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 3년 만에 정규 9집 발표
`위브 돈 섬싱…` 음원 차트 휩쓸어

▲ 음원차트 정상 석권한 에픽하이. /YG 제공

타블로(본명 이선웅·37)는 정규 9집이 나오는 날 아침, 딸 하루의 학교에 학부모 상담을 갔다. 두 자녀를 둔 투컷(김정식·36)은 내달 콘서트를 하는 날 아이의 운동회에 참석해야 한다. 2년 전 결혼한 미쓰라(최진·34)는 아직 2세가 없는 신혼이다.

2003년 데뷔해 14주년을 맞은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세 멤버는 모두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아재`가 됐다.

“14주년을 엊그제 맞이한 아재 힙합그룹 에픽하이입니다. (세 멤버가 한국 나이로) 38, 37, 35세인 것을 이젠 받아들여 진심 (차트 성적에 대한) 기대를 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타블로)

지난 23일 오후 6시 음원 공개 시간에 휴대전화를 꺼놓고 차트를 안 보려 했지만 이들이 3년 만에 낸 9집 `위브 돈 섬싱 원더풀`(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은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인터뷰한 에픽하이는 더블 타이틀곡 `연애소설`과 `빈차`가 각종 차트 1·2위를 휩쓸고 수록곡들까지 큰 호응을 얻자 그 기쁨을 에둘러 표현했다.

타블로는 “3년의 공백도 있었고 얼마 전 해외로 나간 지인을 우연히 만났는데 진지하게 `형님 해체하신 거죠?`라고 물었다”며 “방송도 안 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정말 기대를 안 하려고 했다. 그 사이 코첼라 등 해외 페스티벌과 해외 투어도 다녔지만 우리가 주목받는 그룹은 아니니 표시가 안 났다”고 웃었다.

그러자 투컷은 “사실 난 기대했다”며 “열심히 뭔가를 했는데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대보다 큰 사랑을 주셨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앨범 제목처럼 이들은 `멋지게` 작업물을 쌓아올렸다. 피처링 가수로 아이유, 오혁, 사이먼도미닉, 더콰이엇, 송민호, 크러쉬, 넬의 김종완, 이하이, 수현 등 음원 강자들을 한 장의 앨범에 모았다. 1집 `맵 오브 더 휴먼 솔`(Map Of The Human Soul) 때부터 여러 가수를 참여시켜 `오픈 밴드` 느낌을 준 방향성을 이은 셈이다.

“1집과 비교하니 피처링 가수의 수가 되레 줄어들었더라고요. 하하. 데뷔 시절 어떤 음악 하는 그룹이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전 토이(유희열)를 꼽았어요. 뚜렷한 색깔이 있으면서도 객원 보컬이 등장해 다양한 감성을 전하는 게 매력적이었죠. 1집때처럼 이번에도 다양한 초대 손님과 같이했는데 나열해보니 페스티벌 라인업이 됐죠.”

섭외 담당은 투컷. `연애소설`에 목소리를 실은 아이유는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목소리여서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이란 주제를 차가운 이미지로 전달해야 해 “아이유가 딱이었다”고. 문자를 보내면 1주일이 지나야 답을 주는 오혁도 기적적으로 5분 만에 연락해줘 `빈차`에 목소리를 보탰다.

피처링 덕을 크게 봤지만 이들의 차트 파괴력은 서정적인 감성에 스민 깊이 있는 가사다. 타블로와 투컷의 전달력 좋은 랩이 공감의 크기를 키웠다.

타블로는 “우린 사실 절망에 잘 빠지는 부정적인 성격의 팀”이라며 “하지만 누군가에게 우울한 가사로 공감을 주기보다 이번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온하게 떠 있는 오리도 물밑에선 발을 미친 듯이 발을 움직인다”며 “행복하고 평안해 보이는 사람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절실함, 아픔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분은 물 위의 오리 모습을 보고 음악을 만들겠지만, 우린 물 밑의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때론 우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보편적인 감정을 담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가장 악동스러운 곡인 `노땡큐`에서도 주관적인 잣대로 무분별하게 판단되는 세태를 풍자했지만 그 안에서 자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올해로 14년간 팀을 유지한 이들은 데뷔 때부터 성공한 팀은 아니었다. 미쓰라와 타블로는 “회사에서도 망했다고 얘기했다”며 “처음 생각보다 잘 돼 있다”고 웃었다.

앨범에는 한때 해체나 은퇴를 고민할 정도로 녹록지 않았던 창작의 시간도 기록돼 있다.

타블로는 “5집의 `연필깎이`에서 펜과 공책 두 개만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듯이 예전엔 포부가 담긴 곡을 많이 썼다”며 “하지만 이젠 펜을 들면 뭔가 무게감이 느껴지고 두려움이 생긴다. 우린 그간 자의든 타의든 더는 음악을 할 수 없겠다고 느낀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고 돌아봤다.

멤버들은 팀의 마지막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