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소비자 이익이 곧 사회 이익` 스위스 국민기업 M의 철학을 배우다안동시 사회적기업 10년 성과
⑤스위스 사회적기업 `미그로스`
권기웅기자  |  presskw@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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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10.23   게재일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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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의 사회적기업이자 소비자협동조합체인 국민기업 미그로스의 본부건물 전경.
 

저녁이면 어둠을 뚫고 아름다운 M자 모양의 오렌지색 형광 간판이 빛나기 시작한다.

스위스 최대의 유통업체 미그로스(MIGROS)의 간판이다.

미그로스는 그야말로 스위스의 `국민 기업`이라고 불릴 만하다. 국민들로부터 그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미그로스는 오렌지로 통한다. 미그로스의 얼굴인 간판 색깔이 오렌지색이기 때문이다.


소비자협동조합체이자 사회적경제기업
`생산자-소비자 성실한 다리역할` 목표
1925년 트럭 5대로 생필품 팔기 시작

경제·생태·사회문제에 지속적 관여
외국어·사진 등 사설 학원 설립해
스위스 인구 700만명 중 200만명 이용

매출의 1% 문화기금으로 적립
공익적 문화사업 추진에도 열성



오렌지색은 스위스와 인연이 있는 색채다. 기원전 100년경 오렌지색의 바위를 갈고 깎아서 만들어진 남부 요르단의 찬란한 암벽 도시 페트라.

사방이 절벽으로 방어된 도시는 지하 왕국이 연상될 만큼 신비로운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다. 일몰이 다가오면 페트라는 황혼과 어울려 환상적인 오렌지 빛 색조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오렌지의 도시 페트라는 오랫동안 지상에서 잊혀 있다가 1812년 스위스의 한 젊은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면서 세상의 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묘하게도 오늘날 스위스의 국민기업 미그로스도 밤이 되면 아름답고 신비한 오렌지색의 간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밤에 영업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통상 평일에는 오후 8시, 토요일에는 오후 6시까지 영업이 이뤄지지만 늦은 밤까지 미그로스 간판 오렌지 M자는 스위스 전역에서 빛나고 있다.

  ▲ 매장이 없는 스위스 산간오지 곳곳을 미그로스 이동차를 이용해 돌며 소비자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고 있다.  
▲ 매장이 없는 스위스 산간오지 곳곳을 미그로스 이동차를 이용해 돌며 소비자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고 있다.

□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창업자 이름은 기억

스위스 국민기업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미그로스는 소비자협동조합체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기업의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사회적경제기업이다.

많은 스위스사람들은 자기나라 대통령은 몰라도 미그로스의 창업자는 기억한다.

2017년 스위스 대통령 도리스 로이타르트(Doris Leuthard)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기야 내각책임제 형태의 연방공화국인 스위스는 7명의 장관을 두고 있으며, 이들이 서로 돌아가며 국가원수인 대통령직을 1년씩 수행하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대통령 이름을 기억하기는 무리일 수도 있다. 우리와는 권력구조가 다르므로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웬만하면 미그로스의 창업자 고틀리프 두트바일러(Gottlieb Duttweiler, 1888~1962)는 기억한다. 후대에 구전되기도 하고 꾸준히 그에 대한 저서도 출간되기 때문이다.

미그로스는 지금까지도 창업자의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미그로스를 세운 고트리프 두트바일러가 브라질에서 운영하던 커피농장을 포기하고 자국 스위스로 귀국한 것은 1924년이었다.

기후 등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1년 만에 백기를 들고 빈털터리로 귀국한 것이다.

달리 당장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망연자실하면서 무엇인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되뇌곤 했다. 하염없이 취리히 호수만을 바라보기도 했다. 시작할 바엔 내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다시 시도해야 한다고 고뇌하던 어느 날, 그의 눈에 충격적인 사실이 들어왔다. 취리히에서 브라질산 커피가 지나치게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질에서 커피농장을 경영했던 그는 수송비 등 여러모로 아무리 따져 봐도 가격이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 놀라웠다.

놀라움은 오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생산자-판매자-소비자의 유통 고리 어디에선가 비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나친 초과이윤은 생명이 짧다는 신념으로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정상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유통업체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오늘날 미그로스는 이렇게 탄생하기 시작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성실한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스위스의 국민기업 미그로스는 1925년 8월 15일, 두트바일러의 생일에 탄생했다.

소비자의 이익이 사회적 이익이고 기업이 진정한 사회적 공기(公器) 역할을 할 때 기업의 가치가 극대화된다고 믿는 그의 철학은 지금도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다. 술과 담배를 팔지 않는다는 창업자의 영업방침역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 클룹슐레에 등록하기 위해 절차를 밝고 있는 스위스인들.  
▲ 클룹슐레에 등록하기 위해 절차를 밝고 있는 스위스인들.

