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낸 말이다.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유독 저 대사만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괴물로 변하는 주위 사람을 목격하며 사람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가에서는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 출발은 합계출산율의 급감이란 상황이다. 서울에서도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교대의 인기가 예전과 다른 것이 현실이다. 초등학교에 닥친 위기가 몇 년 뒤 대학에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예정된 미래였지만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고, 위기를 눈앞에서 목격하고야 바빠지기 시작했다.

얽히고설킨 매듭을 하나씩 풀기보다는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듯 그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이해당사자의 말을 듣기보다는 결정권자가 강하게 밀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마 부분적인 진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특정 집단이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다시 유명해진 ‘하나회’를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해체했듯 말이다.

이 정권의 교육 정책은 대학 구성원을 마치 ‘하나회’ 보듯 한다. 정권의 교육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자기 이익 지키기에 급급한 이익 집단으로 취급한다. 자율과 혁신이란 이름으로 ‘글로컬 대학’‘무학과 단일전공’ 등을 추진하며 정작 현장의 목소리는 잘 듣지 않는다.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정책을 불도저처럼 밀어내기에 바쁘고,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인물로 낙인찍고 있다. 어느 순간 감정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의대 정원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정부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아무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부 정책이 사람을 선동하는 방식과 돈 앞에 괴물로 전락해 버리는 우리들의 초상이다. 모든 정책은 지원금을 동반한다. ‘돈’이란 당근으로 정책에 따르길 요구하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물결 앞에 생명이 위태로운 대학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대학의 보직을 맡으면 평상시 모습과 모순되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유독 돈 앞에 모멸감을 느끼는 횟수가 많아지는 요즘이다. 눈앞의 몇 푼에 부끄러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인 사람이 많은 사회가 정상인 사회라 할 수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영화 속 대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뿐 별다른 대책을 세울 수 없는 무기력만 남게 되는 현실이 말이다. 출산율 급감이 웅변하듯, 이미 우리는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