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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펄펄 날리는 오늘은 내 나귀를 구해 그걸 타고 그 집에 들르리라 그 집 가게 되면 일필휘지(一筆揮之), 뻗치고 휘어지고 창창히 뻗은 소나무 아래 지붕 낮게 해서 엎드린 그 집 주위를 한 열 번은 더 돌게 되리라 우선 당호에 들기 전 헛기침을 해보고 그리고는 내 타고 간 나귀를 살그머니 소나무 기둥에 비끌어 매놓고는 그리고는 냅다 눈발 속으로 줄행랑을 치리라 하는 것이다 완당이 그린 세한도는 극도의 절제미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눈 속의 송백과 그 아래 집 한 채는 단순한 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단순한 그림이 거느리는 또 다른 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송백의 지조와 그 집에 기거하는 청빈한 선비를 떠올리며 시인은 짖궂은 장난끼를 발동해보고 있다. 나귀를 타고 그 집을 열 번
시
등록일 2016.03.08
게재일 201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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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나뭇잎의 손금을 보다가 눈물 흘리고 있다 방울새 한 마리가 멀찍이 앉아 물방울 지키고 있다 며칠 후 물방울은 홀아비 방울새의 아들을 낳을 것이다 고요한 평화경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비록 자연물일지라도 존재 양태를 가진 사물들은 일정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소극적으로 혹은 적극적으로 서로에게 반응하며 존재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과 그것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는 방울새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삶이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부지불식간에 우리네 한 생도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시다.
시
등록일 2016.03.07
게재일 201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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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한번도 동백을 보지 못하셨다 심장이 고춧가루처럼 타버려 소닷가루 아홉 말을 잡수신 어머니 목을 뚝뚝 부러뜨리며 지는 그런 삶을 몰랐다 밑뿌리부터 환하게 핀 해당화꽃으로 언제나 지고 나서도 빨간 멍자국을 간직했다 어머니는 기다림을 내게 물려주셨다 어머니 한 생의 가슴에 박힌 붉은 멍자국을 들춰보면서 시인은 어머니의 신산하고 고단한 삶을 기리고 있다. 어머니의 한 많은 한 생이 어찌 짙붉은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는 처연한 동백같은 삶이라 쓰지 않았을까마는 시인은 어머니의 곤고한 삶을 해당화에 비유하고 있다. 시인의 정직성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6.03.06
게재일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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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파란만장아 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출렁였고 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슬퍼했겠고 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아파했겠고 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헤매다가 꽃을 보고 새를 만나고 그 먼 강둑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았을까 파란만장하니 인생이다 파란만장하니 노래한다 파란만장하니 사랑한다 파란만장하니 그립다 파란만장아 고맙다, 파란만장하니 고맙다 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나름대로의 파란만장은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련의 순간들이 생을 힘차게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깊이 동의하고 싶은 것이다. 눈이 많이 오고 차가운 겨울을 보낼수록 그 다음 해 봄은 더 생명력 넘치게 열리고 풍성한 생명의 계절을
시
등록일 2016.03.03
게재일 20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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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을 헤맨 지 보름 만에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옮기던 날 효도한답시고 특실로 모셨다 - 아따 좋다이 근디 겁나게 비쌀 턴디 - 돈 생각 말고 푹 쉬어 - 후딱 짐 싸라 일반실로 내려가게 - 근천 그만 떨어 누가 엄마한테 돈 내래? 뜬눈으로 간병한 사람은 안중에도 없지? 늙으면 남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만 안다더니 틀린 말 아니네 설득하고 대꾸하고 통사정하다가 풀죽은 넋두리에 벼락 맞은 듯 기겁해 황급히 입원 도구를 꾸렸다 - 아가 독방은 고독해서 못써야 통로 끝집 해남댁이 베란다서 떨어진 것도 다 그 때문 아니것냐 이 땅 어느 병원 병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본다. 병든 어머니를 1인실에 모시
시
