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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나간 빈집에는 텅텅 비어 있어 씁쓸하게 바람만 불고 있다 뜰에는, 마당에는, 대문 밖에는, 골목길에는, 바람이 휑하니 먼지를 날리고 긴 사색의 구름 한 송이가 빈 마당 위를 그림자처럼 지나가고 있다 경주를 대표하는 원로시인의 쓸쓸한 노년의 시간들을 들려주고 있다. 평생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며 깊은 감동을 거느린 서정시를 써 오신 시인은 모두들 떠난 빈집에서 씁쓸하고 외로운 느낌으로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씁쓸하고 외로움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무욕의 삶, 청빈하게 무위의 인생관으로 한 생을 건너고 있는 자신을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긴 사색의 구름 한 송이가 지나고 있다는 표현에서처럼 말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5.03
게재일 20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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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떠난 후에도 날이 밝고 밤은 왔다. 자동차가 달리고 행상들은 나발을 불어댔다. 멈추지 않는 세상 힘주어 팔 뻗쳐보지만 헛된 꿈이 가슴을 눌러 문신이 되고 있을 뿐…. 그는 나를 버렸다. 악다구니 쳐 봤지만 나는 버려졌다. 내가 먼저 포기하기 전엔 꼼짝없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 내 자만에 네가 먼저 손 들었다. 정말 바람 따라 휑하니 가버린 건가. 내 몸 네 것 되어 뼈마디마디 짐승 소리 내며 허공을 흔드는, 너와 나의 살점을 물어뜯는 그 밤도 없이…. 빈 집이라는 제목의 시지만 빈 집은 사람들이 살다 떠난 빈 집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시의 상황 설정은 아픔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네가 떠난 후에는 어둡고 밤도 오지 않아야 하고, 사물도 세상도 멈춰야 한다 그러나 해는 뜨고 밤도 오
시
등록일 2016.05.02
게재일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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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마음 끝 붉은 가시는 왜 그리 아팠을까 흘러온 어느 강 언덕 매운바람 끝에서 슬쩍 보이는 속옷처럼 애달픈 가지마다 꽃잎을 띄운다 아스라이 건너편 시린 하늘 빈 강 따라 바람이 엷게 물살을 벗겨낸다 욱신욱신 또 봄은 오나 보다 모든 첫사랑은 아픔을 수반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붉은 가시를 오랜 세월 끝없이 찔러오는 것이 첫사랑의 아픔이다. 그래서 더 곱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래서 더 아프고 잊지 못하는지 모른다. 욱신욱신 가슴을 찔러오는 아픔이 번져오면 또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매운바람 끝 강언덕 날리어 가는 바람 속으로 잊지 못할 첫사랑은 아슴아슴 날리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5.01
게재일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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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높은 하늘과 하늘의 마음을 비추던 그 나라에서 사람들은 국회의사당 앞 광장으로 몰려나와 부메랑을 날린다 그 부메랑이 돌아와서 그대들의 거울을 깨뜨릴 때 어쩌다 그들은 깨어진 그들의 초상을 본다 어제 저녁에도 그 광장에서는 젊은이가 스승을 메다꽂았다 시인이 설정한 거울의 나라는 참혹하기 이를데 없다. 고이 옹호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기본적인 가치 질서마저도 무참하게 짓밟혀버리는 현실에 대한 시인의 현실인식이 날카롭다. 이러한 가치의 붕괴는 갈수록 심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스승을 메다꽂는 젊은이와 관련된 그림은 우리 시대의 아픈 초상이 아닐 수 없다. 거울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
시
등록일 2016.04.28
게재일 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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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는 나무가 있어서말없이 가난했네나무가 있는 집은 가난한 집나무는 서정,그 나무, 집과 숨쉬고 있네 그 나무에는 집이 있어서나는 그 집을 관이라 부르지관 속에는 아무 말도떠다니지 않네말들은 나무 속에나무는 또 고요 속에 아끼던 몇 권의 책반은 어둡고 반은 푸른 별떨어져 나무를 만지는 빛 관이 왜 저렇게 푸른지나는 알지 못하고 나무가 있는 집은 영원을 향해 열려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무가 있어서 풍요롭고 생명이 가득 깃든 곳이며 초월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집과 나무는 서로 포함되고 포함하고 있다는 재미난 등식을 유지하면서 시인은 이 두 존재가 서로를 숨 쉬게 하는 공존과 상호배려의 관계임을 부드러운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
시
등록일 2016.04.27
