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경영·조직변화 추구하는 인사관리 전문가”

한국지방재정공제회는 공익성 추구하는 공제사업의 메카

옥외광고센터 개소 등 사업영역 다각화로 수익창출 모색

조직내 독서클럽 활성화… 내부역량 향상 변화 이끌어내

경북 안동출신의 김국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은 행정자치부 조직정책과장, 인사국장, 의정관 등을 역임하며 인사관리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4월 전국지방자치단체의 재해복구나 손해배상 등 공제사업을 취급하는 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이인위본(以人爲本)과 무한히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조직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응형무궁(應形無窮)을 경영철학으로 공제회 발전에 힘쓰고 있다. 김 이사장을 만나 고향 안동에서의 학창시절과 공제회 운영에 대한 얘기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고향인 안동에서 지낼 때 추억 가운데 기억나는 게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저는 안동에서 태어나서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지냈습니다. 전통 유림의 가풍에서 자라난 탓으로 항상 올바른 생각을 가꿔 나가고 책을 가까이 하는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특히 음악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합창단에서 활동했으며, 중학교 때는 학교 콩쿠르 대회에 반 대표로 나가서 입상한 경험도 있습니다.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100곡은 기본입니다.

-고향을 떠나 대구서 고등학교를 다녔는 데, 에피소드가 있다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꿈에도 그리던 대구로 진학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안동에서는 대구만 해도 대도시로서 선망의 대상이 됐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하숙비가 너무 아깝기도 하고, 스스로 독립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학교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기간 동안 저의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큰 힘이 됐지요. 일주일에 한 번 김치랑 된장이랑 반찬이랑 가득가득 싸서 머리에 이고 대구역으로 오시는 정성에 부모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깊게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을 가졌습니다.

-대학졸업하던 해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는 데, 서울서 대학을 다닐 때 공부는 어떻게 했습니까.

▲서울서 대학을 다닐때는 학교 분위기상 고시공부에 전념하다 보니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4학년 졸업 카니발 때 참석은 해야하는 데 여학생 파트너가 없어서 친구하고 둘이서 서울 명륜동 학교앞 찻집을 전전하면서 파트너 구하러 다닌 적도 있을 정도였죠. 학업의 성취는 1974년 당시 2학년 겨울방학 때 안동 근처 학가산 중턱에 있는 광흥사에서 공부하던 때입니다. 불과 두 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산사에서의 학업집중도는 어디에서도 가져 보지 못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저의 학교시절은 이렇게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공직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무엇보다 철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법대 행정학과에 진학해서는 당시 명문학교의 기준이 고시합격이라는 분위기가 있어서 먼저 공직에 진출한 선배들로 부터의 자극도 한 몫을 했죠. 같은 학우들 가운데 고시합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해서 일상의 환경이 모두가 고시공부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여건이었습니다. 그 이외의 동기라면 무엇보다도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집안의 전통과 가풍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행안부(옛날 총무처) 공무원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과 힘들었던 일은 어떤 것입니까.

▲공무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주로 정부 조직관리와 인사제도와 운영, 행정정보화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국장직으로는 정부 인사관리를 총괄하는 인사국장과 정부혁신 업무를 기획하는 혁신기획국장, 정부 행사와 의전업무를 총괄하는 의정관을 지내고, 최근에는 1급인 소청심사위원으로 재직 했습니다. 항상 저의 맡은 일이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정부내에 가장 중요한 분야와 관련되는 기능을 지원하는 일이었고, 담당 기능에 대해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고 정책을 개선해 나름대로 행정의 선진화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힘들었던 기억은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부정과 비리로 명예롭지 못하게 은퇴하는 공직자들이 있어서 같은 공무원으로서 자긍심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로 고민도 많이 해 보았지요.

-한국지방재정공제회가 무슨 일을 하는 지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데, 소개해 주신다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전문기관으로서 공유재산에 대한 손해배상과 재해복구 공제사업이 주요업무입니다. 그 이외에 지방청사 정비 지원사업, 옥외광고 사업, 적립금 운용을 통한 투자수익사업, 지방재정세미나 개최 등 회원지원 사업을 실시하는 특수법인이죠.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사업이란 점에서 보험과 공통점이 있지만, 기업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사와 달리 회원인 자치단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역주민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공제회는 지난해 5월 옥외광고센터를 개소하는 등 사업영역 다각화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또 자치단체 이장과 통장상해공제, 하수도 준설기 배상공제 등 신규사업개발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재정공제회 이사장으로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취임직후 공제회 중장기 발전전략인 `KLFA Vision2020`을 선포, 공제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옥외광고사업을 새롭게 추진해 `대한민국최고의 공제서비스기관`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최상의 공제서비스, 다향하고 종합적인 금융서비스, 옥외광고산업의 선진화를 3대목표로 하고, 창의적인 조직, 성장하는 기관, 고객만족경영의 3가지 추진전략으로 비전달성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기관의 만족은 우선 내부고객의 만족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믿기때문에 조직내 임원과 직원들이 참여하는 자원봉사클럽인 리더스 클럽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조직내 독서클럽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독서클럽에서는 경영관련 서적과 인문학 공부를 통해 감성리더십을 배우고, 부서간 장벽을 허물어 의사소통을 활성화시켜 내부역량을 향상시키는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조직문화를 활성화해 개인의 역량을 개발하고 성장을 뒷받침하는 기관으로 거듭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시게 됐다는 데, 만학을 하게 된 동기와 학위취득과 관련해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저는 1977년도에 학부를 마치고 10년 뒤인 1987년에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정책학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 이후 약 20년 뒤인 2006년에 저의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됐지요. 저는 평소에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나이들어서, 특히 저의공직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과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박사학위 논문은 현 정부들어서 공직사회에서 문제로 제기돼 온 고위공무원단제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정책적 개선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실증적 연구입니다. 앞으로도 공부는 평생토록 하고 싶으며, 기회가 온다면 대학에서 제가 관심있게 공부하고 경험한 내용을 후학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끝으로 고향인 대구·경북지역민들에게 당부 또는 안부 한 마디.

▲저는 경북에서 태어나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자라서는 대구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한 시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객지에서 생활하더라도 병들고 나이들어서는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땅에서 자라는 곡식과 야채, 과일을 먹어야 원기를 회복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출향인사들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도 많이 하시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도 하고 계시지만, 고향을 자주 찾으시고 또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김국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은

김국현 이사장은 1955년 5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고등학교와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졸업하는 해에 행시 1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미국인디애내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오는 8월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공직에서는 총무처 행정전산과장,조직1·2과장을 거쳐 행정자치부 조직정책과장, 인사국장, 의정관,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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