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은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우(愚)를 범한다
집착은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우(愚)를 범한다
  • 등록일 2019.08.19 18:55
  • 게재일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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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장자, 도척편(莊子, 盜跖篇)에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기록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 만들어진 고사이다. 사기 소진열전(史記, 蘇秦列傳)과 전국책(戰國策), 회남자(淮南子) 등에도 보이는데 소진만 미생의 행동을 신의로 보고 다른 곳에서는 모두 이 이야기를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예로 들고 있다.

전국시대의 종횡가로 이름이 난 소진은 연나라의 소왕을 설파할 때에 이 이야기를 예로 들어 자신의 신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장자는 도척편에서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도척의 입을 빌어 미생의 융통성 없고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통박하고 있다.

‘이런 인간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니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국책에서는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 불과할 따름이라고 하고, 회남자에서도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송양지인(宋襄之仁)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사람들 삶의 과정이 대체적으로 겉으로 꾸밈이 많은 오늘날 미생과 같은 행동은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이나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잠깐의 카타르시스는 될지 모르지만, 참다운 삶의 도리를 알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큰 흉년 때 자신에게 혀를 찼다는 이유로 그가 주는 구호 음식을 거절하고 굶어 죽은 제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일단 사과를 했으면 그냥 받아먹었어도 되는데 너무 소심하게 예의를 따졌다고 증자가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신의와 예의와 명분은 유가의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흘러 중용의 도를 해치는 것은 크게 경계했다.

공자는 ‘군자는 무조건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직 그 상황에서 가장 의로운 선택인가가 판단의 전제였을 뿐이었다. 예기 단궁(檀弓)에 보이는 고사인데, 이 고사는 두 가지 가치를 보여준다. 하나는 아무리 중요한 원칙이라도 상황에 맞게 권도(權道), 즉 융통성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전례 없이 큰 갈등과 고립된 외교를 겪고 있다.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거듭 강조한 ‘평화경제론’과 이례적으로 통일의 시점을 제시하고, 통일 이후 한국의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 대북 메시지를 던진 지 불과 24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북한은 문 대통령을 향해 심한 조롱 섞인 말 폭탄과 미사일 발사로 답했다.

‘남한 패싱’을 노골화한 북한이 남북 관계의 창구를 닫고 저 혼자만의 길을 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풀리지 않고 있는 일본과의 경제대립이 그렇고, 북한과의 관계도 하나도 화해의 진전 없는 현실에서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될 것이라는 환상과 ‘평화경제’라는 모호한 단어를 국민 앞에 들고 나와 자화자찬하는 정부와 여당도 그렇다. 미생지신이나 송양지인 같은 우매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도탄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TV 광고가 나온다. 영화 ‘국제시장’속의 자유를 향해 남쪽으로 향하는 흥남부두 피난민의 처절한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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