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 척박한 땅에서 그들은 무슨 꿈을 꾸었나

▲ 우치히사르

이스탄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우리가 탄 버스는 오후 8시 30분에 출발했다. 남쪽 하늘의 오리온 별자리가 차창에 달라붙는다. 창에 서린 이슬을 닦아내며 별을 끌어안았다. 잠들었다가 깼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며 새벽 5시에 이르러서야 아나톨리아 고원 카파도키아의 `테시즈레르(TESI SLER)`란 글자가 보인다. 휴게소다. 휴게소에 내렸을 때 빵 굽는 구수한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잠에 떨어졌던 사람들이 오줌보를 비우기 위해 나와선 맨손체조를 한다. 다들 피곤에 지쳐있는 모습이다. 먼 여행에 나선 여행자의 모습은 추레하다. 덜 떨어진 잠 딱지가 몸에 달라붙어 있어 어딘가 모르게 측은지심을 갖게 한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리 먼 길을 헤매며 방황하는고?

 

버스는 5시에 다시 출발했다. 진절머리가 난다. 창 밖으로 따라오던 별들도 사라졌다. 6시 지나자 대지는 밝아온다. 높은 산이 보인다. 산정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곳은 해발 1천200m 이상의 아나톨리아 고원지대다. 오른쪽으로 붉은 해님이 뾰족 머리를 내민다. 눈부시다. 준비한 선글라스를 꺼내 낀다. 아직도 목적지까지는 30여 분 남았다.

45인승 버스는 7시33분에 우리의 목적지 네브쉐히르에 도착했다. 이스탄불 버스터미널 출발 후 11시간만이다. 중간 휴게소에서 쉬었다 해도 우리 의식으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시간 거리다. 시속 100km로 달렸을 것이다.

바위마을 `우치히사르` 다닥다닥 뚫린 구멍집들 정겨워

300만년전 화산분화로 생긴 `피죤밸리`는 한편의 명작

한국 사람들에게 `카파도키아`는 먼 거리다. 하지만 터키 여행 코스에서 빠질 수 없는 여행지의 백미(白眉)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갈 수 있는 많은 곳이 있음에도 이곳은 기암괴석으로, 종교적 성지로 유명하기에 여행 필수 코스다. 그렇기에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서 처음 찾은 곳은 `우치히사르`였다. 우치히사르는 텅 빈 바위 마을이다. 카파도키아 일대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형성된 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3개의 요새`란 의미를 담고 있다. 요새처럼 바위를 뚫고 집을 지었다. 응회암을 뚫고, 그곳을 아늑한 삶의 공간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을 한쪽 귀퉁이로 뚫린 길을 통해 집을 구경한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구멍문을 통해 사람들은 들락거렸으리라. 지금은 텅 빈 건조한 살림이지만 한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훈기를 벽면에서 느끼려 벽에 손을 대본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올 것 같다.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그들의 후손이리라. 이교도의 침입, 지진, 비와 바람으로 지금은 사람 얼굴 만나기 힘든 동네지만 다닥다닥 뚫린 구멍집들이 한 편의 시처럼 상징과 은유로 다가온다. 아름답다. 그곳에서 주변을 살펴본다. 앞쪽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비둘기 몇 마리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피죤 밸리(Pigeon valley)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높은 지대에서 피죤 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바닥에 비둘기 발자국이 찍혀있다. 지금도 많은 비둘기들이 사람 살았던 바위 구멍에 둥지를 틀고 있다. 예전에는 비둘기 배설물을 이용해 포도 농사를 지었고, 그것과 알을 이용해 그림물감을 만들었다.

풍광이 대단하다. 카파도키아는 약 300만년 전 해발 4천여 미터의 에르지예스 화산이 분화하면서 그 마그마가 주변 수백 킬로미터까지 흘렀다. 그것이 굳어 생긴 곳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았고, 그 위에 비와 바람과 태양의 발길이 지금과 같은 작품으로 만들었다.

30여개 암굴교회가 옹기종기 `괴레메 야외박물관`

기독교서 이슬람 영토로 바뀐 `수난의 역사` 간직

발을 옮기는 곳곳이 아름다운 자연의 곳간으로 이국적 풍물이 넘쳐흐른다.

