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행복한 공동체를 꿈꾸는 인문학자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열린행복아카데미’

한 분야에 평생을 몸담은 이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철학서다. 인생의 벽 앞에 먼저 부닥쳐본 누군가의 경험담만큼 실속 있는 지혜는 없다. 앞에 놓인 갈림길을 동시에 갈 수 없지만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는 통섭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어느 시구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며, 타인의 삶을 경청하는 것은 또 다른 우주와 조우하는 일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공동체의 희망은 잘 듣는 힘에 있다. 마음을 다해 듣고 쓰겠다. 편견 없이 질문하고, 귀 기울여 공감하며, 왜곡 없이 쓰는 겸손한 기록자가 되겠다.

 

열린행복아카데미는 2009년부터
길벗들과 인문고전을 읽으며 시작했다.
혼자 읽어서 도달할 수 없는 지혜를
같이 읽으면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군자보살’
이라고 칭하곤 하는데
군자보살은 스스로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남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행복해지는 공부가
인문학이다.

한국인의 행복수준은 경제력이나 복지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올해 유엔 세계행복 보고서가 발표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46개국 가운데 59위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심지어 전 세대에서 행복도보다 불행도가 높게 나타난 설문조사도 있었다. 코로나19와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삶의 질은 더 나빠졌다.

행복보다 불행을 더 가까이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 여기 행복을 찾아 길벗하자는 인문학자가 있다. 포항에서 인문학 공동체 ‘열린행복아카데미’를 개설해 14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박희택 원장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불교시민사회운동에 몸담았으며, 수녀들이 운영하는 복지시설 마리아의 집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지만 정작 행복하다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들은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도 불행의 원인들을 향해 달려가고, 행복을 바라면서도 무지하기 때문에 행복의 원인들을 원수처럼 물리친다”는 말이 있다. 행복하고 싶으면 이미 주어진 행복의 원인들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

-‘열린행복아카데미’가 그런 곳인가.

△‘열린행복’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행복이며, 풍성하게 열매 맺는 행복을 의미한다. 2009년 8월부터 길벗들과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우리 시대의 3대 위기를 생태, 인성, 빈부로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명공경, 인문공부, 복지이타(福祉利他)의 실천을 추구한다. 독서클럽, 인문학당, 사회복지회 등을 부설기관으로 두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공부하는 이유가 있나.

△혼자 읽어서 도달할 수 없는 지혜를 같이 읽으면 도달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촉진’ 현상이다. 한 독서운동가의 말처럼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고 혼자 읽다 보면 내 수준에 지식을 가두게 된다. 종종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책에 나온 대로 바뀌길 강요하게 되는 이유다. 소속감과 친밀감이 넘치는 공부모임을 경험하는 일 또한 의미가 크다.

-생명공경과 인문공부와 복지이타를 설파하지만 알고 보니 정치학을 전공했더라. 현실정치는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지 오래인데.

△정치학은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윤리학은 개인의 행복을, 정치학은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윤리학을 정치학의 입문이라 한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공동체의 행복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 우리 집 사랑방은 밤마다 북적거렸다. 담배연기가 자욱하도록 시국담론이 이어졌고 나는 어른들 틈에서 귀 기울여 들었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신문을 받아봤다. 아버지는 인근 마을을 아울러 관혼상제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나라 돌아가는 일에 늘 관심이 많은 향촌 지식인이었다. 그런 영향으로 정치학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동양정치사상에 매료되어 문사철(文史哲)을 두루 공부했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대학에서는 복지학을 가르쳤고 유교와 불교, 노장사상에 관한 강의도 한다.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이도 드물 듯하다.

△복지학은 행복학이다. 박사논문에서 신라의 삼국통일 기반이 불교에 기초한 복지정책임을 규명했다. 역사적 복지정치학을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고전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 정치학과 복지학을 거쳐 다시 인문학으로 귀결됐다. 인문학은 인간 본연의 길을 모색하는 학문이니, 다른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여도 늘 인문의 맥락 위에 있었다.

-어릴 적에 어떻게 고전을 접했나.

△60년대 문교부가 고전읽기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했다. 시골학교에서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이 학교 명예를 걸고 출전했다. 문교정책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게 한 아주 전향적인 정책이었다.

부모님 옆에서 밭일을 거들며 ‘박씨부인전’이나 ‘삼국유사’를 얘길 해드리면 크게 흐뭇해하셨다. 고향이 경남 창원군 대산면인데, 고전읽기 군 대회에서 성과를 얻고 도 대회까지 출전했다. 선생님 댁에서 합숙까지 했었다. 일찍부터 고전을 접해선지 군대에선 내무반에 뒹굴던 ‘노자’와 ‘맹자’를 반복해서 읽었다.

- 경주, 포항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

△ 80년대부터 불교시민사회운동에 참여했고, 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 전국불교운동연합, 참여불교재가연대, 종교평화위원회 등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하다가 불교 종립대학인 위덕대학교 개교(1996) 준비과정에 참여했다. 문교부장관을 지낸 손제석 초대 총장을 도와 대학 아이덴티티 작업을 하고 기획업무를 초기에 7년간 맡았다.

박 원장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스스로 내세우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를 빛내길 잘 하는 사람이 있다. 박 원장은 분명 후자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포항에서 전쟁고아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본 거인 남대영 신부의 자취를 정리하고, 조선시대에 여중(女中)군자로 불린 장계향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했다.

