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더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담았죠”
더더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담았죠”
  • 연합뉴스
  • 등록일 2018.12.17 20:53
  • 게재일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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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집 ‘해브 어 나이스 데이’ 발표
23일 신보 발매 기념 콘서트도
▲ 정규 9집 앨범 발매를 앞둔 밴드 더더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연습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연습 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온 국민이 노래를 아는 가수가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1994년 결성된 모던록 밴드 더더(THETHE)는 그런 곡을 보유한 팀이다.

1997년 데뷔해 박혜경, 한희정 등 뛰어난 여성 보컬을 배출했고, 깔끔하고 현대적인 곡 ‘내게 다시’, ‘잇츠 유’(It’s You), ‘딜라이트’(Delight)로 사랑받았다. 2004년 4집 ‘더 더 밴드’(The The Band)는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상’을 차지했다.

한파가 닥친 12월 어느 날 서울 마포구 연남동 더더 레이블 우먼앤맨스를 찾았다. 한창 연습 중이던 이들이 내뿜는 열기로 지하 연습실 공기는 훈훈했다.

2007년 ‘우먼앤맨스’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낸 데는 여성 뮤지션을 키우겠다는 뜻이 담겼다. 그만큼 더더는 좋은 여성 보컬을 길러냈지만 동시에 잦은 보컬교체로 부침을 겪었다.

박혜경(1997∼1999년, 1·2집)을 시작으로 한희정(2001∼2003년, 3·4집), 명인희(2007∼2008년, 5·6집), 이혜주(2009년 EP), 양송현(2011년 7집)이 뒤를 이었다.

2015년 8집부터는 이현영이 보컬로 합류하며 안정을 찾았다.

지금 더더는 김영준(프로듀서 및 기타·45), 이현영(보컬·41), 임한국(드럼·35), 정명성(베이스·25) 4인 체제다. 이현영은 더더 핵심인 김영준의 부인이다. 이현영은 1990년대 말부터 인디밴드 보컬로 활동했다. 1대 보컬 박혜경 그림자가 워낙짙은 팀인 만큼 부담도 컸다.

“1990년대 처음 만났을 때 김영준 씨는 제 사부님이었어요. 당시 저는 맑은 미성에 보헤미안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영준 씨가 ‘너는 브리티시한 펑크록이 어울린다’며 스타일을 바꾸게 했죠. 그래서인지 8집부터 더더에 합류했을 때 적응하기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더더’라고 하면 다른 보컬을 그리워했으니까요. 또 펑크록에서 늘 감정을 내지르면서 노래하다가 모던록으로 넘어오니, 창법 자체도 변화시키기 힘들었죠. 원래 미성이던 나를 펑키하게 바꿔놨다가, 인제 와서 다시 모던록을하라니… 트라우마가 생겼죠. 영준 씨가 정말 미웠어요 그때는.(웃음)”(이현영)

2년 전 더더에 합류한 임한국은 8집 때 이현영을 안쓰럽게 기억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팀이 잘되면 한 명이 나가려고 하잖아요. 더더도 계속 보컬이 바뀌면서 생긴 리스크가 있었어요. 한 명이 빠지면 빈자리를 메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현영 누나는 원래 록커예요. 8집 땐 그걸 숨기고 청아하게 부르려고 노력하더라고요. 내가 만약 더더에 들어간다면 누나 목소리와 더더의 음악을 잘 엮어줘야지 생각했는데, 때마침 러브콜이 오더라고요. 그때 베이스를 치는 명성이도 제가 데려갔고요. 조만간 발표하는 9집은 밴드가 다시 더더라고 말할 수 있는 합의를 끌어낸 작품이에요.”(임한국)

대중에게 기억이 희미해질 때도 있었다. 풍파도 많았다. 베이스 자리를 도저히 못 구하자 김영준이 기타를 내려놓고 대신 베이스를 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더더라는 이름을 지킨 건 더더가 ‘집’이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아웃사이더였기에 밴드가침체를 겪을 때 오히려 견딜 수 있었다.

“브리티시 록을 표방한 초창기 더더 음악은 환영받지 못했어요. 사람들은 ‘록이라며? 그럼 소리 좀 질러봐’라고 비아냥댔죠. 1990년대에는 김경호 씨와 같은 샤우팅이 인기였거든요. 그러다 대중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딜라이트’ 때였어요. 버스 라디오에 그 노래가 나오는데, 승객들이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가 있었어?’라며 웅성거리는 거예요. 그때를 잊을 수 없어요. 더더는 앞으로도 그 시대 감성과 분위기를 아우르는 음악을 할 거예요. 설사 그게 남들이 아예 손대지 않는 버려진 장르라 할지라도요.”

홍대 인디밴드 1세대인 더더는 오늘날 바뀐 홍대 모습에도 아쉬움을 토해냈다.

기발한 공연이 펼쳐지던 공연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술집, 노래방이 들어섰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그나마 밴드가 뿌린 무료 초대권을받은 지인들은 아는 밴드 순서만 보고 남은 공연은 안 본 채 돌아선다.

“더더는 요새 클럽 공연을 안 해요. 홍대의 의미는 변했어요. 무료 버스킹을 요구하며 밴드를 단순하게 클럽 근로자로 취급하죠. 우리 같은 ‘어른 팀’은 그 생각을 분명히 밝혀야 해요. 그래야 클럽들도 다시 생각할 거예요. 요즘 힙합이 인기죠? 하지만 밴드 문화가 발전했기에 DJ 문화와 힙합도 발전했다는 결과를 놓쳐선 안 돼요. 다들 기억해야 해요. 그리고 좋은 후배 밴드가 나오길 진심으로 바라요. 장르가 발전해야 대중도 좋은 음악을 구별할 힘이 생기니까요. 뮤지션이 철새가 돼선 안 돼요”(김영준)

이현영은 “음반사 대표들도 이젠 밴드를 찾는 게 아니라 보컬, 송라이터 등 한 명씩만 구한다. 그게 더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며 “올해 들어서 수많은 밴드가 비슷한 이유로 해체됐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더더는 17일 9집 ‘해브 어 나이스 데이’를 냈다. 더더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았다. 타이틀곡 ‘와이’(Why)를 비롯해 신곡 10곡과 앞서 공개한 싱글 3곡이 들어갔다.

김영준은 “20년간 더더가 한 것 중 가장 잘할 수있는 것을 선택해서 담은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23일 홍대 롤링홀에선 신보 발매 기념 콘서트도 연다. 원래 1대 보컬 박혜경이 함께할 예정이었으나 스케줄 상 문제로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더더는 오랜 시간 함께한 팬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더더는 계속 살아 있으니까, 잊지 않으셨다면 와서 새로운 모습을 봐주세요. 여러분도 밴드도 살기 힘들어도, 또 좋은 날이 오겠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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