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 시인
가수 박상철씨는 `포기`란 있을 수 없고 자기에게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말뿐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요즘 며칠 사이 사람들은 배추포기는 세는 일까지도 포기하게 됐다. 배추 한 포기값이 만 원 이상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자살을 할 것 없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는 기발한 이론을 개발한 행복전사 최윤희씨는 삶에 지쳐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행복은 없는 게 아닐까. 다만 행복이 있다고 착각하고 분주하게 헛되게 찾아다닐 뿐이다. 털빠찐 폐계같이 된 푸른 잎이란 몇 개 보이지도 않는 소나무 분재를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 본다. 송학도(松鶴圖)라는 제목을 보고 등굽은 소나무 위에 하얗게 늙은 학이 앉은 동양화를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소나무 분재에 흰 두루미가 외발로 서 있는 문양석 한 점을 얹어놓고 분재 이름을 `송학도`라고 붙였다. 처음부터 두루미가 박힌 문양석을 두루미가 아닌 버섯으로 잘못 보았는데 시간을 두고 오래 관찰하니 버섯이 아닌 외발로 선 두루미가 분명했다. 분재를 손에 넣은지 8년이 되도록 무탈하게 잘 관리가 되었는데 두어달전부터 낙엽이 지기 시작하더니 성한 잎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만 돋보였다. 분재를 못쓰게 만든 주범으로 집사람은 나를 지목했다. 밤 낮 없이 물을 많이 주어 그 좋던 분재를 죽여놨다고 원망이 대단하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안잊고 꾸준히 물을 준 건 사실이지만 물을 주면 분재가 더 아름답게 자라지 저런 몰골오 죽어갈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 밝은 아침에 소나무분재를 샅샅이 눈여겨 살펴봤더니 분재가 건강할 때 솔잎이 무성한 것처럼 잎이 갉아먹히고 없는 앙상한 가지에 눈에 띌까 말까한 벌레들이 소나무가지에 닥지닥지 붙어 소나무분재를 망가지게 한 것은 내가 준 물때문이 아니라 유행하는 소나무 제선충이 급습하여 맹공하여서다. 나는 나무꼬챙이로 제선충을 바닥에 떨어뜨려 말끔히 처리를 했다. 워낙 숫자가 많아 수공업적 방법으로 막무가내라 살충제를 사용하여 연속 살포를 하니 제선충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내도 몇 일 두고 아끼던 소나무 분재를 죽였다고 시도 때도 없이 닥달한 게 미안했던지 죽은 제선충을 수거하여 비닐봉지에 쓸어 담았다. 덤으로 막걸리 한 병을 사다가 소나무에 먹였다.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데는 막걸리 이상의 불사약은 없다. 황폐한 송학도를 본다. 솔잎도 더디긴 하지만 한 잎 두 잎 푸름을 회복하는 것 같지만 몇 해 전에는 지인이 선사한 아주 멋진 소나무 분재를 낭패케 한 전력이 있는 터라 `송학도`가 원상회복하는 걸 낙관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대담한 사람이라도 실패한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분재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S중·고 제자 W군이 연소하지만 분재의 대가였다. W군의 마당은 마치 분재식물원이었다. 분재나무를 캐는 것도 늦은 봄철이 좋다. 나무는 한여름에 심으면 살아붙지를 않는다.

1980년대 나는 W군과 같이 대승사가 있는 사불산 아래 기슭에서 분재목을 찾아 헤맸다. 그 때 휙하고 찬바람이 일었는데 범강장달이 같이 키가 큰 남자들이 나를 노려봤다. 그 때는 전두환 정권이 철권통치를 하던 시절이라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입산하여 피신연명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강화된 신고의식 때문에 침투한 간첩이 심산에서 잠복할 수도 있었다. 바람같이 나타난 두 괴한을 피하여 달아나지는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따돌렸다. 그 날 잘못되었다면 내 인생 최후의 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깊은 산에 분재나무를 찾아가는 일이 없게 됐다. 분재를 기르는 것은 까다롭고 유의사항이 많기 때문에 화분을 이용하여 채소를 가꾸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고추, 상추, 배추를 심으면 단촐한 가족인 경우에는 푸성귀를 자급자족할 수 있고 흔히 하는 말로 유기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집에도 올해 화분에 청양고추를 심어 된장 끓이는데 넣는 고추는 익어가고 있다. 망가진 `송학도`를 빠른 시일안에 건강한 모습을 되찾도록 최선이상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을 시킨다는데 내 미미한 정성이나마 다한다면 이땅에서 제일 멋진 `송학도`를 복원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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