등록일 2016.03.02
게재일 201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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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창낭창 살랑이는 바람 같던 스물셋, 선 봐서 만난 슈퍼총각 좋아 슈퍼 안으로 들어갔어 그녀는 이제 슈퍼아줌마 그녀를 데려가던 날도 슈퍼 문 열었던 아저씨 당최 문 닫는 일 없어 비 오고 눈 와도 명절에도 아이 둘 낳을 때도 그런 일은 없어 아줌마는 아파트와 슈퍼 사이만 왔다갔다 시부모 수발들고 참새처럼 드나드는 시누 가족 밥해주고 아들 딸 키우느라 슈퍼 통로만 오락가락 미치게 바람 불어도 네모진 카운터 앞에 전화기만 붙들고 앉아있어 행복슈퍼에는 정말 행복이 있을까. 행복슈퍼에는 행복을 파는 걸까. 행복슈퍼 안주인의 얘기를 건네면서 시인은 행복이 어디에 있으며 무얼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꿈을 안고 슈퍼 총각에게 시집와서 아이 둘 낳고 시부모 수발들며 평범
시
등록일 2016.03.01
게재일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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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도 그 존재가 확실한 용도의 돼지나 소 막창 같은, 저 붉은 붉은 신호등 앞에서 멈추고 멈추어 온 나는 지금도 멈춘다 저 붉은 신호등의 붉은 색은 다만 나를 잠깐 멈추게 하는 가식인가 내가 진짜 멈추는 이유는 신호등의 저 붉은 색이 질서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환상 때문인가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획일화된 제도와 규율을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붉은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멈춰서는 것이 관습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이런 현상을 복잡한 세상사에 대입시키고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따라하고 순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게 하는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6.02.28
게재일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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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날린다 날리는 눈들은 수많은 인간 군상처럼 군무로 뒤섞여 허공을 떠돈다 서로가 서로를 만나고 헤어지고 갈등한다 더러는 남의 등에 짐이 되기도 한다 난데없는 곳에 내려 다소 의아해 한다 그렇게 하얗게 새하얗게 세상을 떠돌다 마침내 땅에 내려앉는다 녹아 죽는다 제 몸만큼만 맑고 투명한 눈물 조금 남기고 허공에 군무를 추며 날리는 눈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는 세상을 뜨겁게 살다 가는 인생의 이야기가 보인다. 어떤 인생은 만나고 헤어지고 갈등하는 일에 매여 살다 가고, 어떤 사람들은 남의 짐이 되어 살다 가기도 하고. 뜻하지 않는 일들에 휘둘려 의아한 한 생을 살다 가는 뜬금없는 인생도 있다는 것을 시인은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6.02.25
게재일 201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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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 위에 떨어진 꽃잎 몇 장이 머물던 자리를 올려다보고 있다 기다리던 것이 열매만은 아니라서 저 태연한 관망 물가의 시간은 그래서 아름답다 (중략) 지상의 어떤 통화도 끊은 채 새우의 휘어진 등 고립의 바늘을 꿴다 (중략)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싶은 4월의 밤은 물살 위 떠 있는 노란 꽃잎에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눈빛 하나 희망인 양 슬며시 얹어준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자연에서의 사소한 일들에도 시인의 눈은 거기에 머문다. 물결 위에 떨어진 꽃잎이 제가 머물던 자리를 올려다본다고 표현한 시인의 마음이 따스하기 그지없다. 소멸에 대한 순응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내는 자연 앞에서 시인의 심미안은 거기에 머물며 함께하고 있음을 본다. 곱고 아름다운 심성이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6.02.24
게재일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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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는 죽어 있다. 그렇다. 죽어서도 돌멩이는 구른다. 닳으며 동그래지며 아직 죽어 있다. 그런가, 머리 위 어중간에 나비가 걸려 있다. 그렇다. 굽은 갈고리에 찔렸거나 은빛 거미줄에 감겼다 그런가. 새가 반짝이며 구름 사이로 점멸했다. 그렇다. 높이 나는 새는 불꽃이다. 하늘에다 그을린 자국을 남겼다. 그런가. 나뭇잎이 떨어져서 어깨에 얹혔다. 그렇다. 나뭇잎에 눌린 만큼 어깨가 내려앉았다. 그런가 벌써 익은 찔레 열매가 아직 달려 있다. 그런가. 바짝 마른 뒤에야 떨어진다. 그런가. 잘 익은 씨앗 몇 개 감추고 있다. 그런가 시인의 표현에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과연 그런 인식과 표현이 맞는가에 대한 이중적인 현상 인식이 나타나 있다. 물론 시인은 각 행마다 연마다
시
등록일 2016.02.23
