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두리기둥처럼 거침없이 위로 솟구친 향나무 한 그루.

이종문 시인이 그대는 왜 여기 우두커니 서 있는가 물으니,

내가 왜 여기 우두커니 서 있는지 그대가 궁금해 하라고

여기 우두커니 서 있다고 대답한 바로 그 나무다.

괜히 자옥산 기슭 옥산서원 뜰에 우두커니 서서

이종문을 궁금하게 한 멋대가리 있는 향나무에게 다가서서,

거친 살결을 짚으며 오늘은 내가 묻는다.

그대, 이 추운 겨울날 여기 우두커니 서서 무얼 하시는가 했더니,

그냥 심심해서 하늘에 대고 글씨를 쓰고 있다며,

이렇게 한 획 그어올리는 데 한 사백년쯤 걸렸다며,

지금도 그어올리는 중이니 말 같은 거 걸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대가 쓰고 있는 글자 대체 무슨 자냐고 했더니

안 그래도 추운데 이종문보다 더 귀찮은 놈이 왔다며,

뚫을 곤자(ㅣ)도 모르는 놈이 시인이랍시고 돌아다니느냐며.

- 계간지 `문학마당`(2006년 봄호)

대구 시단에 50~60대 시인들의 모임인 `시오리`가 있다. 여러 시인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 작은 문학 단체에 찐빵의 앙코같은 존재인 김선굉 시인이 있다. 그는 고스톱도 잘하고 우스개 소리도 욕도 잘한다. 또 나만 보면 “우리 종암이 꼬치 많이 컸나 한번 보자.”며 손을 내미는 재미있는 시인이다. 그가 쓴 시들도 시인을 닮아 무척 재미가 있다. 이 시도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우두커니 나무`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김선굉 시인이 그냥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경주 안강의 옥산서원 마당에 서 있는 키가 큰 향나무는 이제 그 이름이 `우두커니 나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나무는 “멋대가리 있는 향나무”이다. 한문학자이자 시조 시인 이종문을 무척 궁금하게 한 나무이고, 또 김선굉을 두고 “뚫을 곤자(ㅣ)도 모르는 놈이 시인이랍시고 돌아다니느냐며.” 따끔하게 훈계를 하는 그런 멋진 나무다. 서예 공부를 시작한 지 이제 5개월 남짓 된, 붓글씨에 아직 미숙아인 이종암 시인이 조만간 그를 찾아가 또 한 수 가르침을 배울 것 같다. 회재 이언적 선생과 친구이기도 했을 그는 이제 많이 바쁘고 귀찮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올곧은 “뚫을 곤자(ㅣ)”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겠지. 그 글쓰기는 언제 다 완성될까? 한갓 사물인 나무와 소통(疏通)하는 시인도, 그 시인의 가슴속에 자리한 `우두커니 나무`도 참 멋대가리가 있는 존재이긴 마찬가지다.

해설<이종암·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