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서예가

관행이라 함은 오래전부터 관례에 따라서 해 오는 대로 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관행이 우리사회에 주는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다. 예컨대 고질적인 촌지관행, 논문쪼개기 특히 전관예우라는 법조계 관행은 홍만표 변호사의 단기간 축재과정이 들통 나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산 사례를 들 수 있다. 당시는 한때 법조계에서는 퇴직 후 2년 이내에 평생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사건 역시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관행이 부패의 변명으로 이용된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굴절돼 있다는 것이며 부정과 비상식을 입막음 하려는 것으로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때문에 이러한 적폐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주장하여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긍정적인 관행을 세우기 위해서는 정치가 중심을 잡아야 하고 사회가 바로서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최소한 나쁜 짓을 했으면 부끄러움 정도는 아는 그런 사회라야 뻔뻔스럽게 대놓고 관행 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김기식 금감원장의 외유성 출장과 관련해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관행이었다면 봐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불과 1년 전 취임식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겠다는 다짐과는 정 반대의 동떨어진 결정을 내놓았다. 또한 정치자금 사용처 등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연일 불거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자 도덕성이 평균 이하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와는 다른 모습이다.

여기서 도덕성의 평균이라는 좀 의아한 단어가 나온다. 이 말뜻은 정치인 하나하나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도덕성을 검증하여 정치집단인 국회의원들의 평균치를 낸 다음 그 수치에 대조해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한사람을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사례를 여당의 도움을 받아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김 원장의 사례를 국회의원들의 평균치와 따져 보니 국회의 관행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합리화시키려는 식의 해명을 내놓아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국회의원 집단에서 피감기관의 지원이나 국민혈세로 그럴듯한 명칭으로 포장한 외유성 출장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용어에서 도덕이라는 말은 윤리라는 말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다. 즉, 도라는 것은 인륜을 성립시키는 도리로서 윤리와 거의 동의어이며 그것을 체득하고 있는 상태가 덕인 것이다. 또한 도덕이라고 하면 윤리와 거의 동의적으로 이용되면서도 덕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윤(倫)이라는 것은 중간을 의미하며 인륜이라고 하면 축생이나 금수의 존재방식과의 대비에서 인간 특유한 공동생활의 각종 존재방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에게는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동화하려는 유전적 욕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의 통념이나 도덕률에 일치하지 않는 상태에 있을 때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느낀다. 부끄러움에는 복합적인 사회적 정서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엄폐를 위해 궤변을 일삼는 것은 이 부끄러움이라는 불편함과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시도이다.

김기식 원장에 대해 해임불가 입장을 고수해 온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후원금 사용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선관위에 공식 의뢰했다. 지난 16일 선관위는 관련된 논란에 일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발표 후 김 원장은 자진 사임을 표명했고 청와대는 이를 받아들였다. 대통령 취임 시 ‘낮은 자세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습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국민들 귓전에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