게재일 201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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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의 종착지는 스페인이거나 필리핀의 어느 마을이나 한국의 내 고향이거나 저승의 문턱일거다. 그곳까지 멀리 에둘러 돌아가야 했다 지금은 호흡을 가다듬고 꿈속을 헤매듯 망고나무의 잎이 떨어져 싹이 오를 때까지 내 몸의 푸른 피 마를 때까지 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다열대 식물인 망고나무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며 시인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고향의 겨울은 맵차다, 그 차가운 시간들과 폭설의 시간들을 견딘 자연에서 새 생명이 잉태하고 풍성한 결실에 이르는 것이 시인이 살아온 자연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지금 열대의 고장에 있다. 거기서 시인은 잎을 떨어뜨리고 새싹이 오를 때까지 견디는 열대지방의 새로운 생명 운행의 법칙을 본다. 어디서건
시
등록일 2016.02.22
게재일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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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그곳에 가면 빗방울은 모두 연잎이 되고 비오는 날 그곳에 가면 빗물은 나보다 더 크게 울고 묻혀 있는 설움이 많을수록 꽃은 더 아름다웠다 경주 남산 자락의 서출지는 고운 연꽃 연못으로 알려진 곳으로 그윽한 서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시인은 그 서출지 연꽃을 바라보며 살면서 가슴 속 사무친 설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깊은 수렁에 뿌리를 내리고 그 캄캄하고 답답하고 수렁의 절망 혹은 어둠을 딛고 피워올리는 고운 연꽃을 얘기하면서 생의 중요한 진리 하나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설움과 절망이 깊을수록 인생의 꽃도 더 처연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6.02.21
게재일 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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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변두리에서 무릎까지 젖는 날이었습니다 마음의 옹이 하나 빼내어 보리라 작정하고 길따라 굽혔다 펴지는 사이 그만 안심사였습니다 적멸보궁 추녀 아래 비를 피하면 숲으로 젖고 숲을 비끼면 낙숫물에 파묻히다가 어둑어둑 찾아가는 해우소 접시에 결가부좌를 한 촛불 두 개, 면벽이었습니다 저 둘이 눈 감고 풀어내는 게 불빛인지 어둠인지 우두망찰하는 그 새 촛불 저편 쪽문으로 스르르 여승이 흘러갔습니다 어둠 한 자락이 해우한 듯, 펄럭, 따라 갔습니다 나는 뒤꿈치로 온몸 받쳐 들고 쪽문 밖으로 나섰습니다 문 밖엔 젖은 숲, 어둠이 또렷해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사의 번잡함을 피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시인은 절집을 찾았다. 비우고 또 비우는 법을 터득하는 곳이 절집일텐데, 거기서도 해우소는 그야말로 근심을 해
시
등록일 2016.02.18
게재일 201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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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저 호숫가 어디쯤에 한 몇 평 갈고 다듬어서 내 남자와 오두막집 하나 지어볼까 쪽빛, 물빛 흐르는 풀꽃 향기 짙은 그곳, 따스한 그 품에서 한 시절 오가는 줄 몰라라고 열여덟 폭 몰라라고 열여덟 폭 치맛자락 굽이굽이 펼쳐두고 초비(剿匪)로 놀 비칠 때까지 네가 불러 주는 푸른 노래 들으며 끝 모를 붉은 시 읊어볼까 누군들 시인이 설정하는 이런 아름다운 꿈을 꾸지 않겠는가. 분탕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무욕의 삶을 살면서 자연이 들려주는 푸르런 소리들을 모아 시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서 무한한 자유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겠는가. 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눈 시리게 푸르런 하늘을.
시
등록일 2016.02.17
게재일 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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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 저마다 자기들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좁고 종일 붙잡혀 있는 작은 공간이 좁고 그게 그것인 일들이 좁고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은 넘치는 나를 주워 담는 일 그것을 구석구석 쑤셔 박는 일 그 쑤셔 박은 것들이 학! 끌어당겨 나를 휴지통에 쑤셔 박을 때 아! 바다가 보고 싶다 일상이 이뤄지는 시 공간은 극히 단조롭고 여러 한계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도 매일 대하는 사물들도 사람들도 권태롭기 짝이 없다는 인식 아래 시인은 그런 답답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끝간데 없이 펼쳐진 자유의 공간인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단순 반복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욕망이 시 전편을 지배하고 있다.