□ 매출 일정부분 공익적 문화 사업 등에 투자

1925년 창업 당시 5대의 트럭으로 커피와 쌀, 국수, 카카오기름, 비누 등을 싣고 전국을 누비던 것이 오늘날 스위스 전역을 빛나는 오렌지색으로 밝히는 미그로스로 성장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스위스 최대 유통업체로 자리 잡은 지금도 미그로스는 수익성과는 무관하게 트럭에 물건을 가득 싣고 규칙적으로 시골과 오지 등지를 방문한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당시 중간 거래와 초과이윤을 줄이려는 전략은 생산자들로부터 광범위한 저항에 이르기도 했는데 고기, 우유, 초콜릿으로 시작하는 요즘으로 따지면 자체브랜드(private brand)를 개발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도 했다.

미그로스의 역사적인 사건은 1941년에 일어난다. 창업자가 개인 자산을 협동조합 출자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것으로 7만5천 명의 사람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협동조합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두트바일러는 사업체로서 성장하는 것 못지않게 경제와 생태, 사회 문제에 관여해야 하고 지속가능성이 담보되는 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 아르가우州 바덴에 위치한 공익적 사교육 기관 클룹슐레의 전경.  
▲ 아르가우州 바덴에 위치한 공익적 사교육 기관 클룹슐레의 전경.

스위스에도 사교육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입시 과외 등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대부분이 개인의 취미나 여가 혹은 교양과 관련된 분야이다. 이 같은 사교육 분야를 공개념화한 사람이 바로 두트바일러이다.

미그로스는 1944~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세계적인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는 언어의 장벽을 부숴야 한다는 취지로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의 교육과정을 설립했다.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강료를 받으면서 부족한 운영 자금은 업체의 수익금으로 충당해 나갔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스위스의 클룹슐레(klubschule)로 미그로스가 운영하는 사설 교육기관(학원)이다.

지금은 각종 외국어 교육은 물론 댄스, 화초 가꾸기, 윈드서핑, 사진, 검도, 자동차운전, 헬스, 음악 연주 등 다양한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인구 700만 명 중 연간 200만 명이 클룹슐레를 이용할 정도니 그 영향력을 상상할 수 있다. 완전 무료는 아니지만, 운영비의 일부를 충당할 정도의 수강료만 받는다.

이후 미그로스 사업의 일정 부분을 문화·사회·정치·경제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의무라는 생각으로 매출의 1%를 문화기금으로 적립하고 문화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그로스의 쿨투어프로첸트 (Migros Kulturprozent, 문화퍼센트)로 불리는 공익적 문화사업이다.

오늘날 미그로스는 약 200만명의 조합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그로스는 유통업체뿐 아니라 10개 협동조합이 연합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연합은 자회사 운영과 총판, 여행, 금융서비스, 네 가지 분야에 주력하고, 열 개 협동조합은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연합이 관여하지 않는다.

유통업체 미그로스는 엄밀하게 얘기하면 조합중에서도 소비자협동조합의 성격을 띠고 있다.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이나 배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합원의 이익이라면 유통업체 미그로스를 이용하는 정도이지만 조합원이 아니라도 누구나 미그로스를 이용할 수 있으므로 결국 조합원 자격이니 출자금이니 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누구나 원하면 미그로스의 조합원이 될 수 있고 총회에도 참석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열려있는 사회적 국민기업으로 발전했다.

이를테면 조합원 조직의 주체로서 조합원의 실체는 없이 경영자와 많은 직원으로 특별한 경영이 이뤄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미그로스는 1974년부터 무농약이나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공급하기 시작하는 등 지역 농가와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친환경 식품을 제공했으며 1997년에는 질은 그야말로 미약하게 낮지만 가격이 낮아 저소득층들이 마음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저가 브랜드를 내놓기도 했다.

  ▲ 미그로스는 매장 규모에 따라 M자가 하나에서 세 개까지 표기된다. 사진은 스위스 바젤에 있는 미그로스 매장 모습.  
▲ 미그로스는 매장 규모에 따라 M자가 하나에서 세 개까지 표기된다. 사진은 스위스 바젤에 있는 미그로스 매장 모습.

□ 주목해야 할 미그로스의 성공요인

협동조합이면서도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한 미르로스의 성장요인은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면서 활발하게 사회적 기업들이 육성되고 있는 우리나라와 우리 중소도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사회적 기업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의식이다.

미그로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유럽인과 스위스인들의 소비의식을 꼽기도 한다. 유럽인들의 소비의식은 미국이나 신흥 경제국들에 비해 나름대로 전통적인 가치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고 있다.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미국을 청바지와 콜라 등 천민자본주의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대량으로 생산하고 대량 소비하는 미국의 유통경영 방식, 인건비를 낮추고 오직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미국식 경영과는 차이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합리적 경영과 정직으로 획득해야 하는 소비자로부터의 신뢰는 일반기업이나 사회적 기업 성공의 필수 요인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의 사회적 기업들이 주요 소비 고객층에 어떻게 다가가고 무엇을 어필해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분야임을 미그로스가 말하고 있다.

/권기웅기자 presskw@kbmaeil.com

자료제공=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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