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써는 사람의 생각을 다 그려낼 수 없고 글로써는 사람의 생각을 다 적을 수 없다. 그렇지만 몇 줄의 시로써는 흉중에 드러내고자 하는 숨어있는 마음까지 다 감추어 드러낼 수 있다.

논어에서는 시(詩)에 대해 간절히 소상히 제자들에게 일러주고 자상히 시를 배우는 것에 대해 간절히 권고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산문, 수필, 시 중에 시가 아닌 사서의 시경(詩經)을 이야기하며 시경은 시와는 조금은 차원이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경은 인륜의 도와 세속의 모든 것들을 설하고 있는 고전이다. 연민, 도덕 등 흥미로운 시대의 풍자이며 BC 12세기 서주에서 춘추 초기까지의 중국 노래 가사집으로 총 305편이다. 공자께서는 시경을 한마디로 “생각에 삿됨이 없는 것” 즉 사무사(思無邪)라 결론하였다.

공자는 양화편에서 “너희들은 어찌 시를 배우지 않는가. 시는 의기(意氣)를 일으킬 수 있다며 세상에서의 득과 실을 따져볼 수도 있으며 많은 사람과 사귈 수도 있으며 화목하여 치우쳐 흐르지 않는다. 원망을 해도 성을 내지 않을 수 있으며 조수(鳥獸)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하였다.

양화편에 공자가 아들 백어(伯魚)에게 말했다. “너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정면으로 향해 서 있는 것과 같다”하였다.

주남과 소남은 시경의 첫머리 편이며 수신제가에 대한 내용이다. 시집이 팔리지 않고 시인들은 좋은 시가 쓰여지지 않는다 하고 소설가는 소설이 읽혀지지도 않는다고 야단이다. 난잡한 세상살이보다 더 좋은 소설을 쓰기가 참 힘들다고들 한다.

한 해가 저물기 전 서점에 들러 한 권의 시집을 사서 읽는 일은 자신의 잃어버렸던 영성을 깨워줄 것이다.

나에게도 책꽂이에 한 때는 줄쳐 가면서 읽은 몇 백권의 시집들이 먼지만 쌓여 야단들이다. 시를 읽어 내가 바뀌져 가고 한 줄의 시가 쓰여지기까지 시인들의 아픈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래도 소리내어 읽으면 내마음도 옆에 있는 사람마저 시인의 영성을 같이 느낄 수 있어 삶은 아름다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세상에 맑음이 되어 남에게 마저도 아름다운 일이라는 위대한 사실에 우리들 모두가 동의 한다면 공자께서 시를 배워야 한다고 하신 그 간절한 가르침이 어슴프레 다가오는 듯하다.

이런 날이 오지 않겠지만 공자님의 가슴 따스한 시 낭송이 있다면, 하는 그런 생각에 약간 떨림이 밀려온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