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 후기 실학자로 경세치용의 실학을 주장하며 공리공론으로 흐르던 정치상황을 비판하고 민생구제를 위한 새 길을 제시했던 이익(1681~1763) 선생은 `성호전집`, `안백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인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향원(鄕愿)에 해당하는 사람이니 그들은 옳은듯 하지만 옳지 않으며 의견이 분명하지 않다`고 적고 있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한 고을에서 모든 사람에게 근후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으로 신의가 있어 보이고 행동은 청렴한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더러운 세속에 영합하여 바른 도리를 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원`이라 했다.

전통사회에서 `향원`이란 존재는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 못한 사이비(似而非)에 해당하는 부류들로 양쪽의 의견에 분명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지 않아 어떠한 비난도 교묘히 피하는 사람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겠다.

다시 말해 덕과 비슷하지만 오히려 덕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덕의 적`이라고 보면 되겠다.

공자는 향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덕의 적`이라 하여 극도로 배격하였다. 이러한 사람에 대해 `내 문 앞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내가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을 사람은 오직 향원뿐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얼마나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겠다.

또한 향원은 겉으로는 선량한 척하면서 수령을 속이고 양민을 괴롭히며 환곡이나 공물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부도덕한 사람을 가리킨다. 원래 이름은 첨수장이나 생긴 게 간사해 보이는 인상이라 별호가 향원이다.

후에 맹자가 이를 좀 더 구체화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향원이란 말은 사이비 유덕자로 덕이 있는 사람과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닌 사람으로 정리했다.

춘추말기 노나라의 대부였던 소정묘를 공자가 주살한 후 저잣거리에 효수하는 등 중벌로 다스리는 것을 보면서 소정묘를 인망이 높은 사람으로 생각하여 따르던 자공은 스승인 공자의 행위를 대놓고 힐난하며 민심을 조장하자, 공자는 도둑 이외의 대악(大惡) 5가지를 들어 죽인 이유를 설명하였다.

여기서의 5대악은, 남의 마음을 잘 읽어 사로잡지만 그 속에는 엉뚱한 흑심을 품고 있는 사람, 행실이 편벽하면서 고집만 센 사람, 말에 진실성이 없으면서 달변인 사람, 실행하는 목적이 어리석으면서 지식이 많은 사람, 비리에 순응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다. 이 중 한 가지만 지녀도 죽음을 면하기가 어려운데, 소정묘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범하고 있어서 중벌로 다스렸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현대판 향원은 없는지. 우리가 향원을 덕을 지닌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회를 문란하게 하고 조직을 병들게 하는 간사한 무리들과 의로운 자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고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미혹에 빠지게 하는 능력을 지닌 자들이 득세하고 있지는 않은지, 겉으로는 정의를 논하나 그 이면에는 사리사욕으로 가득차서 구성원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의 영욕에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은 없는지, 중대범죄를 저질러 놓고 법의 허점을 이용해 변호를 통해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없지 않는지.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행위는 없는지, 우리 주변에서 스스럼없이 만들어지는 모든 일탈행위들은 누구에게나 잠재된 향원의 본심에 편승할 수 있으니 이러한 사이비의 유혹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