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택 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4주째에 접어들면서 의료대란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들을 위협하는 마지막 카드인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전공의가 병원에 복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면허 처분에 들어간다는 강경입장이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전공의와 의대 교수, 의대생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회는 정부가 합리적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으면 오는 18일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병원진료도 강의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들이 적지 않다. 전공의와 학생이 없는 상황에서 교수의 의미는 무엇이겠느냐”고 했다.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도 현실화할 것으로 보여, 그 가족들이 초조해하고 있다. 전국 의대생 대부분은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수업에 불참하고 있으며, 각 의과대학은 휴강이나 개강 연기를 해둔 상태다. 많은 대학에서는 수업 일수의 4분의1 혹은 3분의1을 초과해 결석하면 F학점을 준다. F학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유급 처리된다. 유급이 되면 등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지난해 기준 의학 계열의 등록금은 평균 979만200원이다.

의료 공백도 위기단계다.

정부는 중증·응급환자 중심의 비상진료체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하지만, 의료현장은 그렇지 않다. 코로나 대유행 때처럼 응급실을 찾아온 중환자들이 응급처치만 받고 후속치료를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수소문해야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대구시내 대학병원 전문의들은 의대증원 발표 이후 4주째 병원에서 쪽잠을 자면서 의료공백에 대응하고 있지만 지칠대로 지쳐있다. 대부분 교수들은 낮에 외래진료를 보고 야간당직까지 연속근무를 해야 해 이틀에 한번 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대형병원들은 병상 가동률일 뚝 떨어지면서 경영상황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철회한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교육부에 경북대 의대 정원을 현재 110명에서 2배가 넘는 250명으로 늘려달라고 신청했다. 경북대 의대 학장단은 “총장이 의대의 제안을 존중하지 않고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입학정원 증원을 제시했다”며 일괄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의대 대폭 증원을 주장해온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로 뽑혔다.

정부가 절대 양보하지 못한다는 ‘2천명 증원’ 근거가 정치적일 수 있다는 의심이 이러한 사례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정부가 당연히 환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의사나 의대학생, 그 가족들에 대한 보호책임도 있다.

경북대 경우에서 보듯, 비합리적인 근거에서 나온 증원 숫자에 매몰돼 의사들이나 의대생을 궁지로 몰아넣는 행위는 지극히 위험하며, 반드시 책임도 따른다. 정부는 2천명이라는 증원숫자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의정(醫·政) 양측 모두 출구를 찾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