-남대영 루이 델랑드 신부에 관한 학계의 사실상 첫 논문 저술자라고.

△본심(本心)에 바탕하여 인연이 성숙되었다. 경주에 내려와서 줄곧 인근 포항에 있는 큰 공동체인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에 관심이 갔다. 그러던 차에 사회복지학부에 수녀 두 분이 편입했다. 설립자 남 신부님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이 거의 안 된 상태여서, 자료를 요청하고 목록을 작성해서 연구에 들어갔다. 2012년에 신부님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했다. 지역사회에 반향을 일으켜 이듬해 ‘포항을 빛낸 인물’로 남대영 신부가 선정되는 계기가 됐다.

-가톨릭 신부이기에 일반 시민들은 종교지도자로 범주화하지만, 한국 사회복지 역사로 보면 ‘남대영복지’라는 개념이 있을 정도로 선구적 인물이라고.

△남대영 신부(1895~1972)는 한국의 주요 수도회인 예수성심시녀회와 성모자애원을 설립한 한국 사회복지의 선구자이다. 한국전쟁기에 포항 송정리에서 800여 명의 전쟁고아와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폈다. 당시에는 한국 최대 규모의 복지시설이었다. 1968년 포항제철에 자리를 내어주고 현재의 대잠동으로 이주할 당시 건물이 무려 35채가 넘었다. 신부님은 생의 마지막까지 헌신하다 포항에 묻혔지만 조명이 덜 되어 안타깝다.

-수녀님들과 유럽으로 성지순례도 다녀왔다고 들었다.

△2013년 수녀님들의 성지순례에 연구자로 포함시켜 주셨다. 수녀님 12명에 남자는 ‘아름다운 사람 루이델랑드’를 쓴 안병호 작가와 나뿐이었다. 남 신부의 고향인 프랑스 노르망디 빠리니와 성모발현지들, 이탈리아 가톨릭 성지를 12일간 순례했다. 시녀회 총원(대구)에 건립된 남대영기념관에 가면 빠리니홀이 있는데 그 이름도 내가 제안했는데 수도회에서 받아줬다.

-장계향학의 대표학자로도 불린다. 어떻게 연구하게 됐나.

△장계향(1598~1680)은 여중군자로 불린 유일한 인물이다. 경북도는 경북여성인물 선양 제1호로 장계향을 선정했지만 초기에는 교육프로그램 정도만 운영했다. 2010년 경북여성정책개발원 객원연구위원으로서 참여해 장계향의 삶과 정신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나섰다.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저술 이외에도 업적이 많은가.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군자는 한 가지 덕성만 갖춘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꼭 부합되는 인물이 장계향이다. 현모양처는 물론이고, 퇴계학파의 학맥을 잇게 한 교육자이며, 시서화(詩書畵)에도 능했다. 조선 중기 전란기에는 도토리죽을 끓여 구휼에 나선 사회사업가였다. 중용 사상가와 조리 과학자의 면모도 있다. 경북 영양의 아름다운 두들마을과 수비지역을 문화적으로 개척한 중심도 장계향이다. 장계향학을 집대성한 세 권의 총서를 기획했고, 두들마을에 있는 장계향 추모공간의 명칭을 짓는데도 역할을 해서 보람됐다. 영남대학교가 개설한 한국여성리더십학과에서도 장계향학을 강의했다.

- 뭘 하나 파고들면 끝을 보는 편인데, 더 조명하고 싶은 인물이 있나.

△근래에는 영성 대가 헨리 나우웬의 저서를 촘촘히 읽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한 포항의 거인 남대영과 여중군자 장계향, 그리고 현대 한국밀교 중흥조인 회당 손규상(1902~1963)을 ‘내가 만난 행복리더’라는 이름으로 한 권에 묶는 작업을 하고 싶다. 학문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바는 유불도기(儒佛道基)를 아우르는 회통(會通)인문학의 성과를 내는 것이다. 종교는 이념의 궁극이라 양보가 없다. 회통하고 대화해야 갈등이 사라지고 평화가 온다. 종교를 잘못 믿으면 자칫 허위와 환상에 빠지기 쉬운데, 이를 인문정신으로 초극(超克)하는 길을 밝히고 싶다.

-인터뷰 내내 생각거리들을 던져줘서 드넓은 인문의 세계를 여행한 느낌이다. 꿈꾸는 인문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남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군자보살’이라고 칭하곤 하는데, 군자보살은 스스로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인류가 축적해온 지혜를 통해 오류를 줄이면서 행복해지는 공부가 인문학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공부한 바를 현장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내년에는 독서와 강의를 결합한 ‘열린행복독서대학’을 열 계획이다. 함께해온 길벗들이 강사로 참여해 그동안 쌓은 인문소양을 나눌 것이다. 길벗들 가운데 각 분야 전문가가 많다.

박희택 원장은
한양대학교에서 정치학을 배우고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았다. 위덕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와 사회복지대학원 원장을 지내면서 복지정치론과 사회복지정책론 등을 가르쳤다. 불교아카데미 원장, 성모자애원 이사, 포항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장계향아카데미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회복지법인 우리공동체 대표이사이다. 2009년부터 ‘열린행복아카데미’를 설립해 길벗들과 ‘생명공경·인문공부·복지이타’의 길을 걸으면서, 강독과 강연, 칼럼과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인문향기를 전하고 있다.

배은정
1974년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학과 졸업. TBC·포항MBC·경북교통방송 작가. ‘포항문화의 상징과 공간’ 공저

/배은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