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성아의 마시멜로
(60) 성아의 마시멜로
  • 관리자
  • 등록일 2010.12.13 19:58
  • 게재일 2010.1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아는 결국 마시멜로가 든 파이를 받지 못했다. 별 것 아닌 과자를 성아에게 주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거친 말투로 다른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성아. 참지 못한 나는 `성아, 너 나가!`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성아는 잠시 쭈빗대는가 싶더니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게 아닌데 싶었다. 잘못했어요. 성가시게 굴지 않고 조용히 할게요. - 내가 원한 답은 그거였다. 하지만 성아는 그런 대답 대신 공부방을 벗어나 창밖에서 서성거렸다. 다른 착실한 아이들을 위해서 성아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실은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것이다. 복도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성아를 보고 금세 후회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줄 걸.

2010 문학작가 파견 사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문화 사업의 일환이다. 전국에서 선정된 82개 도서관이 시행처가 되어 파견작가를 지원해주고 있다. 나는 포항시립도서관 소속으로 5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사업 목표는 소외계층, 소외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활동에의 적극 권유였다. 도서관 측과 나도 그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심각할 정도의 지역 소외계층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았다. 해서 상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한 곳을 사업지로 택하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 두 곳과 시립도서관에서 독서 및 글쓰기 강좌를 열어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의 얼굴은 밝았고, 표정 또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 어디에도 상대적 소외계층 아동들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시작할 때면 목이 탈까 찬물을 떠다주고, 마칠 때면 앞 다퉈 흐트러진 책들을 가지런히 정돈해주곤 했다. 하루 일정이 끝날 즈음이면 아쉽다고 좀 더 하자고 보채는 아이들도 있었다. 퀴즈를 더 잘 맞히기 위해 책 속으로 파고들듯이 몰입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책임감도 느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첫인상은 워낙 강렬했다. 말투는 거칠었고, 행동은 즉흥적이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은어나 비어, 속어를 툭툭 내뱉었고,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싸움을 걸고 지우개를 던졌다. 몰래 유치한 그림을 그려놓고 옆 친구를 툭툭 건드리며 키득거렸다. 성아도 그런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아이들 집중력을 유도하기 위해 상품으로 마련해간 마시멜로 파이. 밖으로 쫓겨난 성아는 끝내 받지 않았다. 그 다음 시간에 성아는 아예 공부방에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만화책을 들고 보란 듯이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저항(?)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은 제 본심을 분명히 전하고 싶어했다.

이 사업을 마치는 지금에야 그 아이들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주목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거였다. 주변 환경에 아이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동화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들을 좀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내던지는 말, 참을성 없이 불쑥 나가는 주먹은 그들 천성이 악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환경에 노출될 기회가 많다보니 옳고 그름의 판단에 앞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불쑥 나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김소연 작가의 `꽃신`을 통해 작은 맘이 모여 큰 감동의 강물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금이 작가의 `큰돌이네 집`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새엄마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을 버리게도 되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얼마간은 참아야 하고, 꾸준히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파견 작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내가 얻은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수선스럽고, 시샘하는 가운데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한다. 그 모습은 마치 바람 따라 흔들리며 수런거리는 들꽃을 닮았다. 이 들꽃들의 속삭임이 파견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한층 너울지기를 바란다. 다음 주에는 특별히 성아만을 위한 마시멜로를 따로 준비해야겠다. 하얗고 쫀득쫀득한 내 마음의 파이를 성아가 받아줬으면 좋겠다. (소설가)
관리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