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인간의 역사는 시대를 거듭하며 필연적으로 폐단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폐가 깊을수록 나라는 병들어 그 존재마저 위태로워진다. 율곡 이이는 `임오년 시폐에 대해 진달한 상소문`에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위기를 미리 예방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위기가 발생한 뒤에도 수습하지 못하고 안정시킬 방도를 찾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율곡은 이 상소에서 당시 조선의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고 경장(更張)을 할 것을 주장한다. 내용을 보면 `대관(大官)들은 녹봉만을 유지하면서 실지로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지닌 사람이 적고, 소관(小官)들도 녹 받아먹기만을 탐내면서 전혀 직책을 수행하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해 서로 옳지 못한 행위만을 본받으므로 관직의 기강이 해이해졌습니다. (중략) 신 역시 경장하지 않으면 나라는 필시 망할 터인데 그냥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경장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수 있으니 경장해 잘 되면 사직(社稷)에 복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된다. 율곡 선생이 세상을 떠난 8년 후 조선은 선생이 우려했던 시폐를 해소하지 못한 결과를 혹독하게 치뤘으니, 임진왜란이라는 6년여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국토는 초토화가 되고 백성들은 유린당했다.

당시 시국을 학봉 김성일은 `축성의 정지와 시폐를 아뢰는 글`에서 `백성이 원망하여 배반하면 호미와 고무래로 창을 삼아 쓰더라도 강한 진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고, 인화로 뭉치면 작은 고구려가 수나라 백만 대군도 무찌를 수가 있는데, 지금 백성이 흩어졌으니 누구와 더불어 지키겠는가.`라며 당시의 관리들의 부패를 지적하고 있다. 민생안정을 최우선으로 한 학봉의 주장은 관철되지 못했고 당시 축성의 폐단은 극에 달하면서 관리들의 탐학과 불법이 더욱 성행하였다. 따라서 성 쌓는 백성들 사이에서 `성이 성이 아니라 백성들이 성이로다.`라는 속요까지 유행하였다.

이로 선생의 `용사일기`에는 `지금 병기가 잘 들고 날카롭지가 아님이 아니요 성지가 높고 깊지가 아님이 아니다. 진실인 즉 수령에 어진 사람이 없고 지키는데 적합한 사람을 얻지 못하여 정치가 가혹하고 법이 혹독하여 백성들이 흩어진지 이미 오래인데 급기야 변이 창졸간에 일어나니 장수나 수령된 자들의 평소에 한 일이라고는 민심을 크게 이반시킨 것뿐이니 비록 수습하려 해도 백성이 따르지 않는 것이니 나라일이 이에 이르러 다시 어찌할 나위가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적고 있으니 올곧은 선비들이 당시의 관리들의 부패와 폭정, 무능함이 극에 달한 상황을 잘 정리한 내용으로 국가의 안위를 걱정한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적 위험이란 것이 예외적인 상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일상이 위험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과 우리가 믿고 있었던 시스템이 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위기를 알았다면 그것을 안정시킬 방도를 찾아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사회의 위기는 그 사회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위험부담이 균등하게 분배되어 그 위험으로 특별히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입는 사람이 없도록 하여 그 위험을 근원적으로 줄이려 할 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매독환주`라는 성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옥구슬을 팔러 갔는데 사는 사람이 구슬을 담았던 상자만 사고 정작 구슬은 도로 돌려주었다는 내용으로, 근본적인 것은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택하는 행위를 비꼬는 말이다. 지금 각료 후보자들의 청문회를 보면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것 같으나 실은 공수가 바뀐 여야정당 간, 여당시절 당했던 일을 야당이 되니 똑같이 앙갚음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고질적이고 구태의연한 적폐정치는 결국 현명한 국민들의 표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