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 `천일의 약속`서 치매 걸린 이서연 열연

“각오했던 것보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또 즐거웠습니다. 연기하는 동안에도 또 작품을 끝낸 지금도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에 휩싸여 지내고 있습니다. 제 기분을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것 같아요.”

수애(33)가 말문을 열었다.

`천일의 약속`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가씨 이서연을 온몸으로 연기하며 바닥까지 무너져내린 그다.

드라마 종영 후 10여일 만인 4일 남산의 한 호텔 꼭대기 층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커다란 창 너머 탁 트인 시야만큼 수애의 표정도 투명했다.

하지만 그는 “내 속도 뻥 뚫려 있는 느낌”이라며 “현재 무기력증에 빠져 있고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바스러질 듯 아프다”고 토로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인터뷰에 돌입했다. 그는 처음 10여 분간 쉬지 않고 속에 있던 말을 쏟아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천일의 약속`을 끝낸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거대한 산을 넘은 듯하다. 촬영장면마다 감히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표현하기 위해 나와 싸움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런 고통을 즐기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쾌감도 느꼈다. 이서연이라는 인물을 배우로서 좀 빨리 만났다는 생각도 들지만 하는 내내 감정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악하며 치열하게 달려들었다.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많이 배웠다. 얻은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내 안이 너무 꽉 차서 비우는 작업이 힘든 것 같다. 끝내고 나니 내 속이 뻥 뚫린 듯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꽉 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다. 버릴 건 버려야 하는데 그 통로를 못 찾아 헤매는 느낌이다.

-알츠하이머 연기가 어땠나. 이서연의 고통을 얼마나 알고 표현했다고 생각하나.

◆기억을 잃고 아이가 된다는 일반적인 상황 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과정에 호기심이 들었다. 후반부에는 촬영장에서 동료 배우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눈만 마주치면 눈물이 나오니까. 매순간 내가 곧 이서연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지난 4~5개월간 수애는 없었다. 대사가 두세 페이지씩 됐는데 NG를 거의 안 냈다. 대사를 늘 입에 달고 살았고 집에서도 내가 이서연이라고 생각했다. 김수현 작가의 대본은 너무 깊고 아팠다. 작가도 이번 작품을 통해 뭔가를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서른세 살이 됐는데 배우로서, 자연인으로서 어떤가.

◆자연인으로서는 30대를 즐기고 있다. 20대 때는 모든 게 두려웠고 스스로 많은 것을 차단했다. 지금은 조금은 즐기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여행이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호기심이 많이 들고 그것을 충족하려고 한다. 다만 배우로서는 지금 이 순간도 치열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영화 `님은 먼 곳에`를 통해 배우로서 성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후 `심야의 FM` 등을 만나면서 조금씩 나 자신을 넓혀나가는 느낌이다. 덕분에 주변에서도 많이 믿어주는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여유를 찾고 싶지만 아직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책임감이 더 강해진다. 자연스러운 연기, 일상 연기를 하고 싶다. 눈빛과 얼굴로 읽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