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데이비드 크리스탈이 쓰고 권루시안이 옮긴 ‘언어의 죽음’은 스티븐 웜이 분류한 언어의 위기 5단계가 있다. 그 가운데 제주어는 이미 5단계로 소멸된 언어로 분류된 바가 있다. 제주어의 소멸을 안타까워했던 필자는 국립국어원장 시절부터 이 제주어를 인류의 기록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 실천에 앞장서왔다. 제주방언의 보존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였으며 제주방언연구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제주어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고유한 제주 문화와 역사까지 온전히 남겨져야 할 것이라 강조해 왔다. 그런데 제주 토착인들은 과연 제주어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당당하게 제주어를 교육하고 문학작품에도 제주어 사용을 하고 있는가?

현길언의 소설 ‘용마의 꿈’에 나오는 ‘안가름’은 마을 이름이다. ‘안가름’(강남(江南) 천자국(天子國) 안가름 김정승 댁에서 솟아나신 총맹스런 세 부인입니다. )은 마을 이름이다. ‘-가름’ 또는 ‘-카름’은 ‘가르다(分)’의 의미를 가진 동사의 명사형이다.

제주에서는 동쪽에 위치하면 ‘동카름’, 서쪽이면 ‘서카름’, 중앙이면 ‘안가름’ 또는 ‘안카름’이라 하고, 방위와 관계없이 바다 쪽이면 ‘알카름’, 한라산 쪽이면 ‘웃카름’이라 부른다. 또 ‘그신새’(나는 어머니 등 뒤에 달라붙어 누운 채 그 도깨비를 생각한다. 저건 틀림없이 그신새 귀신일 거야.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는 낱말의 뜻은 무엇일까? ‘그신+새’로 분석되며, ‘새’는 한자어 ‘사(邪)’에 해당한다. 사악함을 쫓는 것을 ‘새쾓리다’라고 하는데, ‘새쾓리다’의 ‘새’가 바로 이것으로 이것은 허약한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기영의 소설에서는 ‘곤밥’(어린 시절에도 파제 후 ‘곤밥’을 몇 숟갈 얻어먹어 보려고 길수 형과 나는 어른들 등 뒤에서 이렇게 모로 누워 새우잠을 자곤 했다. -‘순이 삼촌’, 곤밥(흰쌀밥)으로 손님 대접해여마씸. -‘변방에 우짖는 새’)이 자주 등장한다. ‘곤밥’은 ‘고운 밥’의 제주어인데, ‘곤(麗)+밥(飯)’으로 구성된 낱말로 잡곡을 섞지 않고 흰쌀로만 지은 밥을 말한다. 가난한 제주사람들이 평소에는 잡곡밥을 먹다가 제삿밥으로만 흰쌀밥을 먹었기에 ‘곤밥’이라 하였을 것이다. 쌀밥이 잡곡밥보다 빛깔이 곱다고 생각한 언중들의 생각이 담겨진 어휘다.

제주도는 삼다의 섬이라고 한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은 섬인데, 특히 바람과 관련한 어휘가 많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대양의 바람을 문충성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샛바람/ 갈바람/ 마파람/ 하늬바람/ 동마바람/ 서마바람/ 갈하늬/ 높새/ 높바람/ 높하늬/ 건들마/ 도껭이/ 도지/ 강쳉이/ 양도새/ 바람주제/ 놀/ 모든 제주 바람들 한데 모여 사는 곳”-(‘허공’). 여러 종류의 바람 이름이다. 이 가운데 특히 ‘도껭이’는 어떤 바람의 이름일까? ‘도껭이’는 ‘도(回)+ㅅ+개(疥)이’로 분석되는데 ‘회오리바람’으로 짐작할 수 있다. 동풍을 ‘샛킞름’, 서풍을 ‘놋킞름’, 남풍을 ‘마킞름’, 북풍을 ‘하늬킞름’이라 하고, ‘하늬킞름’도 다시 세분하여 ‘서하늬·놉하늬’로 나누기도 한다.

제주의 명물 음식 중에 몸국이라는 게 있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다가 뭍으로 올라와 한기를 가세며 몸국 한 사발을 먹으면 저절로 온몸에는 화사한 봄이 깃든다. 몸국에서 ‘몸’은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이다. 돼지 뼈를 고아 끓인 국물에 모자반을 넣은 제주 음식이다. 제주도 시인 허영선은 ‘몸국 한 사발’이라는 시에서 몸국을 요리하고 먹는 제주사람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창밖에 폴폴 눈 내리는 날/그리운 바다가 화악 달려들었다/단 한 숟갈에도 몸을 살려주던 그것/돼지뼈 접쩍뼈/한번 질펀하게 우려내 국물을 내고/그 말갛게 싱싱한 바다의 몸 살짝 밀어 넣어주면/순식간에 덮쳐오던 미친 허기/그 위로 접착제처럼 끌어당기던/배설까지 베지근 보오얀 홀림/아무것도 걸칠 것 없는 바다의 식탁/몸이 ㅁ·ㅁ을 먹다보면/저절로 몸꽃 피어나던/성스러운/그 한 사발/몸국”-허영선의 ‘해녀들’. ‘접짝뼈’, ‘배설’, ‘벶근’, ‘ㅁ·ㅁ’과 같은 제주어로 감싸 안은 ‘몸국 한 사발’을 바다의 식탁에 올려놓고 허기진 배를 채울 몸국 한 숟갈을 떠먹어도 확 바다가 달려든다. 온 몸에 퍼지는 몸국은 제주인들의 성스러운 몸(身)이다. 바닷바람에 지친 마음을 달래는 혼이다. 방언의 힘, 몇몇 제주 단어가 살아 퍼덕이는 시에서 제주 사람들의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