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가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고 관리들의 탐학비판과 서리의 부정, 토호의 작폐, 농민의 실태 등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또한 다산은 `백성을 위해서 목(牧)이 존재하는가, 백성이 목을 위해서 태어났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그 근원이 백성들의 생활상 필요와 자발적인 추대에 의해 여러 통치자와 권력이 발생했다고 적고 있으며, 200년 전 조선의 수령들은 오만스럽게 자신을 뽐내고 태평하게 스스로 안일에 빠져서 자기가 목자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고 질책하였다.

명말청초 경세치용의 학문으로 `절동사학`을 창시하고 청대 고증학의 길을 개척한 황종희(1610~1695)도 `우리가 나가서 벼슬하는 것은 천하를 위한 것이지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요, 만민을 위한 것이지 한 성씨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치란이란 한 성씨의 흥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만민의 근심과 즐거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라며 왕조국가에서 관직에 나가는 목적을 `만민을 위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으니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공직자들의 정신자세는 `멸사봉공정신` 이외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고 본다.

황종희는 `명이대방록`(1663)에서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살며, 자신의 이익만을 구했다. 공공의 이익이 있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고, 공공의 해로움이 있어도 없애려는 사람이 없었다. (중략) 훗날의 군주는 천하의 이해관계를 온통 자신의 손 안에 쥐고는 모든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돌리고, 모든 해로움은 그대로 천하에게 돌리고 있다. 천하의 백성이 자기 뜻대로 살지도 못하게 막으면서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모두의 공적인 이익이라 속여 그것을 추구하게 한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명이`란 주역의 한 괘로서 빛이 어둠 속으로 숨은 암담한 현실을 나타내는 것에 빗대어 당시의 어지러운 세상을 군주가 만들었기 때문에 차라리 군주가 없다면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살며 자신의 이익이라도 챙길 수 있으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뽑는다. 하지만 선거 후 국민 앞에 공약했던 모든 공약들은 대개 형체만 남고 금세 사라진다. 이는 공인으로서의 공의 정신이 실종된 탓이다. 왕조시대의 군주는 천명의 대행자이나 오늘날의 그들은 민의에 복무한다. 왕정시대의 천명조차도 민의에 따라 변하는 것이거늘 하물며 오늘의 민주정치에서야 다시 말할 나위가 있으랴. 난무하는 후보자들의 감언은 저열한 유권자들의 이설을 만나 비로소 은밀하게 화동하기에 감언과 이설은 결코 홀로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란 유권자의 중의를 모아 임기 동안 국정을 맡길 사람을 뽑는 일이다. 고르는 이와 고름을 받고자 하는 이 사이에는 건강한 긴장이 필요하다. 당의 대학자 한유(768~824)는 사람을 천거하는 논리에서 산의 나무와 저자의 말을 천만인이 모두 돌아보지 않는다 하여 그것이 곧 그 나무가 동량이 되지 못하고 그 말이 잘 달리는 말이 아닌 것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장석(전국시대의 대 목공)과 백락(말을 잘 준별했다 하는 주대의 인물)이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필시 재목감이 아니요 준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여 년 전 당시 사회 모순을 제거하는 데 제도적 개혁과 관료들의 청백리사상에 따른 윤리적 제약과 관리의 합리화를 찾고자했던 다산은 목민심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대선도 끝났다. 이제 대통령 당선인과 새로 임명되는 고위공직자들은 헌법 1조를 되새기며 국민 앞에 약속한 공약들을 국민들이 쥐어준 권력으로 임기동안 차분하게 실천해 나가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