시
등록일 2016.02.16
게재일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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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높습니다 바다는 제 살점을 아프게 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바위를 넘어서고 수평선을 넘어서고 제 그림자를 넘어서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 오직 부서지기 위해 수백 수천 마일을 맨발로 치달려 오고 있습니다(….) 몸뚱아리를 가졌다는 장애를 넘어서서 무우수 혹은 무심의 나무가 되기도 하겠지요 나로서는 살점을 아프게 떼내야 한다는 사실만이 심각한 장애로 근심거리로 다가옵니다만 `무우수`라는 나무는 근심이 없는 나무라는 뜻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무욕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 이 나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제 살점을 아프게 갈라가면서 오직 부서지기 위해 수백 수천 마일을 치달려오는 파도를 대하면서 시인은 소유와 헛된 욕망으로 좁은 생의 테두리를 빙빙 돌고 있는
시
등록일 2016.02.15
게재일 201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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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뜬바위(浮石) 아래 붉은 꽃이 만발하고 꽃이 피는 봄날에는 운애가 자욱하다 바위에 바위가 얹혀 소통하는 명주 올 하나 하늘에는 구름 꽃 온 산엔 진달래 천지 바위마다 새겨진 부처 마애불이 졸고 있다 그 시대 그리움 남아 역사 속에 함께 산다 이 시린 겨울이 가고 나면 봄바람따라 온 산천에 진달래꽃이 피어날 것이다. 경주 남산을 오르다보면 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마애불들과 마주하게 된다. 봄이 오면 남산도 진달래 천지가 된다. 경주의 원로 시인인 정민호 시인의 눈에는, 아니 그의 가슴에는 신라 천년의 시간들이 살아있고 지천으로 피어오른 참꽃더미에서 시간을 초월한 역사의 고운 빛깔과 향기를 느끼고 있음을 본다.
시
등록일 2016.02.14
게재일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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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하는 산의 계곡에 폭우로 작은 폭포가 생겼다 한 계절의 수량을 며칠 만에 낭비하는 순간이다 무의 색깔도 소리도 자신이 폭포인 줄 모르고 있다 화장기 없는 물방울과 물방울이 뒤섞이는 무언극이 있다면 물방울을 돕는 산파의 물방울 또한 튀면서, 폭포는 자유롭다 자유로운 줄도 모르고, 폭포의 마음이 아직 생기기 전이기에, 무의 상형문자가 처음으로 드러났기에 폭포의 낮은 키는 아직 측정되지 않았다 이 시에서 폭포는 자유로움의 상징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마음 먹은 대로 하는 존재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제 길을 갈 뿐이다. 온갖 굴레에 매여 있고 욕심과 욕망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폭포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면서 우리에게 던지는 시인의 메시지가
시
등록일 2016.02.11
게재일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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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궁금한 날에는 마을돌이 트럭 어물전 시간 맞추어 냉동 오징어나 전어 한 오천 원어치 산다 물에 풀어 얼음 씻어내고 칼질 듬성듬성 대장균, 비브리오균 죽인다 괜찮을까, 의심하는 이 있으면 소주하고 먹으면 탈 없다고 웃는다 탈이 나더라도 혼자 죽기야 하겠는가 촌놈 되자면 이 정도 목숨 걸 일 더러 있다 이 시에서 촌놈이란 그야말로 시골 사람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저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며,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민초들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마을을 도는 어물 파는 트럭에서 냉동오징어나 전어를 조금 사서 맛나게 한 끼 때우면 그만이고, 무슨 대장균이나 비브리오균 같은 두려움에 젖어들 필요도 없이 소탈하게 소주 한 고뿌로 넘겨버리는 소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인생사를 시인은 담
시
등록일 2016.02.10
게재일 201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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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가 북한에 갔을 때라고 한다. 단군릉 앞에 선 그의 뒷모습이 TV 카메라에 비치자 강남구 학동 목욕탕 내 얼금뱅이 이발소 주인이 손님들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아 저거 내가 깎은 머리인데” 사람들이 일단 동작을 멈추고 서서 그의 벌린 입을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한다 그냥 지나쳐버리면 영원히 남겨지지 않을 삶 속의 사소한 일화를 제재로 쓴 재미난 시다. 분단체제 아래서 아무나 쉽게 단군릉이 있는 북한에 가지 못한다. 그런데 서울의 한 목욕탕 안 이발소의 얼금뱅이 이발사의 눈에 어느 날 자기에게 이발을 한 유홍준 교수가 단군릉 앞에 선 모습이 TV에 보인 것이다. 경이롭고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별로 대수롭지 않는 일이지만 시대 상황과 어울린 재미난 일화가 이렇듯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시
등록일 2016.02.04
게재일 201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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