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빠마’ 섹 알 마문 감독
2009년 귀화한 한국인…시집온 결혼이주 여성 삶 그려
“외모도 강제… 문화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영화 ‘빠마’ 연출한 섹 알 마문 감독.
“어머니, 저 아직 아이 생각 없어요. 준비가 안 됐어요.”, “무슨 애 낳는 데 준비가 필요해?”(영화 ‘빠마’ 중 한 장면)

빨리 아이를 가지라고 타박하는 시어머니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며 거부하는 며느리. 너무나 자주 접해 고부갈등의 클리셰로 여겨지는 이 장면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며느리가 결혼이주여성이기 때문이다.

2009년 한국에 귀화한 섹 알 마문 감독의 단편 영화 ‘빠마’는 농촌 총각과 결혼한 방글라데시 여성 니샤가 모든 것이 낯선 한국에 살며 겪는 애환을 그렸다.

니샤는 배움에 욕심이 있고 남편과 시댁 식구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자주적인 캐릭터다. 그간 결혼이주여성을 순종적이고 나약하지만, 생활력은 강한 여성으로 그려온 것과는 판이하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작업실에서 만난 섹 알 마문 감독은 “니샤를 보고 결혼이주여성들이 ‘나도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변화가 있기를 바랐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한국 여성에게는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이주여성에게는 대놓고 출산과 육아를 강요하는 현실도 지적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수십 년 전 한국 여성들에게 행해지던 차별이 지금은 결혼이주여성으로 옮겨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늦게 들어온 만큼 이들에게 선택할 여지와 시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결혼이주여성에게 강요되는 건 출산과 육아, 가사뿐만이 아니다. 빨리 한국 사람이 돼야 한다며 외모를 한국인처럼 가꾸게 하고 문화를 강압적으로 교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감독은 말했다. 영화 속 니샤 역시 강제로 ‘아줌마 빠마’를 하게 된다. 아이가 엄마를 닮으면 큰일이라거나 돼지고기를 왜 먹지 못하냐는 모욕적인 소리도 듣는다.

“제가 한국에 24년째 살면서 한국인 친구들이 한복을 입는 걸 거의 못 봤는데, 구청에서 여는 행사에 가면 결혼이주여성들이 다들 한복을 차려입고 있어요. 한국 문화를 배워야 한다며 김장이나 민속놀이를 가르치기도 하죠. 하지만 문화는 받아들이는 거지 교육하는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는 점점 더 증가하는 이주민들과 함께 잘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배려와 포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감독의 메시지가 잘 전달된 덕인지 ‘빠마’는 스웨덴 보덴국제영화제, 터키 이스탄불국제영화제 등 5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감독은 “이주민 문제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것”이라면서 “결혼이주여성 넓게는 모든 여성에게 출산뿐만 아니라 일자리에 대한 차별이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는 데도 공감한 듯하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1998년 한국에 들어온 감독 역시 차별과 혐오를 겪어야 했다. 같은 금액으로 이탈리아에 가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을 뿌리치고 한국을 선택했지만, 당시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그는 일하던 공장에서 퇴직금을 떼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자신을 도와 퇴직금을 받도록 해준 인권단체와 연을 맺으면서 외국인노동자와 이주민들의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한국에 온 지 3년 만인 2001년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여학생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도 해 가정을 꾸렸다.

감독은 “집회에서 부르던 안치환의 ‘철의 노동자’ 가사인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말이 가슴을 울렸다”며 노동권과 인권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러다 비영리 이주민문화예술단체인 ‘아시아미디어컬쳐(AMC) 팩토리’에서 만드는 연극에 함께 참여한 지인의 권유로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뭐 하나에 빠지면 그것에만 몰두해 파고든다”는 감독은 6개월간 멘토 감독을 새벽까지 따라다니며 영화를 배웠다고 한다.

“이전에는 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집회나 행진밖에 없었어요. 근데 영화는 다르더라고요. 영화가 아니면 만나볼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제 영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보여줄 수도 있고요.”

2014년 ‘굿바이’를 시작으로 ‘하루 또 하루’, ‘피난’, ‘꿈, 떠나다’ 등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그는 외국인노동자와 난민, 이주민 문제에 천착해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