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사자원 콘텐츠화 사업A+
철강산업·미래 먹거리 투자 B+
논의·화합의 지역정치 실현 C+

포항시의 지난해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시작으로 배터리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천읍 주민소환투표 모습.

2020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궁금한 것은 지난해 포항의 각 분야별 활동상황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성과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올해의 흐름도 짚어 볼 수 있기에 나름의 기준으로 성적을 매겨봤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판단인바 사전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포항은 철강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예나 앞으로도 국내 산업과의 연관 관계를 넘어 글로벌경제와 맥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선 나라 밖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9년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각 국가 지역 할 것 없이 국익 우선주의, 지역 이기주의가 극명하게 표출되었던 한 해였다. 그중의 백미는 미국과 중국. 양국 간 무역전쟁은 단순하게 두 나라 사이에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한 충돌을 넘어섰다. 새로운 세계정치 질서가 양강 체제(G2)로 재편되는 패권쟁탈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진 국지전이었다. 그렇기에 양국 간 분쟁은 언제든지 어떤 분야에서든 전면전으로 확대될 여지를 남기고 있다. 당연히 그 여파는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불과 1년 뒤인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둔 미묘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조치라는 선택을 했다. 이는 그동안 북미,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개선에 자국이 소외되었던 것에 대한 불편함, 양국 간 위안부, 전범 기업처리 문제와 더불어 실패한 아베노믹스 등 자국 내 정치기반의 흔들림 등 복합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은 극한 갈등 양상으로 보였으나 연말부터 다소나마 해결점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포항시의 지난해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시작으로 배터리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영일만친구 야시장 개장 모습.
포항시의 지난해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시작으로 배터리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영일만친구 야시장 개장 모습.

아직 결과를 예단키는 어렵지만 일본의 이번 조치는 적어도 우리경제에 효과가 큰 백신을 주사해 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계 전반에 나타나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사실상 외면해왔다. 그저 외형적인 매출액 부풀리기에만 주목하여 소재에서 부품, 최종 완성재에 이르는 공급사슬(supply chain) 전반에 걸친 부가가치율은 국제분업 진전이라는 말로 무시해왔던 것이다. 과도한 일본에 대한 소재부품 의존도에 무뎌지던 감각은 재벌, 기업체 사장, 정책당국자를 가리지 않았다. 일본의 이번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는 그런 면에서 ‘극약처방’이었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도록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그 경제적 효과는 매우 컸다고 평가한다. 만약 세월이 더욱 흘러 일본이라는 깊은 수렁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시점에 일본이 같은 한 수를 두었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아마도 경제 우선이라는 말로 일본에 모든 것을 내주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이번 한 수를 너무 쉽게 쓴 셈이고,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었던 순간이다. 유로 지역도 미국을 따라 수입제한조치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고, 영국은 엄청난 눈치작전 끝에 결국은 예정대로 브렉시트를 위한 절차를 착실히 밟고 있다. 이처럼 2019년 세계는 ‘국익’ 우선주의로 인한 거친 파도로 인해 국내경제도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포항경제도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각국의 이익 우선 다툼에서 직간접적인 타격을 많이 입었다. 2019년 포항의 철강산업은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외부요인에 의한 충격으로 감소하였던 수출물량을 철강재 시황이 보완하는 모습이었지만 하반기까지 이어진 원자재가격 상승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3/4분기부터는 글로벌 경기 하강으로 수출마저 주춤, 재고가 엄청 쌓였다. 이 문제가 포항 경제를 크게 억눌렸다 할 수 있다.

즉각적인 효과로 나타난 건 아니지만 포항경제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투자는 나쁘지 않았다. 영일만항 인입 철도가 완공되었고, 국제크루즈여객부두와 여객터미널 완공을 앞두고 포항-블라디보스토크 간 국제 크루즈 시범 운항, 도심철길 숲 조성과 도심 재생 사업 등은 향 후 다양한 먹거리 창출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받을만하다.

 

포항시의 지난해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시작으로 배터리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평가되고 있다.국악가족 뮤지컬 ‘강치전’ 포스터.
포항시의 지난해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시작으로 배터리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평가되고 있다.국악가족 뮤지컬 ‘강치전’ 포스터.

