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땀방울이 희망의 꽃으로 ②
새마을운동가 구술생애사 채록
이태봉 전 경북도 새마을협의회장 (下)

▲ 이태봉 회장이 새마을아카데미 강연 후 외국인 수강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새마을아카데미 강연 시 반드시 30년 전 입었던 새마을 복장을 갖추고 강연을 진행한다.
▲ 이태봉 회장이 새마을아카데미 강연 후 외국인 수강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새마을아카데미 강연 시 반드시 30년 전 입었던 새마을 복장을 갖추고 강연을 진행한다.

가족들의 희생으로 올 수 있었던 새마을지도자의 길 `자부심 가득`
가난한 나라에 새마을 교육하며 큰 보람… 중단된 게 너무 안타까워

△ 멧돼지 고기로 가난을 모면하다

1980년도에 사곡동 7통 새마을지도자로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는데, 사실 돈이 필요했어요.

너무 가난하기도 했지만, 새마을운동이 어디에서 돈을 받고 하는게 아니잖아요. 내 돈을 들여서 하는 거니까.

그러던 중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어요. 한 친구의 소개로 1983년도에 멧돼지 2마리를 구입해 사육을 시작했어요.

당시는 방송 등에서 멧돼지가 좋은 미래사업이라고 선전하고 그럴 때였어요. 멧돼지가 번식력이 얼마나 좋은지 3년정도 키웠더니 200여마리 정도로 불어난 거에요. 이걸 도저히 처리 할 방법이 없는거에요. 팔 방법도 없고. 그래서 멧돼지 고기를 파는 식당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엄청 고생했어요.

식당을 운영해 본적이 없다보니 모든게 힘들었어요. 당시에는 TV수신료를 직접 받으러 다니곤 했는데, 한번은 TV수신료를 받으러 친구에게 가니까 전국노래자랑에 한번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그래서 신청했죠. 본선까지 나갔어요. 본선이 있던 그날 멧돼지 고기를 준비해서 갔어요. 무대에 올라가니 사회자인 송해 분이 무슨 일을 하는 분이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새마을지도자로서 지역을 위해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멧돼지를 직접 사육도 하고 고기를 파는 식당을 하고 있다고 했죠. 노래는 `무너진 사랑탑`을 불렀어요. 새마을아카데미에 참석한 외국인 앞에서도 이 노래 많이 불렀어요. 하하.

그러곤 몇일 지나고나서 방송이 나오더라구요. 방송이 나온 그날 저녁부터 손님들이 말 그대로 밀어닥치는 거에요. 방송의 힘이 크긴 크더라구요. 정말 손님이 많이 오셨어요. 손님들 중에는 내가 새마을지도자라는 것에 더 많은 호응을 해 주시더라구요. 감사할 따름이죠.
 

▲ 이태봉 전 경북도 새마을협의회장이 역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과 상장. 이 회장은 새마을아카데미에서 외국인들에게 이 상장을 꼭 보여준다.
▲ 이태봉 전 경북도 새마을협의회장이 역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과 상장. 이 회장은 새마을아카데미에서 외국인들에게 이 상장을 꼭 보여준다.

△집사람 아니었으면 새마을운동 못했을 거에요

멧돼지 고기로 돈을 제법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그 돈을 평생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거의 다 써버렸어요. 새마을운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새마을지도자는 명예직이에요.

새마을회장이라고하면 국가나 이런 곳에서 돈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내 돈을 내고 하는 거지요. 분담금이라는 걸 내거든요. 새마을회는 오로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이에요.

난 평생을 새마을지도자로 살았어요. 정말 열정적으로 했죠. 새마을운동가 중에 최일선 지도자로 시작해 읍면동 지도자, 구미시, 경북도, 중앙회까지 모두 섭렵한 사람은 드물거에요.

난 그런 자부심이 있어요.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새마을지도자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지금도 집사람과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죠.

난 정말 새마을지도자로서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자부하지만, 가장으로서는 아니죠. 나는 집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있는 돈을 가져다 쓰는 사람이었지. 집사람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도 항상 날 이해해주고, 같이 새마을봉사도 해 줬어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어요.

2000년도에 경상북도 새마을협의회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경북도 협의회장의 분담금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또 분담금은 매년 내야 하는 거니까. 물론 당시 식당이 잘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을 못 꺼내겠더라구요.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더라구요.

