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0여년 만에 발견된 신라 제30대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재위 661~681)편의 비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사학계의 관심이 발견된 문무왕릉비 비문 해석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학계에서는 수십여 년 동안 논쟁이 되어온 신라 건국역사가 한꺼번에 밝혀질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어 더욱 궁금증을 낳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이번에 발견된 비문이 고구려 역사를 밝힌 광개토왕비에 버금갈 것이라고 예상, 갈수록 비문 결과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문무왕릉비 상단부분 발견 후 사학계 등에서 나도는 말 등을 종합해 보면 문무왕릉비에는 신라건국 역사, 고구려 및 백제 정벌, 경주김씨 뿌리, 유훈 등 다양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있는 문무대왕릉 수중릉이`문무대왕릉이냐, 아니냐`라는 진실 여부도 조만간 이 비문의 완전 해독을 통해 입증될지 여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부분이다.

경주 사학자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이번에 문무왕릉비의 상단부분이 발견된 곳이 옛 경주박물관(현 경주문화원)과 국립경주박물관장 관사와 인접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주에서는 현재 문화재 관련 당국과 기관에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상단 부분 발견지가 지난 1961년 문무왕릉비 하단부가 발견된 곳에서 불과 수십m내인데다 지척에 지난 30여 년 동안 경주박물관이 개관해 있었고, 국립경주박물관장의 관사마저 코앞에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문화재 당국의 관리 능력에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다.

경주 향토 사학자 모 씨는“이번에 비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신라역사가 거의 묻힐 뻔 했다”면서 국보급 문화재가 국립경주박물관장 관사 인근에서 빨랫돌로 이용됐다는 것 자체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라고 했다.

또 하단부 발견 당시 최초 실태 조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관련 문헌에 의하면 문무왕릉비는 최초 소장자는 조선시대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1721~1802)고, 비 발견장소 역시 하단부에 이어 이번 상단부까지 조선시대 관아였던 동부동 일원`경주동헌`일대인 점으로 미뤄 이 비는 애초에 있던 사천왕사에서 누군가에 의해 이동됐을 것으로 보이나 그 이동 경로는 기록된 것이 없어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다만 역사학계는 최초 소장자였던 홍양보가 이 비의 중요성을 인식,옮겨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윤종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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