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최근 개봉된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Herstory)’는 실존인물이 존재하는 다큐같은 영화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여성사업가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에게 사죄와 손해 배상을 요구한 관부재판 과정을 담고 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의 법정투쟁 결과, 위안부 문제에 일본의 책임이 있음을 최초로 일부 인정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두고 시선 차이가 존재한다. 전쟁범죄로서 일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과 양국이 외교적으로 처리할 문제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다시는 정치적 흥정의 산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며 박근혜 정부와 아베정권이 체결한 ‘12·28 합의’는 위안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인도적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가해국의 반성이 없는 정부간 합의로 탄생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하라는 분노가 높았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서도 거론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는 2015년에도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하향식으로 처리되었다. 일본 정부가 강조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은 더 이상 이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또 다른 압박이었다.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여성들의 몸과 삶을 유린한 성폭력에 대한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전제돼야만 화해와 용서의 미래가 가능하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권고한 것처럼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면, 그 합의는 단지 휴지쪽에 불과한 것이다. 피해자 할머니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2015 한일합의를 즉각 폐기하고 피해자 중심적 문제해결을 추진하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992년 1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축이 돼 시작한 수요시위는 폭염의 날씨에도 계속되고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주한일본대사관 앞 집회가 발전한 정기수요시위는 위안부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었다. 수요시위 1천회를 기념해 2011년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됐고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평화나비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세대를 너머 연대하고 있다. 이제 정대협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로 확대되어 전쟁과 여성, 전시 성폭력의 이슈로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키며 평화운동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있다.

“과거의 일 아닌 현재의 일이다.” 수요시위에 나온 손피켓에 쓰인 문구다.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시대에 일어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과거이자 현재진행형 사안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민족문제에서 이제 젠더 이슈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미투운동’의 효시처럼 힘이 없는 여성이기에 당했던 공동의 기억이자 더 이상 그런 험한 세상은 안된다는 미래에 대한 절규다. 역사의 증인으로 나선 피해 할머니 가운데 27명만이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진심어린 사과와 진정성 있는 해결책이 나와야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

‘남자들의 이야기’였던 ‘히스토리(History)’에서 여성들은 주변인이었다. 여성들의 활동에 주목하지 않았고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를 도모했던 역사를 그린 영화 ‘허스토리’는 의미가 크다. 할머니와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세대간의 과제로 위안부 문제를 사유하며, 여성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의 역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허스토리’ 영화를 통해서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