정말 단순하다. 뭘 먹고 싶다거나,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누구를 만나고 싶다는 것등. 건강한 이들에게는 별일이 아니지만 말기 환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움직일 수 있을 때 다니라고 말씀드린다. 일주일 뒤면 그 컨디션도 안될 때도 있다. 의료진의 판단하에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원하는 일을 하시도록 한다. 얼마 전에는 입원 당시에 외출은 엄두도 못 내던 환자가 아들의 결혼식도 다녀오고, 통증까지 조절돼 퇴원을 했다.
 

유재훈 포항의료원 호스피스센터장.
유재훈 포항의료원 호스피스센터장.

-코로나 시기 호스피스 환자들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코로나19 관련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환자들을 소개(疏開)하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말기 암 환자나 거동이 안되는 분들은 전국 병원에 연락해 전원시켰다. 국가적인 재난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감염병전담병원 전환 하루 전까지 촉박하게 환자를 타 병원으로 어렵게 이송하면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원망도 많이 들었고 안타까운 심정도 컸다.

-호스피스 의사가 된 계기는.

△주전공이 내과여서 말기 암 환자를 보게 된다. 말기 환자는 정서적 지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호스피스가 그런 역할을 담당한다. 호스피스 전문의가 된 건 6년 정도 됐다. 호스피스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시험을 치고 실습 과정을 거쳐야 호스피스 인정의 자격이 부여된다. 수업은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함께 토론하고 연극하는 방식이다. 호스피스 병동은 팀워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병동의 팀워크는 누가 만드나.

△우리 병원에는 간호사 15명과 도우미 30명, 사회복지사 1명, 의사 3명이 근무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의사의 역할은 얼마라고 말할 수 있나.

△의학적 판단은 의사가 잘하겠지만 전반적인 컨디션 파악은 간호사들이 훨씬 잘한다. 일반 병동에서 의사의 역할이 70~80% 라면, 호스피스에서는 30%나 될까. 간호사가 30%를 담당하고 요양보호사와 자원봉사자, 사회복지사의 역할도 크다. 구성원 중에 한쪽만 삐끗해도 돌아가지 않는 시스템이다. 호스피스에서는 관계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의료진과 환자가 거의 가족처럼 지낸다. 이번 월드컵에도 휴게실에서 함께 TV를 보며 대표팀을 응원했다.

-호스피스를 받는 시점은 어떻게 정하나.

△일반적으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가 치료가 불가능한 시기를 판단한다. 대부분 전문의의 판단으로 호스피스에 오게 되지만, 환자가 치료를 거부해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우선 일반 병동에 입원시켜 혈액검사와 CT 검사를 하고 치료가 가능하면 환자를 설득한다.

-보통 의료 행위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지만 호스피스 의사는 죽음을 지키는 일을 한다. 일반 병동과 호스피스 병동을 오가며 느끼는 온도차가 크겠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은 다르지 않다. 호스피스가 없을 때도 말기 암 환자는 병동에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처방과 처치를 하는 점은 비슷하다. 다만 그 목적이 치료보다는 돌봄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호스피스에서는 완치보다 고통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둔다. 호스피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환자가 많아 중압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해서 회진을 돌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죽음을 목격하면서 쌓이는 심적 부담감은 어떻게 해결하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이겨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죽음이든 아쉬움이 남지만 최선을 다하면 그나마 덜하다. 가능한 한 좀 더 손잡아드리고, 뭐가 불편한지 살피고, 해결할 수 없다면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린다. 호스피스 전문의로서 두 가지 원칙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과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병명을 모른 채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 마지막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호스피스 팀원 모두 임종을 많이 접하다 보니 정서적 소진이 높은 수준이다. 병동 내 소진관리 프로그램으로 팀원들과 대화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마련해 팀원들의 소진을 관리하고 있다.

-최근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허용하는 존엄사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삶과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적극적인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환자는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지만 결국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역할은 의사가 해야 한다. 의사들에게 버거운 짐을 지우는 일이며 심적 부담이 큰 일이다. 다만 특정 요건이 엄격하게 갖춰진 상태에서의 연명의료 중단은 찬성한다. 그리고 경제적 부담으로 죽음이 강요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말기 환자의 존엄하고 품위있는 임종을 위해서는 호스피스 지원부터 확대해야 한다.

-호스피스 병동이 얼마나 부족한 상황인가.

△현재 전국의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수는 96개 1천595병상이며 경북에는 12개 기관 196병상이 전부이다. 경북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부족한 수준이다. 포항에는 포항성모병원과 포항의료원 두 곳뿐인 현실이다. 포항의료원 호스피스센터는 코로나19 직전에 리모델링을 시작해 코로나 시기 두 차례 오픈했다가 문을 닫아야만 했다. 당시 언제 운영을 재개하는지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수요가 많아서 대기하는 실정이다. 미국과 영국 등은 말기 질환 환자의 반 이상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환자가 원해도 들어갈 병실이 없다. 포항의료원은 호스피스 병상을 차츰 늘릴 계획이며, 호스피스 사업은 공공의료기관이 해야 하는 사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임종과 관련된 죽음의 질이 높아져야한다. 호스피스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모든 이들이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법적, 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재 암 환자 위주로 호스피스 병동이 운영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말기 질환자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하고 편안한 각자의 집에서 받는 가정형 호스피스의 활성화도 필요하다.

-한 사람이 삶을 마무리하는 호스피스에서 남은 사람들은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좋은 죽음은 떠나는 이에게도 남은 이에게도 해당될텐데, 의사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웰다잉(well-dying)’은 무엇인가.

△의사로선 환자가 되도록 덜 아프고 조금이라도 명료한 의식으로 마지막을 맞길 바란다. 호스피스는 임박한 죽음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삶에 집중한다. 마지막 나날을 충만하게 해주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웰다잉을 위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 연명치료 여부를 미리 결정해 놓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죽음을 앞두고 단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호스피스 환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맞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배은정 작가

유재훈 센터장은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심장연수강좌를 수료했다. 소화기내시경학회 정회원이며 현재 경상북도포항의료원 진료부장과 호스피스센터장을 겸직하고 있다. 포항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은 2012년 12월 완화의료전문기관(입원형)으로 20병상이 지정되어 경상북도 최초로 운영을 시작했고, 코로나19로 운영을 중단했다가 리모델링을 거쳐 올해 10월부터 26병상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