그곳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의 `괴레메 야외 박물관`으로 옮겼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박물관, 그러니까 농기구나, 책, 도자기 같은 골동품을 전시한 박물관은 아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 중턱에 박물관으로 입장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다. 표를 끊기 전 현지 가이드가 말한다.

“카파도키아에는 이런 야외 박물관이 많이 있습니다. 구경하고 싶지 않는 분은 굳이 이곳을 구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입장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노천박물관이면서 그 하나하나가 암굴로 내부를 관람해야 한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계곡에는 카파도키아 옛 기독교 모습을 볼 수 있는 30여개의 암굴교회가 있다. BARBARA KILISE, …. KARANLIK KILISE(DARK CHUR CH), …. 바지르 교회, 사과나무 교회, 뱀의 교회, 어둠의 교회, 산다르 교회, 쿠즈라르 교회….`

기독교 성지다. 그렇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찾으며 자신의 믿음을 확인한다. 2세기 이후 번성하던 기독교 교세는 9세기에 이르러 강한 이슬람 교도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교회를 지었다.아나톨리아 지역에 1천500여개의 이런 교회가 있는데 카파도키아만 500여개 있다.

박물관 내 대부분의 교회는 세월의 풍상에 원래의 모습을 잃고 있다. 세월의 풍상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훼손도 따랐을 것이다. 교회 내부 벽면에는 프레스코화가 많다. 예수의 모습과 그의 제자, 그리고 성모상.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로 구성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했을 것이다. 교회 내부를 둘러본다. 사과나무 교회는 예수님께서 사과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뱀과 싸우는 장면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교회는 뱀교회다. 정말 교회마다 특색을 갖고 있다. 어느 곳은 작고, 벽화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곳은 최후의 만찬을 떠올릴 정도로 식탁과 앉을 의자도 있다. 현재 공사중으로 문이 폐쇄되어 있는 곳도 있다.

신도들이 모여 기도드리고, 음식을 나눠 먹었을 곳에 가만히 앉아 본다. 빈자의 모습으로 주기도문을 떠올린다. 신앙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기도다.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믿음의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관광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터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기독교 박해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기독교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 말씀을 믿는 데서 출발한다. 그 믿음의 실천은 현실속 많은 것들과 상충하고 부딪히며 정치적 박해까지 겪게 된다. 이곳 역시 기독교의 영토에서 이슬람의 영토로 바뀌면서 기독교인들은 수난의 시대가 됐다.

서로 다른 종교가 상생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유일신을 추구하는 믿음에서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일 아닐까. 그것은 우리 현 인류가 안고 있는 절대절명의 절벽이고 넘어야할 과제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내의 `어둠의 교회`는 다시 입장료를 내야 했다. 나는 입구에서 망설였다. 돈을 내고 또 들어가 비슷비슷한 모습을 봐야 할 것인가? 들어가 보자. 다른 교회와 달리 모든 것이 제대로 있는 것 같다. 원형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다.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예수님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밖으로 나와 석회질의 맨땅을 밟으며 믿음이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어떻게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은 꿈을 꾸었을까?

그곳에서 사 온 빵으로 점심을 먹는다.

빵. 일용할 양식.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이야기는 성경의 핵심이다. 빵 아닌 무엇, 그 무엇을 찾아 사람은 사막과 광야를 헤매기도 하고, 먼 바다 건너 낯선 땅을 찾기도 한다, 여기 살던 사람처럼 바위를 뚫고 집을 지어 살기도 했다. 그 무엇의 핵심은 `말씀`일 것이다. 말씀. 말씀이 있음으로 세상이 탄생했다는 것이 기독교 성경의 가르침이고 믿음이다. 창조주의 음성을 나지막하게 듣는다.

“어디로 가느냐? 말씀의 흔적을 찾느냐?”

제대로 정리가 안 된다. 멍하다. 열심히 바르게 사는 것이 믿음이란 생각도 든다. 절제와 겸손함, 청빈 등의 고귀한 언어들이 무지개처럼 떠오른다. 마음의 성전을 폐허로 변한 교회에서 확인한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을 나설 때 서편 하늘로 해님은 겨울 햇살을 짧게 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