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3월 들어서도 겨울과 봄이 서로 줄다리기를 했다. 겨울은 3월의 폭설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으나 결국 꽃피우는 봄이 이겼다.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차례를 지킬 겨를 없다는 듯 앞다투어 피워댄다. 꽃구경을 유혹하는 상춘(賞春)의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눈으로만 하는 봄구경에 만족하지 못했다. 온몸으로 뱃속까지 봄을 느끼고 싶어 입맛으로 즐기는 상춘(嘗春)을 감행했다. 그 절정이 바로 화전놀이였다. 화전놀이는 꽃피는 봄날 마을 부근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꽃을 보며 놀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지져 먹고 노는 여성놀이이다.

한국향토문화대전에서 화전놀이를 찾으면 저 북의 강원도 강릉에서부터 경기도 양주, 서울 도봉, 대구, 전북 남원, 전남 광주, 부산, 제주 서귀포까지 전국적으로 즐긴 전통적인 봄놀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화전놀이의 전통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시작했다.‘삼국유사’에는 “해마다 봄철이면 김유신 집안의 모든 여성들이 재매곡의 남쪽 시냇가에 모여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에는 온갖 꽃이 피고, 특히 송화가 골짜기에 가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만화방창 가운데서 벌인 잔치엔 온갖 꽃지짐 또한 질펀했으리라 짐작된다.‘교남지’에는 신라의 궁인들이 봄놀이를 하면서 꽃을 꺾은 데서 비롯하였다는 경주 화절현(花折峴)이라는 고개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미 신라시대에 모습을 갖춘 화전놀이의 전통은 조선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이 이어졌다. 집안의 여성들, 특히 시집온 며느리들이 함께 모여 장막을 세우고 참꽃으로 지짐을 지져 먹으며,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많다. 남성들도 낭만적인 화전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부정기적인 봄맞이 풍류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는 구별된다. 또 남성들에게는 가벼운 여가 활동이었으나 여성들에게는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공식적인 집단나들이였다는 점에서도 문화적 의미에 차이가 있다.

역사도 깊고 전국적으로 보편적이었던 화전놀이지만 경북의 경우는 특별하다. 조선 후기부터 화전놀이와 내방가사가 만나 화전가가 창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현재까지도 경북 여성들은 화전놀이의 과정과 소회를 담은 화전가를 짓고 즐겼다. 화전가의 창작과 낭송이 화전놀이의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경북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남성들의 화전놀이, 그 이전 시기 여성들의 화전놀이, 음주가무로 풍물을 즐기는 다른 지역의 화전놀이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경북 여성들은 놀이날이 되면 미리 준비한 음식과 조리도구 외에 반드시 지필묵(紙筆墨)을 챙긴다. 현장에서 화전가를 지을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2009년 청도 비슬산에서 류복혜 선생님이 이끄는 영남화전놀이보존회에서 전통에 가까운 화전놀이를 펼쳤다. 안동의 내방가사보존회원인 안어르신들을 모셨더니 우아하고 품격있게 화전가를 읊으셨다. 2018년, 경주 양동마을에서 벌인 화전놀이에서도 그들은 내방가사를 거침없이 낭송하셨다. 오는 3월 30일, 대구 가창 한천서원에서 화전대회를 한다고 한다. 팀을 나누어 화전을 예쁘게 지진 팀의 우열을 가리는 모양인데, 화전놀이의 현대적 변용이요, 전통놀이를 잇는 새로운 형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