게재일 201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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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번 국도 밀양강 가에는 벚꽃이 축포를 쏘아 올립니다. 갓 스물 처녀 총각들 까르르 웃으면 놀란 꽃잎이 화들짝 날리며 렌즈 속에서 반짝입니다. 어린 아이를 안고 나온 부부는 연신 셔트를 누릅니다. 차르르 착. 이라크 중부 나자프 지역 9번 고속도로 검문소, 밴 한 대가 달려오고 있음. 미군 보병 3사단 25mm 기관포탄이 불을 뿜음. 벌집이 된 차 안에는 피난 보따리를 든 어린이와 여성 15명이 피범벅. 콰르르 펑. 시인은 아름다운 봄밤 밀양강 가에 축포를 쏘아올리듯 활짝 피어오르는 벚꽃을 바라보며 마냥 흥겹고 즐겁지만은 않다. 시인은 잘못 인화된 봄을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이라크 중부 나자프 지역에서 있었던 아픈 그림 한 장을 소개하고 있다. 적으로 오인되어 포탄에 희생된 어
시
등록일 2016.04.26
게재일 201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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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찍어 새를 그린 화가 이징을 생각하다가 한 곡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 신발에 던져 신이 모래로 가득 차야 노래를 그쳤다는 명창 학산수를 생각하다가 일생 동안 먹을 갈아 구멍낸 벼루가 열 개도 넘었다는 명필 이삼만을 생각하다가 노래를 잘 듣기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른 악사 사광을 생각하는 봄밤 중견 시인의 문학에 대한 의지와 열정과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시이다. 이 시에 설정된 화가나 명창이나 명필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시인의 분신이다.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절대의 명작이 나오듯이 시인도 평생 시 쓰기에 임해온 태도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비장하면서도 숙연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신을 닦달하며 격려하는 치열한 시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
시
등록일 2016.04.25
게재일 20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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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밭머리에 나와 앉은 저 망구 할매 좀 보라지 벌써 한고랑 훑었는지 담배 한 대 빼물고 숨 고르는 갓 깬 애벌레같이 뽀얀 얼굴 아마도 겨울 초입에 묻어둔 마늘쪽들 때문일 것이야 한 겨울 언 땅을 뚫고 솟아오른 탱탱한 마늘 싹들이 겨우내 굳어있던 뼈마디 복사꽃으로 물오르게 했을 것이야 흙바닥을 향해 굽은 등이 세상 가득 봄빛을 끌어오는 동안 부끄러워라 짐짓 찔러보는 꽃샘추위에도 금세 샐쭉 돌아앉고 마는 저 꽃나무들의 엄살 밀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시인의 눈에 포착된 이른 봄 새벽의 풍경이 정겹기 짝이 없다. 언 땅을 헤집고 오르는 마늘 순에서 되살아나는 우주의 시간을 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언땅에 호미를 대는 할머니는 천수를 다해가는 늙은이다. 제목처럼 노인네는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시
등록일 2016.04.24
게재일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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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가 부서진 화분 밖으로 기어 나오고 오래된 골목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고층 아파트가 전기 끊긴 집에 달빛마저 끊는다고, 붉은 욕창처럼 문드러진 비닐장판에 누운 잠 다시는 깨지않기를 바라는 서러운 잠이라고, 재개발 때문에 떠나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조간신문 두 면에 가득하다. 아니나 다를까, 창구멍 숨구멍도 없이 반지하방 쪼들리는 햇빛에 겨우 키가 크는 애들이 활개치고 놀던 골목에서 한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햇빛은 멀고 얼마나 걸어 나가야 이 골목을 빠져 나갈 수 있느냐고, 기어 나오다 기어 나오다 어느 날 멈춰 버린 키 작은 채송화처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따스한 배려와 공감, 어떤 동정심마저도 가 닿지 못하는 안타까운 풍경을 본다. 재개발을 앞둔 이 땅
시
등록일 2016.04.21
게재일 20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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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열무의 현실적 효용은 꽃이 아니라 뿌리와 줄기다. 그런데 시인의 텃밭 열무농사는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나 뿌리와 줄기를 놓치고 그만 꽃을 얻은 것이다. 게을러서 그랬을까 아니면, 가까스로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채소를 기르는 솜씨가 없어서 그랬을까. 채소밭을 꽃밭으로 만들었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지만 시인에게는 그리 중요치 않은 것 같다. 나비가, 나비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시
등록일 2016.04.20
