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일본의 역사관
독일과 일본의 역사관
  • 등록일 2019.09.16 20:03
  • 게재일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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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지난 1일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행사에 참석해 과거사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는 이날 당시 독일군에게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애도했다.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기리며 용서를 구한다.

1939년 9월 1일 오전 4시 40분 독일이 폴란드의 비엘룬을 기습적으로 침공함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방어력이 없던 소도시 비엘룬은 순식간에 도심 전체가 파괴됐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1천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에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후 5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폴란드에선 유대인 300만 명을 포함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6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바르샤바를 비롯한 주요 도시는 폐허가 됐다.

비엘룬에서의 행사는 8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전 4시40분에 시작됐다.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린 비엘룬 공습은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이자 전쟁범죄였다’고 말했다. 두다 대통령은 독일 대통령의 비엘룬 방문을 일종의 도덕적 배상으로 규정하면서 ‘힘겨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행동에는 용서하고 우정을 쌓을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그동안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폴란드, 프랑스, 영국 등을 비롯한 전쟁 피해국들에 많은 배상을 해왔고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독일 하이코 마스 외교장관은 지난달 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추모하고 용서를 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지난 7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해 ‘우리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억을 보존하고 이어가야 하며,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지역에서 1차 세계대전으로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일본은 지역적 한계와 서방국가들에 비해 조선 이외 다른 식민지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경제침체에 빠졌다. 도조 히데키와 일본 군벌은 이 대공황을 타개하고 제국의 세력 확장을 위해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1932)을 세우고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에 뛰어든다.

일본은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강제징용 또는 징병해서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쟁 가해국으로 오늘날까지 사죄는커녕 오히려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베의 야망은 ‘전범국가에서 전쟁국가’ 즉 군국주의 부활이 주 목표다. 이번 개각에서 호전(好戰)적 사관을 가진 반한(反韓)인물들을 중심으로 ‘초우향우’ 개각을 단행했다. 이 개각으로 역사인식 문제를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해 입은 모든 나라에 사죄를 해왔다. 사죄 없는 일본과 과거사를 대하는 역사인식이 서로 상반되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우리는 지난 비극의 역사를 잊지 말고 반드시 미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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