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보니 오랜만에 여야의석에 의원영감님(?)들의 존안이 보인다.

그동안 바깥에서 현장정치(?)를 하시느라 얼굴이 많이 햇볕에 그을렸다. 밤늦도록 의석을 지켜보시니 심야까지 책과 씨름하는 고 3학생들의 고달픈 일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됐다면 , 1등의원이다.

`미디어법` 기습처리를 염두에 두고 의석을 지키니 겉으론 조용해 보이지만 폭풍전야라는 표현보다 핵폭발 직전의 위기감이 감돈다. 미디어법은 방송·신문이 소통을 잘되게 하는 법인데, 여야 의원들끼리 소통이 부재(不在)하니 올바른 입법활동은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정치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중국 상고시대의 맹자만큼 그 뜻을 딱 부러지게 내린 사람은 없다.

정(政)이란, 정(正)이다. 정치란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작용이 정치다.

지금 방송은 정의로운가? 현행법만으로 편향된 방송을 바로 잡을 수 있는가를 충분히 헤아려 `미디어법`을 처리해야 한다.

국가를 폄하하고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갈등을 고의적으로 부추기고 폭동수준의 과격시위를 옹호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현재의 방송은 공영방송으로서 임무는 아무리 좋게 봐도 1%도 수행하지 못하고 빨치산의 메가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지금 수준의 공영방송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오히려 없는 것이 낫다.

방송이 존재하려면 언론 본연의 자세와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KBS1 TV가 기획한 `진보와 보수`에 대한 방송도, 진정한 통합보다는 오히려 국민의 갈등을 조장하고 진보(?)의 세 불림을 위한 기획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

좌익을 진보라고 미화하고 우익을 보수라고 비하하는 호칭부터가 독단적이다. 우리나라 현실은 진보와 보수가 있는 게 아니라 국가보위세력과 적화통일세력으로 나눠져 있다.

공산사회를 지향하는, 세계추세에 동떨어진 좌익세력을 진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진보라는 좋은 말을 쓰레기로 만드는 언어폭력이다. 좌파의 특징을 들면 부자에 대한 신경질적, 무조건적 증오와 적대감이다.

나는 극빈자로 청소년 시절을 불우하게 지냈지만 나는 부자를 부러워한 적은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꿈에라도 부자를 미워한 적은 없다. 대부(大富)는 유천(由天)이지만, 소부(小富)는 유근(由勤)이란, 명심보감의 말을 늘 명심하고 산다.

부자를 미워하면 부자가 나쁘게 되는 게 아니라, 미워하는 자기만 불치병인 암에 걸린다. 부자를 미워할 시간에, 벽돌 한 장이라도 더 나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된다.

부자란 재산만 많다고 부자가 아니다. 남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이웃을 속이지 말고 부끄럼 없이 밝은 마음으로 살면 마음으로 부자인 것이다.

재물의 부자보다 마음의 부자가 더 행복하다고 우기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5천만 가까운 인구가 10만k㎡ 정도의 좁은 땅에 살면서 부딪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 자기와 수가 안 맞다고, 극단적으로 죽이고 병신을 만들지는 말자.

사랑하는 것도 자유요, 미워하는 것도 자유지만, 자기 화난다고 남의 집에 방화를 해서야 되겠는가. 뱃속에서 나올 때, 돈주머니 갖고 태어난 아기가 없듯이 태어날 때부터 깡통 들고 나온 아이도 없다.

자기 노력에 따라 팔자소관으로 부자도 되고 가난뱅이(?)도 된다.

부자가 되든, 빈자가 되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면서, 밝은 마음을 품고 살면, 더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 발전의 덕목은, 대립보다는 화합 쪽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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