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상인과 대화없이 10여분만에 떠나
상인 “속이 시커멓게 타는데 위로도 없다니…”

▲ 대구 서문시장 화재 발생 2일째인 1일 오후 화재현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화마가 지나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용선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위기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화재 참사가 벌어진 대구 서문시장을 전격 방문했지만, 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박 대통령은 1일 오후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화재현장에 도착, 10분 가량 둘러본 뒤 곧바로 떠났다.

이날 오후 1시 29분쯤 승용차로 주차타워 건물에 마련된 재난현장통합지원본부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김영오 서문시장상가연합회장의 안내로 4지구 현장을 둘러본 뒤 반대편 통로를 통해 곧바로 빠져나갔다. 종전처럼 상인들과 악수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기습 방문에 대해 시장 상인은 물론 대구 시민들은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서문시장 화재의 피해 상인 김모(58·여) 씨는 “시국이 어지럽더라도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며 “만나면 악수라도 한 번 청해야겠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서문시장에서 숙녀복을 판매했던 장모(67)씨는 “지금 밥도 못 먹고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방문한 대통령이 어떻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날 수 있느냐”며 “이것은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주변에 있던 상인들도 “서문시장 욕보이는 일이다”, “나는 상인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다”, “위로의 한 마디도 없이 갈 거면 뭐하러 여기 왔냐”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이번 화재로 피해를 본 박모(56)씨는 “4지구 비대위 30여 명이 모여 있었는데, 상인들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가나. 피해 상인들부터 만나야지. 대구가 다 자기편인줄 아는데 착각하지 마라. 그러다 큰코다칠 것”이라고 흥분했다.

서문시장에서 5년 동안 장사한 이모(62·여)씨는 “투자한 돈이 다 날아가서 우리는 죽을 판인데 어떻게 해주겠다는 이야기도 없고, 4지구 상인들은 길에만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정가와 시민단체도 박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대구의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박근혜퇴진 대구시민행동`은 “대구시민을 우롱하고 고통 받는 상인들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이날 “국민의 마음속에 지워지고 이미 탄핵을 선고받은 대통령이 서문시장 화재현장을 찾았지만 성난 촛불 민심 앞에서도 자신의 거취를 국회로 떠넘겨 정치적 혼란만 가중시킨 행위와 같이 또한번 민심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정파탄의 주범으로 돌아온 대통령에게 무슨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겠으며 10여분간 머물면서 어떤 피해상황 파악과 대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서문시장에서 맞닥뜨린 상인의 항의, 이것이 대통령에게 향한 국민의 민심”이라고 언급했다.

정의당 대구시당도 논평을 통해 “피해 상인들과의 일체 면담도, 위로조차 없이 방문 10여분 동안 짧은 브리핑과 사진 몇 장만 남긴고 떠난 자리엔 상인들의 더 큰 상실감과 불신만이 남았다”고 평했다.

다만, 새누리당 대구시당 측은 최순실 사태와 당내 친박·비박간의 갈등 등으로 박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면서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명했다.

/김영태·박순원·전재용기자

    김영태·박순원·전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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