포항지역 경제 주축인 철강산업과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 등을 종합한 실물경제에 있어 지난해 성적표를 매긴다면 ‘B+’ 정도는 주고 싶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방하였다는 격려성 학점이다. 물론 포항경제가 지닌 약점과 어려움은 성적표에 매기지 않았다. 일례로 여전히 산업인력 고령화에 따른 고임금 급여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기초임금상승 등으로 기업 고정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내부요인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금융은 ‘B’ 정도에 그쳤다고 본다. 포항시 소재 제1, 2금융권을 합한 총수신잔액은 2018년 말 15조9천352억 원에서 2019년 10월 말 15조8천379억 원으로 973억 원 정도 줄었다. 같은 기준 총여신잔액은 지역 내 아파트경기 부진, 공장 등 투자위축 등으로 16조7천59억 원에서 15조3천566억 원으로 1조3천493억 원이 줄어들었다. 금융권의 통합 예대율(대출/예금x100)은 같은 기간 99.4에서 91.9로 상당 폭 감소하였는데 이는 새마을금고, 신협 등 제2금융권 예대율이 같은 기간 70.8에서 62.3으로 부진했던 것이 이유다. 제1금융권인 예금은행도 감소하기는 하였으나 2019년 10월 말 현재 133.9를 기록하였다. 예금은행은 지역예금보다 33.9%가 넘는 자금을 다른 지역에서 끌어와 지역에 대출한 셈이다. 문제는 높은 금리로 예금은 받아들이면서도 지역 서민이나 예금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영세소상공인들이 지역 경기 부진의 영향으로 대출자금 수요가 많지 않아 제2금융권은 금융중개실적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서 자금을 운용하기도 쉽지 않아 이들 제2금융권이 지역 사업에 활발하게 참여, 투자할 방안을 앞으로 모두 고민해 나가야만 한다.

지역 정치부문은 ‘C+’ 정도로 판단한다. 지난해 연초부터 20만 명이 넘는 지역민들이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에 대한 국민청원으로 바랐던 갈증은 거의 자포자기 시점인 연말에야 겨우 통과되었다. 그래서 시행령과 행정규칙을 마련하고 또 예산 확보까지는 적어도 6개월 늦으면 거의 1년 가까이 시간적 지연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숙원사업인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탈락과 생활폐기물에너지화시설(SRF)을 둘러싼 오천읍 주민들에 의한 주민소환문제도 있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는 나름의 의미 있는 정치적 사건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논의와 화합으로 민의를 수렴하는 것보다는 지역 사회의 이견이 상호교류로 융화되지 못하고 거기에서 멈춘 것은 앞으로도 불씨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포항시의 지난해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시작으로 배터리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평가되고 있다.국악가족 뮤지컬 ‘강치전’ 포스터.
포항시의 지난해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시작으로 배터리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평가되고 있다.국악가족 뮤지컬 ‘강치전’ 포스터.

최고학점을 주고 싶은 분야도 있다. 문화예술 쪽이다. ‘A+’를 줬다. 어느 지역이고 연중 문화예술 행사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지역이 지닌 문화역사자원을 콘텐츠화하고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하나의 뮤지컬, 연극, 테마파크 등으로 승화시킨 것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콘텐츠의 개발이야말로 언제든 확대재생산이 가능한 포항지역만이 지닌 토종 종자(seed)로서 높은 점수를 매기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역 보물인 암각화를 학술적으로 정리하고 특별전으로 역사문화유산을 재조명함으로써 포항인의 자존감을 끌어올렸다.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의 조성,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등은 가점 항목이었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한 행정도 같은 학점을 줘도 될 듯하다.

포항의 과거, 현재, 미래는 포항인의 몫이다. 어떠한 사업이라도 최우선 순위는 포항에 소재하는 학자, 기업, 단체이기를 바란다. 특히 포항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상, 철학, 인문학적인 연구일수록 유명도는 낮더라도 포항을 더 잘 아는 포항 출신 문화예술인, 포항에 자리한 대학교수, 포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포항에 부족한 전문 인력이 향후 양성될 수 있다. 2020년부터는 지역 행정, 기업 등이 발주하는 주요 용역사업에서 포항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다른 지역 전문가가 함부로 재단하고 결론을 지은 어설픈 보고서만은 없었으면 한다. 당연히 본인도 ‘지익(地益)’ 우선주의자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