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연하장 두 장을 받았다. `구름`과 `386`이란 별호를 가진 두 사람이 보내온 것이다. 미리 밝히자면 그 둘은 수감자 신분이다. 최선을 다한, 각자의 친필이 녹아 있는 연하장에는 두 사람의 평소 개성이 잘 나타나 있다. 시를 쓰는 구름은 깔끔한 성격답게 흰 봉투에 매향 가득한 그림에 보랏빛 글씨로 안부를 물어오고, 그림을 잘 그리는 386의 연하장은 갈매기떼 호위하는 일출 장면인데 글씨체마저 예술 지향적이다.

검열을 통과한 그들의 편지가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 나는 특별히 숙연해졌다. 요 몇 년 새 연하장 같은 걸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 언제부턴가 전자우편이라는, 멋없지만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친필 연하장을 번거로운 절차쯤으로 밀어낸 탓이리라. 오랜만에 접한 아날로그식 소통 방식도 신선한데,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게서 전해진 것이라 더 놀랐고 고마웠다.

수감생활을 하는 그들을 정기적으로 만나왔다. 수감자들을 상대로 한 독서모임의 지도강사를 하면서 정작 많은 것을 배운 쪽은 나였다. 적극적인 독서활동을 통한 수감자들의 교화가 프로그램의 목적이었다. 남을 교화할 만큼의 입장이 못 되는 나는 이 프로그램을 스스로를 위한 교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교화(敎化)란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또는 부처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쳐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함, 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사전적 정의대로라면 신이 아닌 이상 누구나 평생 교화의 대상일 터였다. 스스로가 교화의 대상인데 누구를 교화한다는 말인가. 해서 나는 특별한 격식이 요구되지 않는 독후 토론 활동을 하면서 제일 목표를 `마음 터놓기`로 정했다. 착한 사람 되기 같은 현실성 없는 목표보다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회원들이 자연스레 사람살이를 얘기하면서 그들 내면이 한결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열댓 명의 회원들 대부분은 프로그램에 적극적이었다. 폐쇄적 생활에서 오는 갑갑함을 풀어내고 뒷날을 대비하는 재충전의 의미로서의 독후활동이 자리 잡혀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자신만의 얘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놓는 모습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보는 듯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때론 프로그램 일정에 따라 일주일에 한두 번 짧고 길게 그들을 만나는 동안 그들을 조금씩 이해하고, 그들 곁으로 한층 더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바깥에서 가졌던, 수감자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들이 하나씩 걷히는 느낌, 그 자체가 스스로를 위한 교화가 되기도 했다.

집중독서치료 과정 마지막 날, 자그마한 파티를 연 적이 있었다. 기왕이면 그들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다. 회원들에게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대부분이 핏자와 햄버거라고 대답했다. 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도 했다. 영치금으로도 얼음과자를 사먹을 수 있지만, 빨리 녹아버리는 콘 아이스크림은 구경할 수가 없다고 했다. 파티가 시작됐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그 때 특별히 고마워했던 회원이 구름과 386이었다. 오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구름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피자를 먹어본다고, 정말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를 앞둔 수업 시간에, 구름은 자신이 쓴 시가 공모전에서 뽑혀 두둑한 상금을 받게 됐다고 자랑했다. 구름이 회원들 앞에서 그 시를 낭송할 때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386은 나에게 권할 피자조각을 들고 한참이나 그대로 있었다. 먼저 먹기가 미안했다며 눈도 잘 맞추지 못하는 쑥스러워하는 386은 출소를 앞두고 있다.

분홍 매화 가득한 `구름`과 갈매기 환호하는 일출 장면의 `386` 연하장을 번갈아 보면서 한 해를 갈무리한다. 그들에게서 배운 인생 공부를 적으면서 나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연하장을 대신해야겠다. 편견 없는 만남과 이해 많은 날들이 함께 하시라고. 그리하여 새해에는 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날들 맞이하시라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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