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경위(涇渭)란 말이 있다. 이 `경`과 `위`는 모두 중국의 강물 이름으로 경수는 강물이 몹시 흐리고, 위수는 강물이 아주 맑았다. 두 물줄기는 중간 지점에서 하나로 합쳐져 흐르지만 합쳐진 뒤에도 맑은 물과 흐린 물이 섞이지 않고 강 가운데 뚜렷한 경계를 그으면서 흘러갔다. 그래서 경위는 인품의 청탁(淸濁)이나 사물의 진위 또는 시비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어떤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자세한 경위(經緯)를 조사한다. 이 경위의 한자는 원래 실의 날줄과 씨줄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전에는 삼베나 목화 등을 원료로 옷감을 짰다. 베틀에 세로줄인 날줄을 고정시킨 후 북으로 씨줄을 던진다. 이 때 세로줄인 날줄은 `경`이며 고정된 줄이어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담은 책을 `경전`이라 일컫는다. 반면 가로줄인 씨줄은 `위`이다. 씨줄은 실을 감은 북을 좌우로 움직인다. 이 날줄과 씨줄이 서로 엇물려 한 필의 옷감이 완성된다. 날줄과 씨줄이 켜켜이 쌓여 옷감이 완성되듯 인간의 일도 복잡하고 다양한 사정들이 쌓여 생겨난다. 그래서 일의 전개 과정을 달리 경위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의 경위를 따진다고 할 때, 두 단어가 모두 맞으나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전자의 경위요, 일의 현재 상황과 위치를 따진다면 후자의 경위를 쓰는 게 맞다.

왕정시기 한 나라의 공식적 역사기록인 제왕본기는 시간을 축으로 전개되며 당대의 역사를 살아간 개인의 열전은 공간의 축을 따라 펼쳐진다. 시간은 날줄이며 공간은 씨줄인 셈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시간이라는 날줄에 끊임없이 공간을 확장해간 수많은 개인의 행위를 씨줄로 먹여서 짜낸 다채로운 무늬이다.

조선중기 문인인 성현 선생은 부휴자담론 아언(雅言)에서 `사람들은 매우 아름다운 것 속에 지극히 나쁜 것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라고 적고 있다.

부휴자담론은 선생이 부휴자라는 가공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에 나타나는 병리현상을 풍자 또는 비판한 책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예로 든 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 속에 지극히 나쁜 것이 들어 있는 사례로 바로 독버섯과 복어를 일컫고 있다. 매년 봄만 되면 빛깔 곱게 보이는 버섯을 식용으로 오인한 사고나 복어의 잘못된 요리로 목숨을 잃기까지 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겉보기에 나쁜 것이 과연 속까지 나쁜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선 겉보기에 나쁜 것은 누구나 나쁘다는 생각에 피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피해는 별로 크지 않다. 문제는 겉보기에 아무런 해가 없어 보이거나 다른 것보다 더 좋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치명적인 독이나 해악을 품고 있을 경우이다. 독버섯이나 복어처럼 사람들이 그 색과 맛에 현혹되어 방심하다가 그 독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그때의 피해는 훨씬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특정정당 의원 33명은 5대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지난달 31일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일 년치 세비를 헌납하겠다고 국민 앞에 공언했다. 하지만 약속기한 하루 전날인 지난달 30일이 돼서야 26명은 여론에 밀려 `꼼수발의`로 약속을 이행했다는 후안무치의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정당을 새로 만들어 옮긴 의원 6명은 31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국민 사과까지는 했으나 약속한 세비반납을 하겠다는 의원은 없었다. 당선에 눈이 멀어 제대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꼼수발의로 무마하려는 철면피 행태에 비해 사과를 한 의원들이 그나마 더 책임 있는 입장표명을 한 것은 사실이나 1년 전 `대한민국과의 계약`이 대국민 사과만으로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행위 모두가 전자의 경위가 실종된 행태이다. 지역주의나 감언이설에 속아 지지해준 그들이 독버섯이나 복어의 독은 아닌지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