게재일 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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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가랑비가 내렸고 투망도 없이 오늘 곡강에 고기가 떠올랐다 어느 시절 이 강가 새들이 악보도 없이 노래 부르더니 떼서리로 몰려들던 눈 먼 고기들 몇몇은 만(灣) 저편 쇠굽는 불빛을 쫓다가 산재 병원으로 가고 더러는 오도를 지나 방어리를 거쳐 북양산 명태가 되었다 만으로 열려져 있는 하구 언덕 해무 속 흑구선생의 묘소가 아물거리고 낮술에 취한 술패랭이 흐드러져 있다 흥해읍의 가장자리를 스쳐가는 곡강은 그 이름처럼 유려하게 휘어져 있는 작은 강이다. 신광면의 호리못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창창한 동해바다로 가져가는 아름다운 강이다. 그 강변에는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고 살면서 더러는 철강공단으로, 더러는 어부가 되어 북양으로 떠났지만 여전히 곡강은 가만히 흐르며 분답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건너
시
등록일 2016.04.19
게재일 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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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가 날아와 딱딱딱 나를 쪼며 노래할 때 아프기도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내 이파리들 기뻐 우우 노래로 화답 했네 딱딱딱 딱따구리가 내 마음에 둥지를 틀 때 부드럽고 따뜻하여 내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노래로 흔들렸네 딱따구리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세계가 실려오고 나도 딱딱딱 세계를 쪼아 집을 짓는 딱따구리가 되었네 딱딱딱 딱따구리는 나 딱딱딱 나는 딱따구리 우주는 나 나는 우주 무언가 때문에 흔들리고 불안한 나에게 딱따구리가 날아와 나를 쪼으며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부드럽고 따스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자신과 자연, 우주가 하나로 합일되는 느낌을 받는다. 바쁜 문명의
시
등록일 2016.04.18
게재일 201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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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산이 구름 위에서 내려와 내 발바닥에 밟힌다 그로부터 강이 안개 저 너머에서 흘러와 내 몸을 적신다 그로부터 사람이 사람 아닌 것에서 돌아와 내게 말을 건낸다 그로부터 먹물이 대갈통 속 미로에서 벗어나 조선의 산하를 화폭에 거둔다 한국화라고 불리는 많은 그림들 중에는 화가의 혼이 배어 있지 않은 그림이 많다. 그럴듯하지만 상상 속의 풍경이고 인위가 지배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는 살아있는 겸재의 혼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조선의 산수가 생생하게 먹을 물고 몇 백년 동안 그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겸재의 진경산수 속에 풍덩 빠져들고 싶은 마음 간절한 아침이다. 겸재 정선이 우리 지역의 청하 현감을 맡았을 때 내연산 계곡에서 그린 몇 몇 그림에서 우리는 이러한
시
등록일 2016.04.17
게재일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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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나라에는 아니오가 없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허물고 쌓고 허물고 쌓는 것들은 모두 무덤 무덤들 위에 새로 피우고 돋우는 꽃들도 무덤 풀들도 무덤 무덤이 된 꽃들이 슬프다 풀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으면 아니오가 없는 나라도 무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무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는 나라가 슬프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아프다 우리는 어쩌면 긍정의 가치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없는 세태를 경계하고 심히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아니오가 사라진 지 오래된 듯하다. 쉽게 따라가버리고 동의해버리는데 익숙해져 있다. 시인은 이러한 맹목과 순응의 시대를 죽음이라고 지칭하면서 아닌 것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 양심을 열망하고 있는 것
시
등록일 2016.04.14
게재일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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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허브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멸치, 전쟁이, 고등어, 꽁치, 가시나비고기가 오기도 많이 왔지만 대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 무장한 경비정이 소문을 듣고 빵 빵 빵 총소리를 냅니다. AIS로 주민등록원부 열어보니 마른하늘에 날벼락 쳤다고 합니다. 조밀한 냉기의 오아시오에 들자 많은 도둑이 도착했다 전해집니다. 10도, 11도, 12도 겹겹으로 쳐진 철조망 가로지르는 그들에게 신호등 언제나 빨간불입니다. 비표 없이 갈 수 없는 그곳을 씩씩하게 갑니다. 자동차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한 잔 소주를 위하여 박명이 되면 곤죽이 된 채, EEZ LINE 넘어 공해로 돌아옵니다. 만선하거나 빈부랄 소리 요령처럼 흔들며 혹은 거시기 빠지게 원양어선 선장이기도 한 이윤길 시인의 시에는 역설이 많이 쓰이고 있다
시
등록일 2016.04.13