5천만원든 6천만원이든 한번 해보라고. 그래서 도전을 했죠. 집사람의 말에 용기를 얻어서.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요. 죽을때까지 잊지 못 할 일이죠.
 

▲ 이태봉 회장이 새마을아카데미에서 강연 후 외국인 수강생으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받고 있다.
▲ 이태봉 회장이 새마을아카데미에서 강연 후 외국인 수강생으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받고 있다.

△새마을운동 전도사가 되다

성공사례 발표는 새마을지도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큰 행사나 다름없죠. 자신들이 한 활동에 대한 사업을 평가 받는 거니까.

1986년도에 새마을운동에 대한 성공사례 발표에 저도 참여했었요. 운이 좋았는지 새마을 중앙본부 경상북도지부 사무실에서 열린 사례발표에서 최우수 발표자로 선발됐어요.

그래서 중앙본부에서도 발표를 하게 되고, 우수한 성적으로 선발됐어요. 그래서 다음해인 1987년도 중앙연수원에서 다른 지도자들 앞에서 체험사례 강사로 활약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발표를 여러번 하고나니 나를 알아보는 분들이 많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마을운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죠.

2010년도에 경운대학교에 계셨던 분이 새마을운동에 잘 아시니 외국인들에게 새마을운동에 대해 교육을 좀 해주실 수 있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대답은 막상 했는데 걱정이 되는 거에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니 말도 안통하고 잘못하면 나라망신 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걱정이 되는 거에요. 그러다 한가지 방안을 찾았죠. 초심을 갖기로.

그래서 30년 전 새마을운동을 했을 당시 입었던 새마을복을 찾아 입고 강의실을 찾아갔어요. 모두들 놀라더군요. 그런데 난 그 옷을 입으니 이야기가 줄줄 잘 나오는 거에요. 막힘이 없이. 그렇게 첫 수업을 무사히 잘 마쳤어요.

그 첫번째 수업의 대상은 베트남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수업이 끝나자 교실에서 안 나가고 내가 있는 앞쪽으로 몰려 드는 거에요.

깜짝 놀랬죠. 왜 그런지 몰랐으니. 근데 통역하시는 분이 그사람들이 절 안다고 그러는 거에요.

경북도 협의회장으로 있을 당시 새마을세계화사업으로 베트남을 방문했었는데 그 마을 사람이라는 거에요. 얼마나 반갑던지.

날 알아봐주는게 얼마나 고마워요. 그래서 끌어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했어요.

그때 첫 강사료로 5만원을 받았어요. 사실 강사료는 아니죠. 당시에는 강사료 같은거 이야기가 없었으니까. 그냥 수고비나 교통비로 조금 주는거였죠.

난 그 돈 5만원을 받아서 그 베트남 사람들에게 줬어요. 한국에 왔으니 맛있는 거라도 사먹으라고. 근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한푼도 안쓰고 자기 나라로 가지고 갔다고 하더라구요.

그 나라에서는 그 돈이 큰 돈이니까. 강의료는 나중에 강의료 정상적으로 받았어요. 하하

새마을아카데미를 5년 정도 하면서 정말 기뻤어요. 너무 보람된 일이었으니까요.

한번은 우간다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어요. 우는 사람도 있었어요. 고맙다며 작은 선물을 주는 사람도 있었구요.

모두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 사업이 중단된게 너무 안타까워요.
 

△새마을운동가를 홀대하지 말아 주길

새마을운동은 구시대 산물이 아니에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새마을운동에 대해 너무나도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새마을운동은 사람을 키우는 운동이었어요.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말이에요. 각 동마다 지도자가 있었죠. 그 것도 경쟁을 붙여서 말이죠.

그 지도자는 주민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모두에게 유익한 일을 했어요. 그러기 위해 그 지도자를 발굴해 교육도 하구요. 그냥 지도자가 되는게 아니었어요.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혜택은 없었죠. 그래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왜일까요? 보람된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어때요? 아무 혜택이 없는데 보람된 일이라고 사람들이 하려고 할까요?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거에요. 물론 시대가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그래도 새마을운동을 한 사람들, 특히 새마을 지도자들을 홀대 해서는 안되요.

난 새마을 지도자에 대해 뭔가를 해 달라고 이야기 하는게 아니에요. 최소한 홀대는 하지 말아달라는 거에요.

정권이 바뀌었다고 새마을운동과 새마을운동가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에요.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는 봐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최소한 있는 사실 그대로. 그게 역사이니까.

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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