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요지경이다. 지견없는 몇 사람의 과오로 세상이 참 우스워졌다. 슬픈 일이다. 국민 모두가 복이 없는것인지 대한민국이 복이 없는지 사람들의 얼굴이 편치 않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누구 탓 하기보다 한 번 더 자신을 돌이켜 볼 일이다. 개개인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도덕적 잣대보다 너무 큰 이익, 즉 사리사욕을 안겨주게 된 것 같다.

이익 앞에는 성인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던가. “덕행과 사업은 자신보다 나은 이를 본받는 것이고 명예나 지위는 자신보다 못한 이를 살피는 일이다”라는 최근 가졌던 필자의 전시회 글귀가 생생하다. 제나라 때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경공이 좋은 말이다라고 듣기만 했을 뿐 깊이 알아차리지 못한 탓에 결국 제나라는 망하고 만다. 경공과의 대화는 사람이 살아가는 위대한 최소한의 도이며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의 바탕이다. 이때 경공은 정권을 잃고 신하인 진씨(陳氏) 가 나라 정권을 잡고 제 마음대로 였다. 어느 정권이든지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서 뜨지 못하는 경우가 된다.

가끔씩 가훈을 작품으로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자식을 향한 어쩌면 가장 간절한 기도이며 바람일 것이다. 자식은 가훈을 통해 젖어가고 길들여져 가고 그렇게 되어져가는 것이다.

그 가훈 몇 자가 인생을 인도해 준다. 얼마전`답게`라는 글귀였다. 누구라도 아는 내용이겠지만 신라 35대 경덕왕의 시절 이야기이다. 충담 스님께 나라의 정사를 잘하는 법을 물으니 그는 `안민가`를 지어 내어 놓는다.

`군(君)답게 신(臣)답게 민(民)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 하나이다`라며 역할과 본분에 대한`답게`송(頌)을 바쳤다.

안민가 때문에 우리에게 이 귀한 글귀는 본분이며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 해보면 모두가 대단한데 어찌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답게`라는 두 글자를 가훈으로 부탁한 그 분의 가풍은 어떠해졌는지 그 간절함이 사뭇 궁금해진다.

좀 시대감이 떨어진 것처럼 진부해 보이지만 진정한 가훈 갖기 운동이 제2의 가족 정신재건운동이 되면 어떨까. 한번쯤 오래된 가훈의 먼지를 털어 내면서 자신의 현실을 한번 더 만진다면 분명 처음의 생각과 같이 `답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다워 고귀함을 드러내는 일은 답게 사는 일보다 더 큰 위대함이 없을 것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