게재일 201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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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래산 북사면을 오른다 숨은 턱턱 산은 물고기처럼 가파른 등지느러미를 흔들어 제 등에 업힌 나를 내팽개치려고 안달인데 노루귀 너는 내 엄지발톱이 자지러지거나 말거나 저만치 앞에서 하얀 귀를 쫑긋거려 널 만나기 위해 죽자하고 발작을 내딛는 활공(滑空) 하늘 가득 붐비는 부레, 혹은 지느러미 삼월, 아직은 산모룽지에는 잔설이 쌓여있고 얼음새꽃이 피어나고 버들강아지 솜털 같은 새순들이 피어오른 생명 태동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어떤 예감들로 자연은 부풀어오르고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래산 북사면 가파른 능선을 오르며 시인은 이런 생명의 시간들에 예민한 눈길과 고운 마음길을 얹어놓는다. 하늘 가득 붐비는 부레 혹은 지느러미. 희망 크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4.12
게재일 201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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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와 수학여행단은 원자력 전시관 앞에서 기웃거리지 않아도 대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의 품에 안겨주는 원자력 발전소 홍보용 책자와 방문 기념품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던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가로막기에 충분하다 원자력 발전소만 잘 돌려주면 깨끗한 에너지 원자력과 함께 평생을 안심하고 살 수 있으리라는 땃땃한 기대와 희망을 가득 싣고 씽 씽 돌아들 간다 여기선 침묵이 최선의 방호다 에어록은 슬그머니 열리고 잡업 조원들을 맞이하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방사 분해된 쉰 공기들 한 때 울진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면서 우리 지역의 시인들과 교류한 적이 있는 채상근 시인의 시다. 우리는 원자력 시대에 살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에너지에도 불구
시
등록일 2016.04.11
게재일 201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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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니는 숲 속 작은 섬 하나 와 닿지 않고 열어 보지 못한 섬 푸른 숲을 단단히 물고 있다 외롭지 않느냐고 마을로 가고 싶지 않느냐고 행복을 꿈꾸고 싶지 않느냐고 대답이 없다 단단한 가슴이 빛나는 숲 언저리에 소리 없이 서 있는 섬 하나 숲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작은 섬 하나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시인이 지향하는 정결하고 높고 거룩한 어떤 가치가 아닐까. 어떤 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섬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견디고 당당히 맞서며, 맑고 깨끗한 한 생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강단진 시인정신의 거처를 본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4.10
게재일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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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석이던 갈대 잎은 바람에 쏠렸는데요 산벚꽃 웃음에 춘백(春栢)의 눈매는 헛헛히 무너졌는데요 그렇게 웃자란 꽃핌은 온통 상처라 당신 곁 무릎쯤만 내어주고 싶었는데요 몸끝 어쩌지 못하고 물오르는 풀인지 향기인지 모란 잎새 그늘 불현 듯 꿈틀대던 꽃대도 그 꽃대 끝에서 떨던 소란한 저녁 물비늘도 몸안을 일렁이던 햇살도 죄다 한통속들이었는데요 그렇게 한백년 비껴 서 있던 당신 겨드랑이와 내 겨드랑이가 이제야 키 낮은 망대를 만들다니 바라보는 일만도 망설임이었거늘 가슴에 서로를 묻는 일이야 만장처럼 당신 쪽으로 누운 풀자국에 내내 가난할 것입니다. 모란 냄새 선명한 하마 흔하디흔한 한 봄밤으로 나 내내 따뜻할 겁니다 정갈하고 맛깔스런 필치로 남도의 봄을 그려내고 있다. 산벚꽃과 춘백, 모란 잎새까지 고운 강진의
시
등록일 2016.04.07
게재일 20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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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 비탈에 환하게 피어있는 산철쭉 한 무더기 이리 와서 이 철쭉 굵은 꽃술 좀 봐 팽팽한 철사줄 공기를 당겨 올리는 낚시바늘 같아 그러면, 이 붉은 꽃바늘로 나비날개를 당겨 연애나 해볼까 등성 너머 구욱 국 울어대는 산비둘기 울음을 산복도로 아래 처박힌 자동차 바퀴를 비탈밭 들쑤시고 다니는 멧돼지 꼬리나 당겨봐? 낚시바늘 입에 꽉, 물고 살아가는 산비탈 언청이 꽃마을 다부룩 산철쭉 동네 산행길에서 마주친 산철쭉 한 무더기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우주를 본다. 고운 꽃술을 보란 듯이 뽐내는 산철쭉을 팽팽한 철사줄 공기를 당겨 올리는 낚시바늘로 표현한 것은 봄이 와서 곱고 싱싱한 생명천지로 변한 자연에 대해 느끼는 활짝 열린 시인의 마음의 한 자락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6.04.06
게재일 201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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