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 마중이 한창이다. 산수유와 매화나무는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남도에선 목련꽃의 하얀 자태가 이른 봄의 전령(傳令)인 듯 서서히 피어나며 멀지 않은 봄날을 예고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만물이 다가오는 봄날을 채비하고 있는데, 아직도 겨울잠에서 못 깨어난 듯 동토의 계절엔 하얀 눈이 날리고 수십 차례 내린 눈의 층계가 만년설 마냥 육중하게 버티고 있다면? 남극·북극이면 극지방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에 그러한 곳이 있다면 의아심과 함께 호기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떠난 곳이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마름모꼴의 섬으로 대한민국 면적의 약 80%에 달할 정도로 크고 위도 상으로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비슷하며, 동쪽과 북동쪽에는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가 인접해 있다. 홋카이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성향과 문화 등이 각각 달라서 오키나와 지역과 더불어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내에서도 관광과 거주하고 싶은 지역 1위를 나타나는 이국적인 특성을 띠고 있는 곳이다.

또한 고위도(북위 41~45°)에 위치해 섬 전역이 한랭하고 냉대 습윤기후가 나타나 겨울철에는 추위가 매우 심한 폭설지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3월의 눈구경은 드물고 강원도 등 일부 산악지대에 눈이 짧게 내렸다가 금세 녹기도 하지만, 홋카이도의 겨울철에 내려서 쌓인 눈은 이듬해 4월까지 가는 등 강설이 잦고 설경이 아름다워 우리나라를 비롯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떠났었는데, 과연 북해도에 당도한 첫날부터 함박눈이 펄펄 내리니 이방인의 심경이 오죽했으랴.

‘따사로운 삼월엔/가지마다 물올라//망울이 부풀고/잎새가 도드라지는데//여태껏//동면 꾸러기//옴짝달싹 못하는 곳//설마하고 떠난 걸음/듬성듬성 손내밀다//저녁답 때를 맞춰/수만 꽃잎 나부낌//수 천리//이방객을 반기며//갈채로 내려앉네’

-拙시조 ‘이국에서 맞는 봄눈·Ⅰ’ 전문

정말 설국(雪國)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눈길 머물고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백색의 세상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희끗희끗한 잔설의 여운이 아쉬운 듯싶었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펑펑 쏟아지는 눈발은 유객(遊客)의 심사를 한결 설레게 하고 동심에 빠져들게 했었다. 실로 몇 십년만에 눈 다운 눈을 맞으며 눈길을 거닐어 보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행은 설경에 젖어 들어 눈밭을 뒹굴거나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온갖 포즈를 취하며 눈의 환희를 만끽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듯 일상을 벗어나면 도처에는 뜻밖의 행운이나 우연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떠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림 속의 떡(畵中之餠)일 뿐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듯이 여행의 즐거움도 어디론가 떠남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의 행복’이 여행이라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맛보며 즐기는 자유여행은 단순관광 그 이상의 매력과 묘미를 안겨다 줄 것이다. 홋카이도의 눈 내리는 저녁의 설렘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