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복지식당’ 감독 정재익·서태수
정 감독 실제 경험 바탕으로 사각지대 놓인 복지 현실 짚어
“이동권은 장애인 삶·생존의 문제”… “이제는 공존 생각해야”

영화 ‘복지식당’ 정재익(왼쪽) 감독과 서태수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복지식당’ 주인공인 30대 청년 재기(조민상 분)는 사고로 하루아침에 중증 장애인이 된다. 혼자 힘으로는 몇 걸음도 갈 수 없고, 왼쪽 손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벌벌 떨린다. 언어장애까지 생겨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가에서 ‘인증’한 그의 장애등급은 5급. 걸을 수 있고 의사 표현도 가능한 경증 장애인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중증 장애인이면서도 복지 혜택은 거의 받을 수 없다. 서류상으로는 경증, 실제로는 중증 장애인인 터라 맞춤형 일자리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영화는 공동 연출을 맡은 정재익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정 감독 역시 과거 사고를 당해 중증 장애인이 됐지만, 장애인 등급제 벽에 막혀 제대로 된 복지를 누리지 못했다. 1∼6등급으로 나뉜 등급제는 2019년 폐지됐으나 이전에 받은 등급으로 인해 처지는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정 감독은 “장애인의 세계를 비장애인이 너무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 복지 제도와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 제 직업이 간호사였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 역시 마음속으로는 장애인을 낮잡아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막상 장애인이 돼 보니 장애인들이 이해가 가더군요. 사회에서 가해지는 ‘차별’이 장애 그리고 장애인을 만드는 것 같아요.”

정 감독과 함께 메가폰을 잡은 서태수 감독도 “저 역시 장애인 단체와 워크숍을 하지 않았으면 장애 감수성이 제자리였을 수 있다”며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서 감독은 몇 해 전 제주에서 장애인 단체의 영화 제작 워크숍에 참여했다가 정 감독을 만났다. 함께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정 감독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작업에 들어갔다. 연출 경험이 거의 없는 정 감독을 도와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서 감독은 “정 감독이 처음 쓴 시나리오에는 분노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하면서 “원래 단편으로 만들려던 것이 장편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장애인 등급제뿐만 아니라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이동권’ 문제도 자주 등장한다. 장애 5급 재기는 이른바 ‘장콜’(장애인 콜택시)을 이용할 수 없어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심지어 전동 휠체어마저 무료로 얻지 못한다.

정 감독은 “수십 년을 밖에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움직여야 일도 할 수 있는데 그것부터 막혀버린다. 이동권은 장애인에게 삶,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복지식당’은 비장애인을 악역으로, 장애인을 선역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장애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재기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장애인 단체 내에서 파벌을 활용해 군림하는 인물 병호(임호준)를 통해 장애인 사회의 폐쇄성을 고발하기도 한다.

정 감독은 장애인의 세계도 비장애인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오히려 더 좁은 사회이기 때문에 권력 싸움이 강하고 ‘찍히면 끝’이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두 감독이 처음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도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들의 편견이었다고 한다. 정 감독은 서 감독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질 것이라는 주변 장애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손가락질도 당했다.

“‘바보’가 영화를 만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그때 ‘아, 내가 영화를 죽어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요. 일도 그만두고 활동 보조 서비스 시간도 깎여가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서 감독은 “그런 시선이 무척 힘들어서 둘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영화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만든다고 하니 주위에서 비웃고, 투자마저 쉽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도 정 감독이 그토록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 감독은 시위나 청와대 국민 청원 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영화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정부가 우리 영화를 보고 정책을 만들 때 장애인 사회 안으로 들어와 소통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대충 만들 게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경청해 실제로 필요한 부분을 반영해야 한다는 걸요. 화장실에 들어갈 때 보면 높이 3㎝의 턱이 있어요. 그런데 그 턱만 없애도 장애인의 세상은 완전히 바뀝니다.”

서 감독은 관객들이 일상에서 좀 더 장애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 주변에 있는 장애인이 무엇이 필요할까, 나와 같이 살기 위해 뭘 하면 될까, 그 정도의 생각만 해주신다면 만족합니다. 점차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곧 장애인 사회가 닥쳐올 거예요. 그때를 대비하려면 비장애인들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재기는 계속 나올 테니까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