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벽에 주모가 그어놓은 외상장부,삼강주막과 500년 된 회화나무
주막은 술과 밥을 팔면서 나그네를 유숙시키던 집을 말한다. 통행이 많은 주요 길가뿐만 아니라 장터, 큰 고개 밑의 길목, 나루터 등에 있었다. 길가는 나그네는 물론 장보러 가는 자나 장을 따라다니는 상인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주막은 세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중심지 구실을 하였고, 피곤한 길손에게는 휴식처가 되었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흥을 즐기는 구실도 했다.

주막의 표지로 문짝에 `酒`(주)자를 써 붙이거나 酒자를 쓴 사방등을 처마 밑에 달기도 했다. 주막의 주인을 `주막쟁이`라 하고 밥을 짓고 술을 파는 여자를 `주모`라 불렀다. 주막에서 팔았던 술은 주로 탁주(막걸리)였다. 과거라도 있을 때면 양반 손님을 위하여 청주가 등장하기도 했다. 안주로는 육포, 어포, 돼지고기 수육, 빈대떡, 산적, 생선구이, 멸치, 콩 볶음도 있었고, 해장국, 장국밥이 대표적인 요깃거리였다.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3강 주막은 원래 3채가 있었다. 나루터에서 마을로 통하는 `배나들길`가에 30m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있었는데 1934년 대홍수 때 두채가 넘어지고 현재의 주막만 남게 되었다. 당시 3강 나루터에는 배가 2척이 있었는데 한척은 소에 짐을 실어 그대로 실을 수 있는 큰 배였고 한 척은 사람만 태우는 작은 배였다고 한다. 배는 1970년대 초까지 운용되었다.

삼강마을은 5백여 년을 지켜온 청주 정씨 삼강파의 집성촌이다. 이곳 지명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 3강이 합쳐지는 곳이라 삼강이라 명했다. 삼강나루에 주막이 들어선 때는 1900년 전후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막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밭 `田`자형 겹집이다. 앞줄은 작은방과 큰방, 뒷줄은 정지와 봉당이 각기 좌우로 놓여있다. 규모는 비록 작지만 기능에 충실한 합리적인 평면구성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정지의 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모가 벽에 적어놓은 외상장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외상을 주면 흙벽에 주모가 칼로 금을 그었다.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잔이고 긴 금은 막걸리 한 되란 뜻이다. 외상값을 다 갚으면 가로로 긴 금을 그어 표시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라 불렸던 유옥련 할머니는 2005년 12월 삼강주막이 문화재로 지정된 후(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 복원된 주막을 보지도 못하신 채 2006년 돌아가셨다. 문화재 지정조사차 찾았을 때 할머니께서 내어주신 털털한 막걸리와 멸치볶음 안주 맛이 아직도 입가에 생생하게 맴돈다. 지금 이곳에 가면 맛난 두부와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낙동강 1300리 물길에 유일하게 남은 주막. 앞으로도 잘 보존되어야 할 텐데…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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