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만찬
(57) 만찬
  • 관리자
  • 등록일 2010.10.25 19:59
  • 게재일 20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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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파란만장했다. 시험장으로 가야 하는 아들은 새벽부터 분주했고, 그런 아들을 태워줘야 하는 남편은 덩달아 바빴다. 나는 내 볼 일을 보고 오후에 합류하기로 했고, 딸은 나머지 세 식구를 기다리며 기숙사에서 대기 중이었다.

한나절 이별 뒤, 짜릿한 만남을 상상하면서 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린다. 남편이다. 그새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구나, 라고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은 있을 리 없고, 준비물 중 하나를 아들녀석이 빠뜨리고 갔단다.

칠칠치 못한 데다, 건망증마저 심한 엄마이자 아내를 둔 탓에, 나머지 세 식구는 `뭔가를 챙겨야 하는 주부`로서의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해서 다들 알아서 제 것을 챙기는 편이다. 하지만 덜렁대기가 제 엄마 저리가라, 격인 아들녀석은 가끔 그런 실수를 한다. 보통 집 같으면 엄마가 몇 번이라도 점검하고 확인할 만한 상황이이지만, 주부 자격 상실 상습범이라는데 어찌할 것인가.

아들을 생각하니 맘이 아팠다. 못난 엄마 만나 고생하는구나, 싶은 자책감만 밀려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들을 내려주고, 남편은 먼 길을 되돌아와 다시 서류를 챙겨서 떠났단다.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시외버스에 오르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우여곡절 끝에 딸내미 기숙사 앞에서 가족 상봉을 했다. 오전에 있었던 상황을 얘기하느라 저마다 입이 바쁘다. 나는 조용히 상황을 정리했다. `엄마를 믿느니 개미발바닥을 믿어라!`

진 빠진 세 식구의 얘기를 듣고 있던 딸이 말했다. 오늘 모두 혼절하도록 고생했으니 자신이 늦은 점심을 대접하겠단다. `우리 식구를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고 큰 소리쳤다. 아닌 게 아니라 모두들 너무 배가 고팠다. 시계는 오후 세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기숙사 앞 상가에, 학생들을 위한 밥집이 지천인데, 약속이나 한 듯 밥값이 삼천오백 원밖에 하지 않는단다. 그 밥집 중 한 곳으로 딸아이는 우리를 안내했다.

`꽃순이분식`이라고 쓰인 만찬장에 도착했다. 딸은 자신 만만하게 삼겹살 정식과 고등어 정식을 주문했다. 각각 이인분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각종 밑반찬과 요즘 비싸다는 김치는 기본인데다, 삼겹살은 산봉우리처럼 드높았고, 도톰한 고등어는 두 마리나 나왔다. 일반 시중에서는 그 값으로는 도저히 구경할 수 없는 메뉴였다.

허겁지겁 배를 불리면서도 내 눈길은 식당 안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바빴다. 가만 살펴보니 가족주도형 사업체(?) 같았다. 자리보전할 것 같은 노할머니는 어눌한 손놀림으로 식당 한 쪽에서 마른 수건으로 수저를 닦고 있었다. 수더분하게 생긴 남편은 묵묵히 식탁 위를 치우고 음식을 날랐다. 주방장이자 계산원을 겸한 안주인은 주방과 카운터를 날다람쥐처럼 내달렸다.

낮은 가격에 푸짐한 만찬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인건비를 절약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을 위한 식당으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식인 것 같았다.

가족의 합심이 녹아 있는 만찬장을 보면서 가족을 지탱하는 그 힘이야말로 `작은 데서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헤아려도, 나 같이 실천하지 못하면 그건 못 헤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도 쓸 데 없는 자책인가?

만찬에 초대해준 딸이 사랑스러운지 저녁에 남편은 정말로 회전식 만찬장에 우리를 안내했다. 화려한 도심 속, 공중을 천천히 떠도는 식당에 앉아 비싼 식사를 하면서도 마음만은 자꾸 점심 만찬이 떠올랐다. 소박하든, 화려하든 만찬은 값으로 따지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새기는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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